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머리에 핵을 이고 살며 밖으로는 자국 중심주의의 물결이 살벌한 칼춤을 추는 가운데 국가안보와 경제에 집중해야 할 이때 난장판이 된 정치 상황에 모두가 넋을 놓고 있지 않은가.
북한보다도 가난했던 시절을 이기고 전 세계 국력 순위 6위의 부강한 나라를 만든 우리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이 혼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를 살피다 보면 그 꼭짓점에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좌파 세력의 득세와 한반도와 세계의 안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북한 핵 개발의 출발점이 김대중 정권임을 고발한 전 국정원 직원의 기록… 이 절박한 시점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편집자 주]
갱상도 시골 할매 우리 할머니
말이 나온 김에 우리 할머니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해 두는 게 좋겠다. 할머니는 전형적인 경상도 시골 할머니였다. 내가 이발소에서 머리를 박박 밀지 않고 스포츠형으로 좀 길게 깎아서 돌아오기라도 하면 “와(왜) 온 돈 주고 반 머리 깎아 왔노?”라고 핀잔을 주시던 분이다.
할머니는 한글을 전혀 읽지 못했다. 아주 완전히 까막눈이었다. 글자는커녕 숫자도 읽을 줄 몰랐다. 심지어는 시계조차 볼 줄 몰랐다. 할머니 방에는 작은아버지가 생신 선물로 사다 준 괘종시계가 하나 걸려 있었다. 어느 날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심각하게 말씀하셨다.
“야야, 아무래도 저 시계가 고장이 낫는 갑다. 어젯밤에 저 시계가 한 번 땡 치고, 한참 있다가 또 한 번 땡 치고, 세 번이나 그카더라….”
그 시계는 매 시각 중간마다 한 번씩 울리도록 되어 있었는데, 할머니가 우연히 12시30분 이전부터 1시30분 이후까지 깨어 계셨는가 보다.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시고 난 후 할머니의 남은 시간이 얼마나 적적했으면 그런 불면의 밤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지독히 아끼며 살다 가셨다. 평생 좋은 옷 한 벌 입어 보지 못하고 남루하게 지냈다.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아끼는 걸 유일한 생존 비결로 아신 분이었다. 벼알 하나, 밥풀 하나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우리 집 마당은 할머니가 하도 많이 쓸어서 언제나 반질반질했다. 어쩌다 소죽물(소죽을 끓이는 데 쓰려고 받아 놓은 쌀뜨물이나 개숫물)에서 밥풀이 하나라도 발견되는 날이면 마치 큰 난리라도 난 것처럼 온통 경을 치셨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도시락에 밥알을 하나라도 남겨 가면 혼나기 때문에 도랑에서 도시락을 씻어서 들어가곤 했다.
‘나는 천생 촌놈’… 문명과 동떨어진 어린 시절
나는 여느 시골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문명과 완전히 동떨어진 세계에서 살았다. 아마도 나는 문명 이전의 마지막 세대에 속할 것 같다. 우리 마을엔 전기도, 전화도, 수도도 없었다.
나는 예습이란 말도 복습이란 말도 몰랐다. 학교 갔다 와서는 진흙탕 속이나 모래사장에서 뒹굴면서 자랐다. 바쁜 농사철이면 농사일도 도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소 먹이고, 꼴 베고, 소죽 끓이는 일은 늘 내 차지였다. 훗날 논산훈련소에 입소해 제초 작업을 나가 보니 우리 중대에서 내가 낫질을 제일 잘했다. 그때 나는 ‘내가 천생 촌놈인 게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당시 시골의 주요 교통수단은 소달구지였다. 좀 지나서 경운기라는 물건이 들어오면서 달구지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아버지가 ‘대동 경운기’를 몰고 오시던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우리 이웃 동네는 국도변에 있어서 전기도 일찍 들어왔지만 우리 동네는 그렇지 못했다. 찻길에서 한참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자동차를 보기가 어려웠다. 재수가 좋은 날이어야 겨우 한 대 볼 수 있을까 말까 했다.
어쩌다 멀리서 먼지 풀풀 날리며 제무시(GMC) 트럭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우리는 “차차차, 차~온다”면서 ‘3-3-7 박수’를 치며 환호하곤 했다. 그러고는 트럭에 한참 매달려서 갔다가 차 뒤 번호판 위에 달린 꼬마전구를 전리품으로 ‘수확’해서 돌아오곤 했다.
