[특별취재팀=한원석 부장|김학형 팀장·임한상 기자·윤승준 기자] 대한민국은 잿더미에서 불과 60여년 만에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이라는 찬란한 금자탑을 세웠다. 세계 1위를 놓고 경쟁하는 산업 분야도 적지 않다. 하지만 다른 산업 발전에 근간이 되는 금융과 관련해서는 선진국보다 훨씬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IMF 사태 이후 20여년간 대한민국은 금융 선진국에서 일어나기 힘들 법한 여러 건의 대형 금융사고를 겪었다. 2003년 신용카드사태부터 2008년 키코 사태,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 등 정권이 바뀌어도 금융사고는 끊임없이 고질병처럼 도졌다.
정권 바뀌어도 끊임없이 터지는 대형 금융사고
문재인정부 들어서도 ‘라임·옵티머스 사태’라는 초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피해 규모는 지금까지 일어난 금융사고 가운데 가장 많은 2조원대로 추산된다.
금융당국의 조사와 관련자들의 재판 과정에서 나온 내용을 종합해보면, 라임 사태는 해외무역금융 펀드 등에 투자하면서 무리한 레버리지를 활용했다가 부실이 발생하자, 이를 숨기고 계속 투자금을 모으면서 일어났다.
옵티머스 사태의 경우 애초부터 부동산 개발사업 등 위험자산에 투자할 목적이었음에도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며 투자자들을 속인 사건이다. 두 사건 모두 내부통제 장치가 부재한 상황에서 펀드 손실을 다른 펀드에 전가하는 무책임한 자산운용을 한데다 경영진이 펀드 자금을 멋대로 쓰는 등 피해를 키웠다.
이에 금융당국은 2020년 4월 사모펀드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는 △시장규율을 통한 위험관리 강화 △투자자 보호 취약구조에 대한 보완△금융당국 감독·검사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금융업계 안팎에서는 개선안이 미흡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실효성 있는 감독·검사 역량 제고 방안이 제시되지 않은데다, 정작 사모펀드 사태에 불을 지른 격인 금융당국의 자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라임과 옵티머스 펀드 등의 환매 중단 사태는 부작용은 고려하지 않고 규제를 풀어준 금융당국에서부터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2015년 금융위원회(금융위)는 사모운용사 설립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고, 최소 자본금 요건을 60억원에서 20억원으로 낮췄다. 여기에 금융위는 사모펀드 투자 최소금액 마저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문턱을 낮췄다. 결과적으로 자격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운용사들의 난립을 부추기고, 일반인들도 투자할 수 있도록 만든 최악의 정책이었다.
이와 함께 금융위는 자본시장법 시행령도 개정해 사모펀드가 금융당국에 정기적으로 운용 정보를 보고하는 주기를 6개월로 늦추고, 보고 항목에서도 투자대상 자산의 종류와 위험 관리 관련 사항을 제외해버렸다. 사실상 금감원의 손발을 묶어버린 모양새가 아닐 수 없다.
금융산업 정책과 금융감독 정책 분리 주장 제기
일각에서는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의 원인으로 금융위가 금융감독 정책과 금융산업 정책 권한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금융사고가 반복됐지만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미흡해 금융산업 전체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금융사고가 다시 일어났다는 얘기다.
이에 전문가들은 금융산업 정책과 금융감독 정책 수립 권한을 분리하는 근본적인 대안을 내놔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현재 우리나라는 금융정책을 책임지는 금융위가 감독정책을 동시에 관장하고 있을뿐 아니라 감독집행기구인 금감원에 대해 예산이나 업무수행상으로 지도·감독하고 있어 제대로 된 ‘견제와 균형’이 이뤄질 수 없다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금감원이 금융위로부터 감독 집행 권한을 위탁받는 형식이다 보니 금감원이 사실상 금융위 산하 기구로 위상이 격하되면서 감독기능이 정책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일한 기관에서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기능을 주도함으로써 관치금융이 심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여전히 제기된다.
이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금융산업 정책은 정부 부처가 담당하지만, 금융감독 정책은 독립된 기관에서 수행하는 세계적인 추세와도 맞지 않다고 강조한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에서는 금융감독 체계 개편 작업이 이뤄졌다.
금융감독 구조가 분리된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의 금융감독 구조는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도 업종별로 연방과 주단위로 분산된 구조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재무부 등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감독정책·집행 업무가 독립적으로 수행돼 왔다.
하지만 이러한 방만한 운영이 금융위기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를 설치하고 다수의 감독기관이 이에 참여해 협의로 업무를 풀어나갔다. 기관 수를 줄이기 위해 ‘저축은행감독청’을 폐지하고, 금융소비자보호원(BCFP)을 세워 각종 기관에 분산됐던 소비자 보호기능을 합치기도 했다.
손꼽히는 금융 선진국인 영국의 경우, 기존의 통합형 감독기구인 금융청(FSA)의 조직이 비대해져 업무의 효율적인 수행이 어려워지자, 2013년 이를 해체하고 은행·보험·투자은행의 건전성 감독기구인 건전성감독기구(PRA)와 나머지 금융기관의 감독과 소비자보호를 맡는 영업행위감독기구(FCA)로 분리했다. 이 밖에도 프랑스·호주·뉴질랜드 등이 분리된 감독체계를 갖고 있다. 주요국 가운데 통합형 금융감독 체계를 유지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금융전문가 “금융감독, 독립된 민간기구에 맡겨야”
대선을 앞두고 금융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금융감독체계에 대한 개혁을 촉구하고 나선 것만 봐도 금융산업 정책의 정부부처 이관과 금융감독 정책과 집행기능을 통합해 공적 민간기구에 위임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얼마나 중요한 핫이슈인지를 짐작케 한다.
금융분야 학자 15인으로 구성된 ‘금융감독 개혁을 촉구하는 전문가 모임(금개모)’은 금융감독 개혁 과제로 △감독기구의 조직 △감독 권한의 배분 △감독기구의 운영 △감독 기법의 전환 등 4개 측면으로 구분한 후 각각의 과제에 대해 해법을 제안했다.
금개모는 먼저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공적 민간기구가 금융감독을 중립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개모는 “신용카드 사태, 저축은행 사태부터 최근의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 사태까지 많은 금융사고는 잘못된 금융산업정책이 금융감독을 압도한 데서 비롯됐다”며 “금융감독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휘둘려 기본 원칙까지 저버리는 구조적 문제점을 청산할 때가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현재 금융위원회가 금융산업정책과 금융감독 권한을 모두 보유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금융감독을 정부 정책의 하위 수단으로 종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금융산업정책 권한은 정부의 경제정책부처가 보유하되, 금융감독 기능은 공적 민간기구에 통합적으로 위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개모는 이에 대해 “공정하고 투명한 금융감독의 정착을 위해 금융감독 종사자의 윤리성과 청렴성을 제고하고 감독행정의 공개와 외부 기구에 의한 감시 등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금융감독의 유효성을 확보하면서도 금융감독기구의 권한 남용을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감독 소프트웨어’의 개혁을 제안하기도 했다. 금개모측은 “금융감독의 원칙이라는 큰 틀을 유지하면서 주어진 원칙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금융감독기구가 적절한 재량권을 행사하는 새로운 감독관행의 정착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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