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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인터뷰] 한국 외교사 산 증인 전 駐러시아 대사 이재춘 씨
이재춘 前 러시아 대사 “국운 상승 이끈 경험 뿌듯”
박정희식 개발 모델에 빠졌던 푸틴과의 만남 아직도 뚜렷
외교관은 나라의 대표… 번지르르한 입보다 진실·정직이 생명
“日 오염수 공세는 對日관계 파탄 속셈… 北 ‘갓끈 전략’ 경계를
김연주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7-27 09:00:01
▲ 이재춘 전 러시아 대사.
 
“외교관으로서 일했던 36년이 대한민국의 국운 상승기와 일치했다는 게 뿌듯합니다.” 이재춘(83) 전 러시아 대사는 최근 스카이데일리와 만나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간명한 한마디로 공직자로서의 삶을 정리했다. 
 
어딜 가든 대접받고 기억해 주는 국가 이름에 감사하면서도 철저하게 계산된 냉혹한 이해관계 앞에선 내 잘못된 판단이 자칫 국운의 상승을 멈추게 하지는 않을지 살떨렸던 순간들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순간적으로 밀려드는 피로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을 털어 내고 다시금 각오를 새롭게 다지다 보면 내면에 잠재된 강인한 생동감과 생명력이 되살아나는 남다른 경험을 하기도 했다. 
 
말해 무엇합니까, 고단함의 연속이었죠.이 전 대사는 그간의 시간들을 돌아보며 불쑥 한마디 하더니 이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외교관으로서 삶이란 경계인으로서 아이덴티티를 갖는 것과도 같았다. 오죽하면 영어의 ‘Diplomatic’이란 단어가 ‘중간에서 줄타기하다’라는 뜻도 함께 내포하고 있을까. 이 전 대사가 풀어 내는 ‘외교 세상만사’식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경계인’이란 말이 그리 이해 못 할 단어도 아니었다. 
 
때론 현대 외교사의 흐름에 몸을 맡겨 순행하다가도 발동걸린 듯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는 복잡다단한 국제정세 속에서 고의로 역행하는 기지를 발휘해 과감한 결단을 내렸던 기억들이 아직 선연하다고 했다. 
 
그런 노력들이 촘촘히 연결돼 하나의 귀중한 결과를 만들어 냈을 때의 보람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직장인도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 성취감이 하늘을 찌를 듯한데 외교관으로서 국운 상승을 이끈 것은 그것과는 실로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의 짜릿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박정희의 경제 모델 도입하려 한 푸틴, 그러나 
 
이 전 대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2000년이었다. 그해 5월 푸틴이 러시아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각국 대사의 신임장을 제정할 때 만나 악수를 나눴다. 
 
“첫 인상은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을 연상케 했습니다.
 푸틴이 당차고 소신 있어서 국가를 잘 이끌 지도자의 인상을 풍겼다는 말도 곁들였다. 
 
“굉장히 좋은 인상을 가진 푸틴이 박정희 대통령식 경제개발 모델을 러시아에 도입해 정착시키면 좋겠다는 말이 계속 나왔어요. 국내 전문가들을 많이 초청해 경제 발전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을 밝히자 처음엔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푸틴의 경제개발 모델은 실패했다. 이 전 대사는 “푸틴과 동료들이 ‘KGB(옛 소련 비밀첩보국)’ 출신이기에 독재 체제를 버릴 수 없는 숙명이었음을 알게 되었다지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어서 독자적인 시장 경제가 뿌리내릴 수 없다는 것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베테랑 외교관으로서의 삶을 정리한 저서 ‘외교관으로서 산다는 것(2011년)’을 펴냈다. 이 책은 주로 지식인 사이에서 인기리에 판매됐다. 무능한 외교관의 해외 파견을 ‘바보 수출’이라고 쏘아붙인 말로 잔잔한 화제를 모았다. 그 말이 일종의 ‘밈’처럼 공직사회 안팎에 돌고 돌았다. 
 
▲ 이재춘 지음·기파랑
외교관으로서 산다는 것’을 집필하게 된 동기를 묻자 이 전 대사는 “공직자로서 내가 걸어 온 삶을 돌아보며 정리하고 외교관이 되고자 하는 젊은 청년들에게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자질과 마음가짐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책이 불티나게 팔린 것에 비하면 저자의 집필 동기에 관한 설명은 좀 심심한 듯했다. 마치 ‘외교공직자 원론’이란 과목이 있다면 그 책의 머릿말쯤을 읽는 느낌이었다. 너무나도 준비된 답변 같았다. 그래서 재차 질문했다. 
어떻게 하면 나라를 대표할 수 있을까요. 
 
공직자의 무게 “나라를 대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나라를 대표한다’는 건 마음가짐의 문제예요. 외교관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죠.충 설명이 이어졌다. 외교관에겐 통찰력·순발력·폭넓은 이해력과 지식·예리한 분별력이 필요한데 무엇보다 신뢰감을 주는 자세와 정직함이 가장 중요하죠.그러면서 진실함이 무기라고 강조했다. 때로는 진실한 마음을 담은 눈으로 하는 외교가 입으로 하는 외교보다 더 효과적일 때가 있어요.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무기가 진실함과 정직함인 것이죠.선명한 답변이었다.  
 
