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고 건물은 사라지면서 표지석을 남긴다. 서울 시내에는 320여 개의 문화표석이 있다. 표지석에는 ‘OO터’라는 제목과 함께 어떤 장소였는지 간략한 설명이 붙어 있다. 관청도 있고 역사적 인물의 생가와 거주지도 있다.
표석을 눈으로만 훑어도 가슴이 묵직해지는 것은 이 돌들이 그 시절 그 시간 속으로 우리를 데려다주기 때문이다. 서대문역 부근 문화일보 사옥 앞 화단에는 동양극장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다.
동양극장은 1935년 평양 출신 거부 홍순언이 아내이자 무용가인 배구자와 함께 설립한 국내 최초의 연극 전용극장이다. 당시 서울 시내에는 조선극장·단성사·우미관 등이 있었지만 영화 상영과 음악공연 위주로 활용되던 터라 연극 전용극장이 절실하던 차였다.
객석 648석의 동양극장은 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과 비슷한 규모였다. 여기에 국내 최초의 회전식 무대에 호리존트(바닥과 배경이 단절되지 않도록 이음새를 없앤 장치)와 난방시설을 겸비하는 등 당시에는 첨단 공연장으로 통했다.
개관공연으로 배구자악극단의 ‘멍텅구리 2세’와 단편 촌극 ‘월급날’을 선보였으며 무용극 ‘급수부’를 공연 무대에 올렸다.
동양극장은 전속극단인 ‘청춘좌’를 설립하면서 국내 최초로 월급제를 도입하는 등 혁신을 꾀하기도 했다. 월급제는 어느 극단도 시도해 보지 못한 일로 유능한 배우들을 대거 영입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때 참여한 배우로 김승호·김선초·차홍녀·지경순 등이 있다.
동양극장은 설립자 홍순언이 1938년 요절하면서 다른 이에게 운영권이 넘어갔지만 10년간 연극공연의 메카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이후에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대관극장으로 전락했고 1958년부터는 영화관으로 전용되다 영화계 불황이 닥치면서 1976년 완전 폐관되었다.
이후 현대그룹에서 교육장으로 사용하다가 1990년에 완전 철거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한편 그 자리에 들어선 문화일보는 청춘좌를 계승하는 의미에서 ‘문화일보홀-청춘극장’을 운영, 매주 토요일 ‘청춘유랑극단쇼’를 선보이고 있다.
동양극장은 연극의 기술적 발전을 이루고 직업 극단을 도입해 우리 연극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신파극을 한국 연극의 주요 장르로 포섭해 연극의 대중화를 이룬 것도 동양극장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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