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소비자물가에 대해 완만한 둔화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지정학적 리스크, 기상 여건 등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고 강조했다. 인플레이션 둔화에도 생활비 부담이 큰 상황에 주목하며 생활비를 낮추기 위한 구조개선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이창용 총재는 18일 서울 중구 한은 별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향후 물가는 최근 국제유가와 농산물가격 둔화를 감안할 때 5월 전망과 부합하는 완만한 둔화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정학적 리스크, 기상여건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만큼 물가가 예상대로 목표에 수렴해 나갈지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국내 경제는 5월 전망에 대체로 부합하는 성장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나 수출과 내수 간 회복세에 차이가 있어 내수 측면에서의 물가압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한은은 지난달 23일 올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2.6%로 유지한 바 있다. 당분간 2%대 후반 수준을 보이고 하반기 2.5% 내릴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번에도 그때와 큰 차이는 없다. 소비자물가는 3월(3.1%)부터 4월(2.9%)·5월(2.7%) 지속 하락하고 있다.
이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있는 것과 달리 국내 식료품·의류 등 필수소비재 가격은 주요국에 비해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어 생활비 부담이 큰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 총재는 “인플레이션은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생활비 수준은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렵고 인플레이션이 지난해 초 5.0%에서 올해 5월 2.7%로 낮아졌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잘 느끼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며 “이제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생활비 수준을 낮추기 위해선 어떠한 구조개선이 필요한지 고민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기업 가격 인상 및 이상기후는 물가 불안 요인
물가 상승률 둔화에도 물가가 목표에 수렴하는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부연한 것은 기조적 물가 흐름에 대한 판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결과로 분석된다. 유가·환율·농산물가격 관련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상황에서 기업들의 가격 인상으로 물가 상승 확대 모멘텀은 커졌다.
이날 공개한 한은 조사국 물가동향팀 연구에 따르면 올해 4월 이후 가공식품, 일부 공업제품, 외식업 등에서 원재료 가격 상승 등 비용압력에 대응한 제품가격 인상 관련 언론보도는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제조업의 가격인상 실적·전망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2022년 2분기 이후 꾸준히 둔화하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완만한 상승 흐름을 다시 나타내기 시작했다.
다만 기업의 가격 인상 움직임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봤다. 가격 인상 품목의 CPI 내 비중이 3.3%로 작은 데다 일부 업종에 국한돼 있어 직접적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평가다. 4·5월 기업의 가격 인상 빈도는 소폭 확대했으나 이 기간 인상 폭은 축소됐다. 가격 인상 품목이 늘어나긴 했으나 비용의 가격 전가 정도는 제한적이란 의미다. 가격 인상 움직임이 지속되면 물가 둔화 흐름을 더디게 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승호·이지은 연구위원은 “기업들의 가격인상 움직임이 확산될 경우 공급측 상방리스크와 맞물려 기대심리가 불안해질 가능성도 있는 만큼 물가목표 수렴에 대한 더 큰 확신을 위해서는 농산물가격과 국제유가 움직임, 가격인상 확산 정도 등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온상승이 농산물가격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을 높인다는 결과도 발표했다. 한은 조사국 물가동향팀 연구에 따르면 폭염 등 일시적인 기온상승 충격(1℃) 발생 시 농산물가격 상승률은 0.4~0.5%p 올라가고 6개월가량 지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각 월중 평균기온이 해당 월의 장기평균(1973~2023년) 대비 1년 동안 1℃ 상승하는 경우를 가정해 그 영향을 분석한 결과, 1년 후 농산물가격 수준은 2%, 전체 소비자물가 수준은 0.7% 높아지는 것으로 추정됐다.
지구 온난화의 장기 영향을 시산한 결과도 비슷했다. 탄소배출 시나리오에 따라 2040년까지 농산물가격은 0.6~1.1%, 전체 소비자물가는 0.3~0.6% 각각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최근 이상기후가 잦으면서 기후플레이션 문제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며 정부가 중장기적 시계에서 계획성 있게 대응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병수·민초희 연구위원은 “전 세계 차원에서 이뤄지는 기후리스크에 대한 공동 대응에 적극 참여해 기후변화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국내 기후환경에 적합한 농작물의 품종 개발 등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중앙은행은 기후변화로 인한 농산물가격 변동이 여타 품목으로 전이되면서 전반적인 물가 불안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경제주체들의 인플레이션 기대 관리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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