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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하늘도 조상도 버린채 인본에만 빠졌다”
박찬희의 홍익인간(弘益人間) 강론…기독교·불교·유교에 대한 비판 <2>불교
박찬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15-01-10 17:08:48
 ▲ 박찬희 칼럼니스트 ⓒ스카이데일리
[전 칼럼에 이어] 다음은 불교를 살펴보자.
 
한국불교는 음력 4월 8일을 부처님 탄신일로 정하고 그 가짜 탄신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거리에는 온통 연등이 장식된다. 세계에서 4월 8일을 부처님 탄신일로 하는 나라는 우리 한국밖에 없으며, 원래 음력 4월 8일은 북부여 시조 해모수의 탄신일이었으며 古來(고래)로 해모수의 탄신일에 연등행사를 해 오던 것을 불교가 그 날에 해모수를 빼고 석가를 설정한 것이다. 이 또한 기독교가 우리의 하나님을 훔쳐간 것과 같다.
 
우리 고조선의 시조 檀君王儉(단군왕검)은
辛卯 五月 二日 寅時 生于檀樹下
신묘 오월 이일 인시 생우단수하에서 탄생했다.
 
신묘(BC 2370)년 5월 2일 인시(03~05시) 檀樹下(단수하)-蘇塗(소도)에서 탄생했다. 석가와 예수는 그 탄생 년 월 일이 불분명한데 우리의 단군왕검은 이렇게 명확하다.
 
이러한데 오늘날의 이들 종교에 노예가 된 수많은 사람들이 제 조상은 알아보지 못하고 이국의 실패한 자들의 엉터리 탄신일을 성대하게 치르고 있다. 이 자들이 제 조상 제사는 이렇게 성대하게 치르지 않는다. 이것이 사대주의의 근성이다. 조상이 없었으면 나(我)라는 존재가 없다는 것을 망각한 채 말이다. 背恩忘德(배은망덕)도 類萬不同(유만부동)이다.
 
BC 13세기경 인도의 원주민은 농경민이었는데 수렵민족인 ‘아리안’족(게르만족의 조상)이 침략하여 이들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고 지배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바로 카스트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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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 제도는
1급; 브라만 성자(절대자) 계급
2급; 크샤트리아 왕과 무사(군인) 계급
3급; 바이샤 평민 계급
4급; 수드라 노예 계급
 
이렇게 정해 놓았는데 브라만은 물론 침략자들의 몫이었을 것이고, 이 사성계급이 태어나는 과정이 브라만 위에 ‘프라브라만’이라는 초 절대자가 있었다. 이것은 창조주를 말 하는 것이다.
 
1급 브라만은 프라브라만의 이마에서 나왔고, 2급 크샤트리아는 프라브라만의 옆구리에서 나왔고, 3급 바이샤는 프라브라만의 정강이(무릎)에서 나왔고, 4급 수드라는 프라브라만의 발바닥에서 나왔다.
 
석가의 탄생이 2560여 년 전 이라고 하니까 석가 탄생의 수 백 년 전의 일이다. 이렇게 카스트 제도는 이미 인도사회에 관습화가 돼 인도의 백성들을 지배하고 있는 시점에 석가가 태어난다.
 
석가는 카피라국 정반왕의 아들로 태어나 장차 왕위를 계승할 왕세자 이지만 그는 2급 크샤트리아의 계급으로서 석가위에 1급 브라만이 있다. 브라만은 절대자의 계급이라 2급인 석가가 다스릴 수 없다. 즉, 석가는 태어나서 보니까 인간들에게 차등이 있어서 불평등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 현실에 고민을 하게 된다.
 
인간의 본성은 평등한 것인데 이렇게 불평등하게 돼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을까를 고민 한 것이다. 그런데 불교의 경전에는 이런 말은 전혀 없다. 오로지 生, 老, 病, 死 四苦(사고)만을 고민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人類愛(인류애)적인 발상으로 고민을 한 위대한 聖人(성인)의 정신을 이렇게 축소해 놓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典據(전거)를 따라오면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자세히 분석 해 보면 석가도 제자들도 공통으로 거짓말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석가는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으로 7보씩 걸었으며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르치며 天上天下唯我獨尊(천상천하유아독존), 一切界苦我當安之(일체계고아당안지)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불교사전에서 찾아보면
 
天上天下唯我獨尊;‘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라는 뜻으로, 싯다르타가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은 뒤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면서 읊었다는 글귀다. 이것은 후대의 불교인들이 창작해 낸 설화로, 이 우주에서 인간보다 더 존엄한 것은 없다는 뜻이다.
 
一切界苦我當安之; 모두가 고통스러우니까 내가 안락한 곳으로 안내 하리라. 이렇게 기술 해 놓았는데 불교의 核心(핵심)은 바로 이것이며, 이것을 분석 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불교의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은 석가 자신이 하늘 위 하늘 아래 홀로 존귀하다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잘못 된 해석이고 가장 보편타당한 해석은 인간존엄의 선언이다. 왜 이렇게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해야만 했을까? 즉, 이것은 인도의 카스트제도에 반기를 들고 카스트제도는 틀렸다고 선언한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차등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 평등하다. 다시 말 하면 하위 평등이 아니고 상위평등을 시킨 것이다. 이러다 보니까 너무 나아가서 인간을 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로 설정을 한다.
 
이 대목을 깊이 思惟(사유)해 보아야 된다. 이렇게 인간을 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로 설정을 하는 것은 카스트제도를 타파하기 위함인데, 그 카스트제도를 탄생시킨 근원인 ‘프라브라만(창조주)’을 제거하기 위해 인간을 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로 설정을 한다.
 