어릴 때 나에겐 기차가 오히려 친숙했다. 멀리 강 건너 마을에 경부선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기다란 화물열차가 지나갈 때면 재미로 차량 숫자를 세어 보곤 했다. 한밤중에는 ‘철거덕 철거덕’ 하는 기차 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들에서 놀거리 찾던 시골 아이
얘기하는 김에 나의 어릴 적 생활에 대해 좀 더 소개해 보겠다. 나는 여느 시골 아이들처럼 들에서 스스로 놀거리를 찾았다. 이른 봄철이면 노고지리를 잡으러 온 들을 뛰어다녔다. 노고지리 사냥은 노하우가 필요한 작업이다. 우선, 노고지리 둥지를 찾아야 하는데, 무작정 들을 헤맨다고 둥지를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하늘에 떠 있는 노고지리가 착지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노고지리라는 녀석은 영리한 동물인지라, 하늘에서 곧바로 자기 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녀석들은 자기 집 근처에 착지하고 난 후, 나름대로 사주경계를 펼친 다음 안전한 걸 확인하고 걸어서 제집으로 찾아 들어간다. 노고지리가 들어가 앉고 나서 조금 지난 후에 갑자기 달려들어야 한다. 놀란 노고지리 녀석이 자기 집에서 ‘퍼드득!’ 하고 날아오르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노고지리가 날아오른 주위를 뒤지면 보리밭 사이에 다소곳이 자리 잡은 둥지를 찾을 수 있다. 일단 둥지만 찾으면 잡는 건 시간문제이다. 한 군데 출입구만 남겨두고 둥지를 봉쇄한 후 출입구에 덫을 놓고 잠복근무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장마철이 지나고 큰물이 진 다음에는 강가에서 빠꾸미를 잡아 싸움을 붙이고, 여름철이면 강둑에서 쇠똥구리를 잡아 싸움을 붙이며 놀았다.
빠꾸미는 모래밭 속 한 뼘쯤 깊이의 구멍 속에 사는 애벌레이다. 구멍에 밀짚 대롱을 꽂은 후 모래를 파내고 나면 잡을 수 있다. 잡은 빠꾸미 두 마리를 고무신 뒤축에 넣어 두면 저희들끼리 죽을 때까지 싸움을 한다. 빠꾸미는 대가리 색깔이 금색을 띠는 금빠꾸미와 은색을 띠는 은빠꾸미가 있는데, 대체로 금빠꾸미가 싸움을 잘한다.
쇠똥구리는 소똥 옆에 구멍을 뚫고 사는, 검은 색깔의 조금 큰 곤충이다. 이놈을 잡으려면 우선 소똥을 치우고, 고무신이나 장화로 물을 떠 와서 구멍 속으로 물을 부어 넣으면 된다. 한 10여 분쯤 지나면 녀석들이 질식해서 스스로 기어 나온다. 쇠똥구리 수놈은 특히 이마에 멋진 뿔을 달고 있어서 보기가 좋다.
할 일 없는 겨울철에는 구슬치기‧자치기‧딱지치기 등을 하며 놀았다. 특히 ‘망구’라는 놀이를 많이 했다. 아마 표준말로는 술래잡기 정도가 될 것이다. 또한 겨울철이면 시골에서는 도박이 유행했는데, 그런 영향을 받아서 나도 어릴 때부터 화투치기를 많이 했다. 초등학교 시절, 이미 민화투는 물론이고 뻥이나 육백 등 다양한 화투 놀이를 두루 섭렵했다. 일찍부터 ‘짤짤이’와 ‘도리짓고땡’에 눈을 떠서 동네 형들과 어울려 놀곤 했다.
들에서 나는 모든 게 군것질거리
시골에는 마땅한 군것질거리가 없었다. 나는 간식거리도 흙 속에서 자체 해결해야 했다. 기본적으로 들에서 자라는 것은 모두 먹거리였다.
봄철이면 학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둑에서 ‘피기’를 한 움큼씩 뽑아 먹으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초봄에는 참꽃을 꺾어 먹고, 늦봄에는 감꽃을 주워 먹었다. 감꽃은 아삭거리는 감촉과 달콤쌉살한 독특한 맛이 있었다. 감꽃을 지푸라기로 엮으면 예쁜 목걸이를 만들 수도 있었다. 목걸이를 만들어 벽에 걸어 두면 하얀 꽃이 짙은 갈색, 즉 감색으로 변한다. 감이 어느 정도 자라 땡감이라도 되면 소금물에 넣어 떫은맛을 없애고 먹기도 했다.
여름철이면 참외‧수박 등 서리할 품목들이 온 들에 널려 있었다. 별로 맛은 없지만 밀이나 완두콩도 좋은 서릿감이었다. 이웃 동네까지 원정 가서 복숭아와 자두‧포도 등을 서리해 먹는 짜릿한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가끔은 재미로 고구마나 무를 서리해 먹기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가을 하굣길에 이웃 동네의 무밭을 서리하다가 들켜서 줄행랑을 쳤는데, 아이들 일부가 가방을 빼앗기는 바람에 다음 날 학교에서 단체로 몽둥이찜질을 당하기도 했다. 물론 달구지떼기로 변상도 해야 했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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