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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진 칼럼]

동생 잃은 ‘국민 형’ 이래진 씨 [조정진칼럼]

기사입력 2022-06-20 00:02:40

 
▲ 편집인·주필
형제는 싸우면서 큰다. 맛있는 것을 좀 더 먹으려고, 부모 사랑을 좀 더 받으려고 하루가 멀다 하고 티격태격 다투면서 자란다. 2004년 개봉해 찐한 감동을 줬던 영화 우리 형’(감독 안권태)은 포스터 홍보문구가 미안하다, 너무 늦게 사랑해서. 12살엔 웬수였고 20살엔 나의 전부가 된이다.
 
연년생이지만 고교 한 반인 형(신하균)과 동생(원빈)은 공부와 싸움에서 각각 전교 1등이다. 하지만 형은 입천장이 벌어져서 태어나는 선천성 기형의 한 종류인 언청이다. 동생은 형만 챙기고 자신은 구박만 하는 듯한 엄마(김해숙)한테 반항해 점점 거칠게 성장한다. 마침내 이웃학교 불량배와 싸움 짱자리를 놓고 한판 승부가 펼쳐진다. 상대방의 반칙으로 동생이 수세에 몰리자 싸움 한 번 안 해 본 형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둘은 함께 실컷 두들겨 맞는다.
 
자식의 학교폭력사건으로 징계위원회에 불려 나온 엄마는 운동장을 말없이 걷다가 형제를 돌아보며 한마디 한다. “느그 둘 중에 한 사람이라도 (누군가 너희를) 괴롭히면 한꺼번에 때려 주라. 그게 형제다!” 영화의 주제를 압축하는 명대사다. 그 후 명문대 의대생이 된 형이 동생을 대신해 죽게 되자 동생은 그동안 한 번도 부르지 못했던 이라는 말을 되뇐다. 미우나 고우나 내 동생, 우리 형인 형제 이야기다.
 
영화에선 동생 대신 형이 죽지만, 현실에선 동생이 죽은 이야기가 있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욱 잔인하고 처참하다. 권력까지 개입했다. 2년 동안 형은 억울한 동생의 죽음을 물고 늘어졌다. 자신이 개발한 전기절감기 판매 회사를 운영하는 형 이래진 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자마자 사업을 뒤로한 채 동생의 죽음과 관련된 진상 규명에 나섰다. 휴전선 너머 보이지 않는 적인 북한과, 북한보다 더 북한 편을 드는 대한민국 문재인 정권과의 지난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2020922일 형 이래진 씨는 사고 현장인 인천 옹진군 소연평도로 가장 먼저 달려갔다. 바다는 말이 없었다. 해양수산부 공무원으로 어업지도선을 타고 공무 중 실종된 동생은 북한군에 의해 총격으로 살해됐고 시신이 불태워졌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만 들었다. 동생의 사망은 믿기지 않았지만 국군과 정부에 의해 진상만은 밝혀지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 후 일은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문 정부는 노름빚이 많은 동생이 월북을 시도하려 바다로 뛰어내렸으나 코로나19 유입을 의심한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후 시신은 불태워졌다는 식으로 발표했다. 국방부와 해경도 맞장구를 쳤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반듯했던 동생을 잘 아는 형은 수긍할 수 없었다. 형은 청와대를 비롯해 국방부·국회·헌법재판소를 찾아다니며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국민청원은 물론 청와대 앞에서 수십 차례 시위와 기자회견도 가졌다.
 
2월17일 서울 종로구 서울유엔인권사무소에서 김기윤(왼쪽) 변호사와 이래진(오른쪽) 씨가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만나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전달했다. [사진=이래진씨 제공]
 
 
동생을 직접 죽인 것은 북한군이지만, 형과 동생 가족에게 더 큰 아픔을 준 것은 문재인정부의 청와대 관료와 공무원들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소용없었다. 유족이 수긍할 때까지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며 뱃길 교통사고였던 세월호 사건을 대하는 태도와는 영 딴판이었다. 유족의 진상규명 요구를 불편하게 생각했다. 오히려 남북평화 분위기 방해세력 즉 반국가사범 취급했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 준다고 선서한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었다.
 
형이 기댈 곳은 국제사회밖에 없었다. 유엔까지 가져갔다.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만나 북한의 사과와 재발 방지 사건 은폐·조작자 엄중 처벌 사건 관련 정보 공개 등의 내용이 담긴 유엔 사무총장한테 보내는 탄원서를 전달했다. 북한의 민간인 살인 만행과 동생이 체포돼 사살될 때까지 6시간 동안 아무 역할도 하지 않은 문 정부의 책임을 따지는 내용도 담았다.
 
마침내 사건 발생 2년 만에 작은 소망의 빛이 들어왔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정부가 진상 규명에 나선 것이다. 국방부와 해경은 당초 월북이라고 단정했던 공식 발표 내용을 번복했다. 윤 정부는 문 정부가 패소한 피살 관련 정보공개 판결에 대한 항소를 취하했다. 머지않아 문 정부가 북한과 내통하며 자국민 살해 사건을 어떻게 은폐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는지 낱낱이 밝혀질 것이다. 아니, 밝혀져야 한다. 다행히 해경 한 명이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실을 찾아 와 수사 전부터 이미 월북 결론이 나 있었다고 양심선언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년 전 청와대 입구 효자로 기자회견장에서 형 이 씨를 만난 일이 있다. 이 씨는 힘내세요하며 손에 쥐어 준 후원금을 사양하며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었다. 그 후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몇 번의 사설과 칼럼으로 이 씨를 응원한 게 다이지만, 이제라도 진상 규명의 불씨가 살아났으니 천만 다행이다. 진실의 승리이자 형의 승리다. 동생 고() 이대준 씨와 형 이래진 씨는 누가 뭐라 해도 참형제다. 이 씨는 이제 국민 형이 됐다.
 

 [조정진 기자 / jjj@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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