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김준구 팀장‖ 임한상·김기찬·이건혁 기자] 찬바람이 거세질수록 한숨이 늘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추위 걱정도 문제지만, 자칫 화재 사고라도 날까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이다. 서울 강남구의 구룡마을도 마찬가지다. 매년 화재 사고를 걱정해야 하지만 올해 내렸던 폭우 수습도 못 한 터라 걱정이 커지고 있다.
구룡마을에서의 화재가 잦은 만큼, 관할소방서와 지자체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소방서는 대응 훈련을 진행하고 구룡마을 중심부에는 소방시설이 갖춰져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여러 차례 작은 시발점이 큰 화재로 이어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화재가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조기에 파악하고 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구룡마을의 특성상 이러한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어서 자칫 대형사고가 우려된다.
나무판자에 LPG 가스… 서울시 강남구의 구룡마을
올해 3월 구룡마을에 발생한 불로 11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당시 불이 인근 대모산까지 번져 소방·경찰·강남구청·산림청 등 총 804명의 인력과 91대의 장비가 투입되고도 5시간 사투 끝에 불이 꺼졌다. 관할 소방서를 포함한 인근 소방서 인력까지 투입되는 대응 2단계가 발령될 정도로 큰 불이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음식을 데우기 위해 불을 켰다가 화장실 간 사이에 바람에 불이 번져 화재 사고로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2017년에는 60대 남성이 야외용 가스히터를 손질하다가 발생한 화재 사고로 31가구에 불이 번졌고 40여 명이 집을 잃은 적도 있었다.
구룡마을에 사는 김내경(가명·70) 씨는 “가스통이 펑펑 터지면 바람이 없어도 불이 회오리를 치면서 올라간다”며 수년 전 화재 사고를 회상했다.
구룡마을 주민들이 취사로 대부분 LPG 가스·연탄을 이용하고 있어 화재 사고에 취약한 것으로 지적된다. 심지어 주거건물이 가건물로 만들어져 있어 화마가 닥쳤을때 매우 위험하다. 떡솜·비닐·합판 등을 엮은 집에 주변에는 낙엽들이 쌓여 있어서 특히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면 화재에 매우 취약한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마을 한 편에는 ‘텐트촌’이 있다. 김수종(가명·63) 씨는 텐트촌을 보여주며 화재사고로 집을 잃었던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사소하게 시작된 불이 쉽게 큰불로 번질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서 사람들의 일상이 위태로운 것이 구룡마을의 현실이다. 김씨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누구 하나 옷을 못 벗고 잔다”며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구룡마을 주민들의 현실을 전했다.
지자체·소방서가 관심 기울이고 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
물론 관할소방서도 이런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강남소방서는 4월14일 구룡마을에서 대형화재 대응 소방훈련을 실시했다. 초기대응에 초점을 둔 이번 훈련은 차량 10대·인원 45명이 동원됐다.
윤득수 강남소방서장은 “대원들의 숙련도를 향상하고 상황에 맞는 장비 사용과 최적화된 전술 사용을 통해 화재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구룡마을 중심부에는 화재 예방을 위한 소방시설이 갖춰져 있다. 소화기는 모두 이용 기간이 2~3년 여유가 있었고 동네 곳곳에는 소방시설로 안내하는 문구들이 눈에 띄었다.
강남소방서 산하 구룡마을 구룡전문대 의용소방대 대원들은 자율적으로 안전점검체계를 확립하고 화재 예방을 위한 순찰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지자체 및 소방에서도 화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활동을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강남소방서는 예방 순찰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는 등을 통해 구룡마을 재난 발생 ‘제로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폭우로 쓰러진 연탄 창고를 수습하던 이강임(70·여) 씨는 불안한 마음을 연신 드러냈다. 이씨는 집 뒤쪽 산길을 가리키며 “등산하는 사람들이 담배 한 번 잘못 버리면 한순간 큰일 나는 거다”라고 말했다.
임시로 막아두긴 했지만, 이씨의 집 뒤편으로는 대모산 등산로가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길에는 낙엽이 쌓여 길과 산의 경계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씨는 “강남구청에서 만날 싸움질이나 하지 말고 낙엽이나 치워줬으면 좋겠다”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구룡마을 주민 대다수가 고령인데다가, 당장 옆집이 불타 없어지는 경험을 했던 주민들로서는 불안한 마음을 쉽게 가라앉힐 수 없는 것이다.
예방이 가장 중요… 소화기부터 화재경보만 갖춰도 사고 막아
전문가들은 화재 예방과 피해 최소화를 위해 화재 예방 시설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전통시장의 경우 화재알림시설 덕분에 큰 사고를 막은 사례가 있다.
올해 7월 대구 성서용산시장의 한 가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늦은 시간에 발생한 화재라 큰불로 번질 수 있었지만 화재알림시설이 역할을 했다. 관할 소방서로 화재 발생 알림이 전달돼 초동 작업이 진행될 수 있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2017년부터 전통시장 화재 피해를 막기 위해 추진한 사업으로 전국 6만여 곳의 전통시장 점포에 화재알림시설을 갖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이에 더해 올해 12월1일부터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을 화재예방법과 소방시설법으로 나눠 시행한다.
이중 소방시설법을 통해 전통시장부터 주택·자동차 등에 소방시설을 비치하도록 세부적인 내용을 담았지만, 구룡마을과 같이 허가 없이 오랜 세월 주민들이 정착하면서 생긴 곳은 이런 시설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취약 시설들에는 가장 간단한 소방시설인 단독 경보형 감지기와 같은 것들이 설치돼 있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라며 “주거시설에 강제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기에 관심을 두고 설치해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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