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 수술을 받았을 뿐인데 하루 만에 눈이 아프기 시작했고 결국 왼쪽 눈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보험회사는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합니다.”
경기 광주시에 사는 A씨(60대·女)는 2020년 6월12일 지역 안과에서 왼쪽 눈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수정체를 제거한 뒤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는 일반적인 수술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통증이 나타났고, 이튿날에는 두통과 함께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A씨는 분당차병원 응급실을 거쳐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고 안구 내부에 감염과 염증이 생기는 안내염 진단을 받았다. 이후 전방세척술과 인공수정체 제거술, 유리체절제술, 유리체강 내 항생제 주입술 등 여러 차례 수술과 치료를 받았지만 왼쪽 눈은 회복되지 않았다. 분당서울대병원이 발급한 후유장해진단서에는 A씨가 빛의 유무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광각무’ 상태라고 적혔다. 장해분류표상 ‘한 눈이 멀었을 때’에 해당하는 장해지급률은 50%다.
실명은 A씨의 일상도 바꿔놓았다. 사고가 발생한 지 6년이 지났지만 생계를 위해 지금도 남은 한쪽 눈에 의지해 일하고 있다. 그는 “직업을 포기할 수 없어 한쪽 눈으로 계속 일하고 있다”며 “원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명한 뒤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한쪽 눈의 시야를 잃은 뒤 거리감과 물체 크기를 판단하기 어려워져 운전과 주차에도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차량도 여러 차례 작은 차로 바꿨다.
시각장애인 등록은 했지만 한쪽 눈 실명만으로는 보행상 장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장애인 주차표지는 발급받지 못했다. 본지가 관련 부서에 확인한 결과도 이와 동일했다. A씨는 현재 체감하는 지원은 휴대전화 요금 감면 정도라고 했다.
A씨는 수술받은 안과와 2021년 2월 합의서를 작성하고 2000만 원을 받았다. 합의서에는 “병원이 의료적 과실이나 배상에 관계없으나 현재까지 시력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도의적 책임으로 위로 합의금을 지급한다”고 적혀 있다. A씨는 합의금을 받은 뒤 병원에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문제는 이 문구가 보험금 지급 여부를 가르는 핵심 근거로 작용했다. 아울러 의무기록지상 상해코드는 없었고 질병코드(안내염)만 기재된 부분도 보험사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A씨는 현대해상과 KB손해보험에 상해후유장해보험금을 청구했다. 두 보험사는 장해율 50%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A씨 사례가 상해보험에서 보장하는 ‘급격하고 우연한 외래의 사고’의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본지는 백내장 수술 후의 감염과 실명 가능성에 대해 서울 종로구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30년 경력의 안과 전문의 B씨(60대·男)의 의견을 들었다.
B씨는 “백내장 수술은 눈 안을 여는 수술이어서 감염 가능성이 있고 드물지만 실명이라는 중대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며 “한 번 시력을 잃으면 여러 차례 치료를 하더라도 회복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만약 같은 날 수술한 특정 환자 한 명에게만 실명이 발생했다면 수술 과정의 오염이나 의료과실을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현대해상 “외래성 입증할 객관적 자료 확인 안 돼”
현대해상은 수술 후 안내염이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수술 과정에서 외부 사고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병원과 작성한 합의서에도 의료과실을 인정하는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또 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감정이나 법원의 의료과실 인정 판결, 병원의 감염관리 위반 자료 등 객관적인 자료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외부성을 다퉜던 정황이나 근거가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안과 전문의 B씨는 “혈류를 통한 내인성 안내염도 의학적으로 가능하지만 면역기능이 크게 저하된 환자 등이 아닌 이상 매우 드문 경우”라며 “현실적으로는 수술과의 관련성을 둘러싼 입증 책임이 환자에게 남는 구조”라고 말했다.
현대해상은 대법원 판례도 근거로 제시했다. 가입자가 보험약관상 상해사고와 사고·장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례를 근거로, 의료과실이나 수술 과정의 외부 감염 등 객관적 자료가 확인되지 않는 이상 보험금 지급 요건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A씨 측은 해당 판례는 가입자의 입증책임 원칙을 설명한 것일 뿐 의료과실이 인정돼야 외래성이 성립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반박한다. 의료과실은 병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판단하는 기준이고, 외래성은 신체 외부에서 작용한 원인으로 손상이 발생했는지를 따지는 별개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KB손보 “질병치료 중 발생한 합병증”… 입증책임 소비자 몫
KB손해보험은 제출된 의무기록만으로는 외부성을 인정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백내장이라는 질병에 대한 치료과정 중에 안내염이라는 합병증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실명이 된 것이므로 상해후유장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백내장 수술 후의 실명을 상해사고가 아닌 질병의 경과 또는 수술 합병증의 범주로 본 것이다.
본지는 의료소송과 보험분쟁에 정통한 변호사 C씨(40대·男)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는 현행 법리는 소비자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입증 책임을 지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행 판례는 외래성과 의료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소비자가 입증하도록 보고 있지만 의료기록과 수술 과정은 대부분 의료기관이 보유하고 있어 환자가 이를 입증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처럼 환자가 입증하기 어려운 중대한 결과가 발생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외래성을 인정한 뒤 의료기관이나 보험사가 자연적인 합병증이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방향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소비자 보호 차원의 제도 개선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A씨 사건을 맡은 리베라 손해사정은 “백내장 수술이라는 외과적 처치 자체가 신체 외부에서 가해진 행위인 만큼 그 과정과 직접 연관해 예상하지 못한 안내염과 실명이 발생했다면 외래성을 인정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의료과실 여부와 상관없이 수술과 장해 사이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상해보험금 지급 여부를 별도로 판단해야 하며, 의료과실 입증을 외래성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는 것은 약관에 없는 요건을 추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보험약관은 일반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는 기준으로 해석돼야 하며, 약관 해석에 다툼이 있는 경우 소비자 보호 원칙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사건의 핵심 쟁점… 의료과실 있어야만 외래성 인정되나
이 사건의 쟁점은 명확하다. 백내장 수술과 같은 외과적 처치만으로 약관상 외래성을 충족할 수 있는지, 의료진의 과실이 확인돼야만 수술 후 발생한 장해를 외래성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다.
A씨와 리베라 손해사정은 병원의 배상책임 여부와 상해보험상 외래성은 판단 기준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반면 보험사들은 의료과실이나 수술 과정의 외부 감염 등 객관적인 외부 사고가 확인돼야 외래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A씨는 현재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한 상태다. 현대해상과 KB손해보험은 기존 부지급 결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외부 사고와 실명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추가 자료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결국 금융당국이 외과적 수술 자체를 신체 외부에서 작용한 원인으로 볼 것인지, 수술 과정의 구체적인 과실이나 오염 사실까지 확인해야 외래성을 인정할 것인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전망이다.
A씨는 “수술 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수술 이후 예기치 못하게 실명이라는 결과가 발생했다”며 “병원의 과실 여부와 보험약관상 상해 여부는 별개의 문제인데 이를 관련지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설령 병원의 과실여부를 입증해야 하는 사안이 맞다 하더라도 이걸 할 수 있는 환자가 있을까”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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