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옥칼럼] 우리 사회의 악령 ‘사이비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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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8-26 00:02:40

칼 세이건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천문학자’라는 타이틀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만큼 한때 전문가·비전문가를 막론하고 인류의 시선을 우주로 끌어들였던 학자다. 특히 그의 대표작 ‘코스모스’는 우주에 관심이 없었던 대다수 일반 대중까지 천문학의 문턱으로 유인한 저서로 평가된다.

하지만 세이건의 관심 분야는 천문학에 그치지 않는다. ‘코스모스’만 보더라도 역사·생물학·지리학·문학 등의 요소가 곳곳에서 유기적인 관련을 맺는 가운데 이 방대한 우주와 그 한 귀퉁이의 ‘창백한 푸른 점’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 하나인 인간의 존재를 조명하고 있다.

천체물리학·천문학의 대가이면서 우주생물학의 창시자이기도 한 세이건의 관심사는 다양하다. 특히 마지막 저작으로 남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The Demon-Haunted World)’에서 세이건은 과학과 민주주의를 동일한 선상에 놓고 ‘사이비’가 악령처럼 활개 치는 세상에 대한 우려와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세이건이 보내는 경고는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현재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 방류를 둘러싼 여야 공방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8월24일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오염처리수를 바다로 방류하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의 우려에 대해 일본 측은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라는 방사성물질 제거 설비로 물과 비슷한 성질을 지닌 ‘삼중수소’를 제외한 방사성물질을 기준치 이하로 제거한 뒤 바닷물로 희석해 방류하기 때문에 해양 생태계에 가해지는 피해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후쿠시마 오염수 테러’라 부르며 “안전성 검증 없이 경제적 논리 하나만으로 진행되는 오염수 투기는 세계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일본 대사관 항의 방문과 투기 결정을 철회시키기 위한 총력 투쟁에 나섰고, 국회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저지를 위한 1박2일 1·2차 비상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정부가 국내 해역·공해 등에서 시료를 채취해 약 5만 건의 검사를 진행한 결과 방류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안전 기준을 벗어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의 공포심을 조장하는 테러를 저지른 것은 오염수가 아니라 ‘괴담’이었던 것이다. 최근 대통령실은 “야당이 후쿠시마 괴담을 방류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라며 “과학적 근거 없는 황당한 괴담이 거짓 선동으로 밝혀졌음에도 야당은 대국민 사과조차 없이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야당이 유포한 비과학적이고 근거 없는 괴담의 여파로 정부는 쓰지 않았어도 될 예산 1조6000억 원을 투입해 과학적인 근거로 국민을 설득해야 했다. 낭비된 예산보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이 괴담 선동에 대해 사과와 반성은커녕 “지금은 영향이 없어도 나중에는 모른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여전히 국민의 공포감 조성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이들은 한미 FTA 개정 당시 광우병 논란의 핵심이 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문제를 중심으로 2008년 5월2일부터 2008년 8월15일에 걸쳐 일어났던 대규모 시위, 그리고 2016년 10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수십 차례 이어졌던 촛불 집회의 달콤한 추억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당시 시위와 집회를 촉발시켰던 이슈들이 대부분 뒤늦게 ‘가짜’ ‘선동’으로 드러났음에도 또다시 선동에 나서고 있는 것은 ‘숨겨진 진실’보다는 ‘자극적인 가짜뉴스’가 대중 선동에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칼 세이건은 ‘사이비’ 과학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도 ‘사이비’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유사 과학과 미신이 해가 갈수록 더욱 사람들을 솔깃하게 만들고 요정 사이렌의 광기 어린 노래가 더욱더 크게 울려 퍼지고 현혹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한다. 대중의 귀에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함께 구호를 외치면 그것은 얼핏 ‘민주주의’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근거 없는 선동은 ‘사이비 민주주의’일 뿐이다.

세이건의 한국어판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번역한 이상헌은 역자 후기에서 “현재는 어느 시대보다 많은 사람이 교육의 혜택을 받고 있으며 정보 기술 덕분에 세상의 거의 모든 정보에 접근 가능한 시대”라면서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참과 거짓·실재와 허상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이비 민주주의’와 ‘참된 민주주의’ 구분도 어려운 이 시대에 언론의 힘과 역할은 매우 크다. 본지가 5·18의 진실을 찾아 보도하는 과정에서 단단한 편견의 벽에 부딪치면서도 ‘참과 거짓’ ‘실재와 허상’을 구분해 전하는 일에 자긍심을 갖는 이유다.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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