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상속세 개편을 공식화했다. 지난달 31일 의원 워크숍 직후 “상속세제의 근본적 변화를 촉구하는 국민적 요구가 높은 만큼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변경하고, 대주주의 할증과세를 폐지하는 한편 상속세율은 주요 선진국의 사례를 감안해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는 것 등을 정부와 추가 협의해 상속세 개편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도 최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이어 가면서 상속세 개편 제의는 만시지탄의 감이 있는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상속세 폐지 또는 완화를 주장하면 부자감세라는 역풍을 맞을 우려가 있음에도 추진할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윤석열정부가 부자감세 시즌2를 예고한 것”이라고 비판해 진통이 예고된다.
한국의 상속세가 너무 과도해 많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이제 더 이상 미루기 힘든 실정이다. 한국의 상속세율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악명이 높다. 과세 표준이 30억 원을 넘을 경우 세율은 50%인데, 기업 경영권까지 물려받으면 10%p가 할증돼 60%로 높아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 55%·프랑스 45%·영국과 미국 각 40%·스페인 34%·아일랜드 33%·독일과 벨기에는 각각 30%다. 캐나다·호주 등 15개국은 상속세가 없고 상속세 원조국인 영국도 단계적 상속세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상속세 실효세율도 20.05%를 기록해 처음으로 20%를 돌파했다. 일본(55%), 프랑스(45%), 미국·영국(40%) 등도 상속세율이 높은 편이지만 공제 혜택이 커 실제로 내는 상속세율은 한국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일본은 비상장 기업의 경우 세액 80%의 납부를 유예했다가 5년 뒤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면제해 줘 실효세율은 11% 정도라는 분석이다. 프랑스의 가업 상속 실효세율도 각각 11.25% 정도이고 미국에선 자녀가 부모로부터 2340만 달러(약 306억 원)까지 세금 없이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한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세계적 추세에도 맞지 않는 징벌적 상속세를 이대로 두고는 기업투자 활성화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없다. 더구나 현행 상속세율은 2000년 세법 개정 이후 그대로다. 그동안 물가가 올랐을 뿐 아니라 경제 규모도 엄청나게 많이 커졌는데 경제 규모나 소득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과세구간은 그대로여서 세금 부담만 증가하고 있다.
국세청의 ‘2023년 국세 통계 연보’를 보면 2022년 피상속인 34만8519명이 남긴 재산 96조506억 원 중 상속인들이 부담해야 할 결정세액은 19조2603억 원인 것으로 나와 있다. 상속세 규모는 매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2018년 2조5197억 원이던 상속세 결정세액은 △2019년 2조7709억 원 △2020년 4조2294억 원 △2021년 4조9131억 원 등으로 불어났다. 2022년은 삼성의 12조 원을 제외해도 7조2000억원을 웃돈다. 한국의 상속세와 증여세 부담의 총 조세 대비 비율도 2.4%(2021년 기준)로 주요 7개국(G7) 평균(0.6%)에 비해 네 배나 많다.
상속세는 기업을 부도내거나 피(被)인수합병 당하게 해 일자리를 잃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때 상속세율이 70%에 달했던 스웨덴도 2005년 상속세를 폐지했는데, 제약회사 아스트라가 상속 과정에서 상속세를 내기 위해 주식을 팔면서 주가가 폭락해 영국의 제네카에 피인수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합병된 아스트라제네카가 바로 코로나19 백신으로 유명해진 회사다.
각종 반(反)대기업 규제에다 높은 상속세 등 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여건이 되지 않는 환경 때문에 한국의 대기업 비중은 0.1%에 불과하고 중소기업의 비중은 99.9%에 달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중소기업 고용 비중은 선진국의 거의 두 배 수준이며 대기업 고용 비중은 10% 안팎으로 미국의 약 3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반면 청년들은 대기업의 양질 일자리를 갖고 싶어 하기 때문에 청년층의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이 극심해 높은 청년실업률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처럼 상속세를 내는 것보다 법인세를 더 내고, 일자리 특히 양질의 대기업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사회에 이익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OECD 38개 회원국 중 15개국이 상속세를 폐지했지만 한국은 요지부동이다. 한국경제인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OECD 평균 수준인 30%로 인하하고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를 폐지하며 △과표 구간도 현행 5단계에서 3단계로 단순화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문제인 청년층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상속세를 전향적으로 전면 개편할 때다. 민주당도 ‘부자 감세’ 프레임을 버리고 경제 살리기·양질의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상속세 수술 입법에 협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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