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15º
습도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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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10월8일 이른 새벽, 세상이 어두움에 잠겨 있을 때 경복궁 담을 넘는 군사들이 있었다. 조선 군사 복장을 한 이들은 일본군이었다. 앞을 가로막는 대장 홍계훈을 총과 칼로 처치한 그들은 경복궁의 가장 내밀한 곳 건청궁까지 서슴없이 돌진했다. 고종과 민 황후는 총성에 풋잠에서 깨어났다. 대군주 고종이 왕후를 피신시키려 했으나 왕후는 대비마마를 지켜야 한다며 거절했다.
고종은 눈앞에서 군복을 입은 일본 장교들을 보았다. 그들은 왕후를 찾았다. 가로막은 고종의 어깨를 잡아채 칼로 겁박하여 장안당에 가둔 군인들은 왕후의 처소인 곤녕합으로 돌진했다. 옥호루로 올라가 왕후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는 궁녀들을 2층 높이에서 하나씩 집어 던졌다. 세자와 세자빈도 머리채를 잡히고 폭행을 당했다. 왕후의 처소를 끝까지 지키던 이경직 대감은 팔이 하나씩 베어진 후 죽임을 당했다. 결국 왕후는 일본 소위 미야모토 다케타로의 손에 시해되었다. 그들은 왕후의 시신을 능욕했으며, 날이 밝기 전에 증거를 없애려 녹원에서 불살랐다.
일본 제국주의 정부는 왜 이웃 나라 왕후를 살해했을까? 일본은 청일전쟁의 전리품인 요동반도를 삼국간섭으로 이미 토해냈다. 그런데 조선 왕실은 러시아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조선의 식민화를 위해 왕후를 없애기로 했다. 군인 출신 미우라 고로가 급히 조선 공사로 들어왔다. 해산되는 훈련대 군사들이 대원군과 획책한 반란으로 꾸미기 위해, 아소정에 있는 대원군을 강제로 가마에 태워 궁으로 들어왔다.
왕후 살해에 성공한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일본 낭인의 소행이라고 은폐했다. 이 사건을 지켜본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과 미국 장군 다이의 증언으로 일본 정부의 만행은 세계에 드러났다. 어두운 새벽을 틈타 모든 일을 끝내려 했던 작전에 차질이 생긴 것은, 대원군이 궁궐로 동행하는 것을 끝내 거부하여 시간이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민 황후 제거에 성공한 일본은 고종을 유폐시키고 본격적인 조선 식민화에 들어갔다. 이후 고종은 필사적으로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어(移御)하여 망명정부인 대한제국의 기틀을 다진다.
당시 경성 총영사 우치다 사다스케의 보고서에는 이 일이 ‘왕궁에서 일어난 사변(事變)’이라고 적혀 있다. 일제의 역사 기록에 의거해 우리 역사책에도 이 끔찍한 만행이 ‘을미사변’으로 명명되었고 우리 모두 그렇게 배웠다. 일제는 이 사건을 첫 번째는 대원군 주도 사건으로, 두 번째는 일본 낭인에 의한 왕후 살해로 은폐했다. 하지만 궁궐에 끌려온 대원군은 궐내 한 모퉁이에 버려져 있었을 뿐,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 왕후 시해 또한 낭인이 아닌 일본군 소위의 짓이었다.
일본군의 하수자(下手者) 미야모토 다케타로 소위는 귀국 후 조선 왕후 살해 사건 법정에 서지 않았다. 그는 이 사건의 참고인 자격으로 형식적 조사를 받은 후, 군대에서 소집 해제되었다가 1년 8개월 후 다시 헌병으로 입대하여, 반란군의 저항이 치열한 대만으로 보내졌다. 그는 파견 3개월여에 현지 반란군에 의해 전사했는데 이름이 야스쿠니 신사에는 올려지지 않았다. 이웃 나라 왕후를 죽인 자를 신사에 올렸을 때 감당해야 할 외교적 문제를 피하려 한 것이다.
을미년 황후 시해는 일본 정부에 의해 일어났다. 이 사건은 막연한 ‘을미사변’이 아니다. 명백한 사건의 주체를 밝히는 ‘을미왜변’으로 불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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