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라라의 판단에서 대대적 수리 작업이 벌어진 후였다. 임 실장은 김후원이 데려오라고 라라에게 권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거기 주방장 임 실장이 음식 솜씨가 좋으니 한번 데려와 봐요. 뭐니 뭐니해도 식당은 맛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인연이란 것이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그 임 실장이 제 발로 찾아와 주었다.
임 실장은 키가 훤칠하고 인물이 훤했다. 아직 서로 낯설고 어색해 분위기가 살짝 굳어질 때마다 오른손으로 이마 쪽부터 뒤통수 쪽을 죽 훑으며 머리를 쓸어 넘기곤 하면 그의 살짝 벗어진 넓은 이마가 눈에 확 들어왔다. 남도 사람임이 분명한 억양이었지만 여러 지방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타지 생활이 오래라는 방증이었다.
“주방장 생활만 40년이 넘어유. 십 대부터 일찍 주방장을 시작했슈.”
모스크바의 주재원들이 믿고 먹는다는 셰프였기에, 그리고 그녀는 무엇보다도 무뢰한 손님들의 신경질, 짜증 그리고 고함이라는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에 망설임 없이 임 실장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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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의 결정에 반색하며 환영한 건 김후원이었다. 애초 구로반점을 만든 건 그였다. 그가 계획에도 없던 식당을 시작한 건 사업하면서 만난 고려인 동업자 때문이었다.
김미샤라고 하는 카레예츠, 고려인 청년에게는 돈 많은 삼촌이 있었다. 그 삼촌이 돈을 빌려주고는 떼이게 생겼는데, 돈을 빌려간 사람에게 식당을 하던 공간이 있다는 거였다. 결국 그곳을 빚 대신 받기 위해 채무자와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 끝에 겨우 받았다는 것이다. 김미샤가 김후원에게 거기에 식당을 제안했던 거였다.
모스크바에서 식당을 한 건 김후원이 그만큼 모스크바 생활에 지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원은 한식을 먹고 싶은 날이면 라라의 집으로 와서 오랜만에 밥과 국과 김치를 먹고는 좋아하곤 했다.
그렇게 탄생한 김후원의 식당이 나중에 라라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엎어 놓을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식당을 준호에게 일시적으로 넘겨준 것은 후원이 라라에게 보여준 최고의 우정이었다. 식당을 해서 그 돈으로 공부 마치고 라라와 아들에게 돌아가라고, 후원은 한 푼도 받지 않고 식당을 내주었다.
선의가 의롭지 못한 자에게 닿으면 독이 될 수도 있었을 뿐이다.
“라라가 빨리 모스크바로 가서 식당을 틀어잡고 해야 일이 끝나요. 준호가 저렇게 맹탕처럼 앉아 있어서는 죽도 밥도 안 됩니다. 식당은 여자 없이는 안 되는 일이에요. 박기헌이 찾아와서 식당을 준호에게 1년만 넘겨주자고 했을 때, 나나 기헌이나 모두 라라가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했어요. 그렇지만 이대로 부부가 떨어져 있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라라가 서울에서 아이 데리고 혼자 애쓰는 게 안쓰러워서, 준호가 공부 마치고 돌아가게 하자고 나와 기헌이가 결정한 일입니다.”
김후원이 그때 한 말이었다.
이제 파랑새로 변한 그곳에서 라라에게 남모르는 고민 하나를 더 만들어주는 존재는 이일욱이었다. 혼자 있는 라라를 보면 일욱은 늘 뒤에서 덮치듯 달려들어 끌어안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마치 힘들어하는 그녀를 위로하듯 어깨를 주물러주며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우정의 행동으로 보였다. 거부하는 것이 오히려 오버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것이 그에게는 안아도 좋다는 시그널로 읽힌 듯했다. 아니면 그는 그냥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행동으로 나타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그녀가 혼자 있을 때만 노리던 그가 언젠가부터는 옆방에 준호가 누워있어도 그녀를 자기 침대 속으로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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