처음 외교부에 들어갔던 기억이 까마득할 정도로 세월이 흘러 이젠 100세 시대에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 전 대사는 세월이 참 빠르다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가 어떤 사명감으로 공직의 무게감을 감내했을지 궁금했다. 
 
“공직자로 36년 일하는 동안 항상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직무에 임했어요. 공직자로서의 최소한의 의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공직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살아오는 동안 심하게 겪었던 고통과 번뇌가 있었는지 물었다. 그는 느닷없이 유년시절로 이야기의 방향을 틀었다. 그러고는 행복에 대해 언급했다. 고무신을 신고 시냇가를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참 행복했다’고 말하며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했다. 
 
올해 83세인 이 전 대사는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나 1944년 초가을 아버지의 고향인 강원도 홍천군에서 10세까지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 후 1950년 6·25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수료한 뒤 1968년 제1회 외무 고시에 합격했다. 이후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등을 거쳐 1995년 초에 외무부 제1차관보로 임명되었고 1996년 초에는 주(駐) 유럽연합 대사로 임명됐다.
 
또 2000년 3월부터 2002년 2월까지 장관급 특명전권대사인 주 러시아 대사를 지냈고 2003년 2월 외교통상부에서 퇴직했다. 그해 4월 홍조근정(紅條勤政) 훈장을 받았다. 
 
현재 북한인권정보센터에서 이사로 일하고 있는 이 전 대사는 “남·북 통일을 이야기할 때 현시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 인권 개선’”이라며 “북한에는 인권에 대한 개념과 이에 대해 알 권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유라는 개념도 없다. 북한의 인권 현황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통일을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이자 북한에서 인권 침해를 받는 이들을 위해 우리가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북한의 인권 실태를 조사·연구·분석·평가하고 자료를 만드는 비정부기구(NGO)다. 2003년부터 매년 북한 인권 백서를 발간하고 북한 종교사·백서도 만들어 왔다. 이 전 대사는 “문재인 정권 5년 동안은 제대로 된 북한 인권 실태 책자가 발간되지 못한 것으로 안다”며 “지금은 백서 발간뿐만 아니라 ‘북한 인권박물관 설립’을 하려고 하는데 자금이 많이 필요해 여러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실버 레볼루션 나라 살리는 데 동참하고파 
 
“은퇴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내겐 아직도 대한민국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고 생각해서 나라를 위한 일이면 뭐든지 하려고 해요.”
 
그는 주말이면 ‘나라지킴이고교연합’에 참여해 ‘자유대한’을 후세대에 물려주기 위한 시위에도 참여한다고 했다. 이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70·80대여서 이를 ‘실버 레볼류션’이라고 한다. 최근 참여했던 ‘일본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반대 세력 저지’를 위한 광화문 시위도 그중 하나다. 
 
이 전 대사는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것은 정파적인 세력들의 현 정권에 대한 일방적인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봤다. 그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는 과학적인 자료를 근거로 하는 것”이라며 “실제로 태평양에 방류하게 되면 미국·캐나다 해역을 먼저 거쳐 한국 해역까지 오는 데는 4~5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제가 있다면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에서 나서야 할 일인데 그들이 아닌 우리나라 일부 세력을 포함해 중국·북한이 반대하는 저의가 무엇이겠느냐”라며 “문재인정부는 북한·중국에 대해 지나치게 굴종적이었고 그로 인한 문제들이 많이 노정되고 있다”고 했다.
 
특히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광우병 사태와 오버랩된다고 주장하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는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억지를 부리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전 대사는 윤 대통령의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한국이 나아갈 길의 향배를 결정지을 중요한 첫 단추라고 평가했다. 한·미 동맹 관계인 미국과의 협의도 없이 4·27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합의를 진행한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한·미동맹 하에서 대한민국과 미국의 공통의 주적은 북한이며 나아가 한·미·일 세 나라가 힘을 합쳐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한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선 북한의 ‘갓끈 전략’에 휘말려선 안 된다고 했다. 갓끈 전략은 대한민국이 한국·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개의 갓끈에 의해 유지되고 있고 이 중 하나만 잘라내도 갓이 머리에서 날아가듯 대한민국이 무너진다는 생각에서 한·미·일 관계를 와해하고자 하는 북한의 대남전략을 지칭하는 용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세력의 핵심 목적은 반일 감정을 야기하는 것입니다. 일본과의 관계를 파탄시키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죠. 국민이 깨어나야 합니다. 나라를 지켜야지, 무너뜨려선 안 되지 않겠습니까.” 인생을 궤뚫어보는 노신사의 점잖은 당부다. 
 
김연주 기자 
 
△동북아 1과장(1981)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1983) △외무부 아주국장(1991) △외무부 제1차관보(1995) △주EU 대사(1996) △주벨기에·EU 대사(1998) △주러시아 대사(2000~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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