이러다 보니까 불교에는 神(신)이 없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일관된 설정이 되겠으나, 석가가 어머니 마야부인의 옆구리로 나왔다는 것이다. 이 마야부인의 옆구리 탄생 설은 바로 카스트제도의 반영이다. 이러니까 앞의 주장과 뒤의 카스트제도에 승복하는 것은 전혀 상반된 논리다. 불교가 왜 이렇게 짜여 졌는가를 제시하겠다.
 
석가 재세 시에는 석가이전부터 자이나교라던가 여러 사상들이 있었다. 그 사상을 가진 자들이 석가를 찾아와 많은 논쟁을 하지만 석가는 그들을 논리로서 굴복을 시킨다. 석가는 大覺(대각)을 이룬 사람이라 他心通(타심통)까지를 하여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가면서 논쟁을 하니까 그 누구도 석가를 당해내지 못한다. 당대의 어느 사상가도 석가에게 腹心(복심)은 하지 않더라도 석가를 논리로서 꺾지 못한다.
 
결국 석가 사후에 인도천하를 평정한 아쇼카왕이 등장했는데, 그는 불교에 귀의해 인도천하를 불교사상에 입각해 다스린다. 이때가 불교의 전성시대였다. 나란다 불교 대학에는 학승들이 수천(3000여)명씩 불교를 탐구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불교는 그 세력이 위축되고 퇴락해 갈 무렵 석가보다 700여 년 후에 용수보살이 태어난다. 용수보살이 다시 불교의 중흥을 이루기 위해 대 타협안을 내 놓은 것이 오늘날의 불교는 중도사상이라고도 하고 중관철학이라고도 하는 “불교는 모든 것을 다 수용한다”이다.
 
※ 불교가 인도에서 처음에는 반짝 전성시대를 구가하기도 했으나 용수 때에 와서는 왜 그렇게 그 세력이 위축됐으며 지금은 힌두교의 세에 밀려 아예 퇴출이 됐는가? 그 것은 불교에는 神(신)이 없기 때문이다. 신이 없다는 것은 眞理(진리)가 아니다. 불교가 신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을 우주에서 가장 상위에 놓고 신은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한국불교도 승려들은 신이라는 존재를 하찮게 인간의 아래로 내려다보고, 불교 학자 중에는 산사의 산신당, 칠성당 등 우리의 고유 신앙의 표상들은 사찰에서 퇴출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처럼 불교 신자들은 인간을 신의 상위로, 신을 인간의 아래로 보는 시각이다.
 
이에 본 고장인 인도에서 불교가 퇴출이 된 것이다. 이렇게 불교는 좋게 말하면 원만하고 나쁘게 말하면 두루뭉술이고, 흐리멍텅하다. 막걸리에 뜸물을 타서 막걸리도 아니고 물도 아닌 어정쩡한 사상이다.
 
불교는 오로지 自我探究(자아탐구)만을 가르치고 있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어디서 왔는가, 또한 내가 어떻게 살면 사후에 어디로 갈 것이다.
 
윤회의 실체를 唯識學(유식학)과 俱舍論(구사론)에서는 확실하게 밝혀주고 있다. (이 유식학과 구사론으로 윤회의 실체를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고, 인간이 창조된 神의 피조물로서 일회성이라는 논리는 틀렸다는 것을 반박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이것만을 수차례 강론해야 하기에 여기에서 멈춘다)
 
불교는 萬法歸一(만법귀일)이라는 단어를 쓸 자격이 없다. 왜? 불교는 정치를 버렸다. 그러나 인류는 정치를 떠나서는 사회의 질서를 잡아 나아갈 수 없고 우리가 먹고사는 살림살이를 꾸려 나아갈 수 없다.
 
석가는 카피라국의 정반왕의 아들로 장차 왕위를 계승하여 카피라국을 통치해야만 했으나 그는 그것을 버리고 출가해 구도 끝에 오로지 인생의 生, 老, 病, 死 四苦만을 말했다.
 
우리의 ‘홍익인간사상’에서는 敬天(경천), 崇祖(숭조), 愛人(애인)사상이 있는데 불교는 오로지 愛人思想(애인사상)만을 가르치고 있으며, 우주 만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의 가치가 있다고 설파한다. 철저하게 人本主義思想(인본주의사상)이다. 이에 반해 기독교는 神本主義思想(신본주의사상)이므로 이들은 그 교리대로라면 상호 만날 수 없다. 우리의 홍익인간사상은 이 둘을 합친 神人合一(신인합일) 사상이다.
 
불교는 自我(자아)를 探究(탐구)하고 자아를 啓發(계발)하고 자아를 上昇(상승)시키는 최상의 가르침이다. 이 점은 불교가 올바른 眞理(진리)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불교는 自然(자연)의 法則(법칙)에 역행을 하고 있다. 자연의 법칙은 種族保存(종족보존)의 법칙이다. 그러나 승려는 출가를 하여 결혼을 안 한다.
 
자신은 어버이로부터 몸을 받아 태어나는데 자기는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하지 않고 후손이 없음으로 엄청난 빚을 지고 저승으로 그냥 간다. 불교는 부모에 대한 孝(효)는 말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불교에 부모은중경이라는 것이 있는데, (국악 가수인 김영림은 이 노래를 잘 부르기로 유명하다) 이것은 불교가 중국에 와서 중국 공자의 효사상과 접목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지, 인도에는 없는 것이다.
 
이 같이 불교는 오로지 自我探究(자아탐구)만을 가르치지 인간이 어떻게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정치는 석가 자신이 버렸음으로 정치에 대한 말은 없다.
 
이 칼럼을 보시는 독자들께서도 현 민주주의 이전의 정치제도는 왕권전제주의의 세습주의만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므로 弘益和白(홍익화백) 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 홍익화백주의 의한 현 민주주의 이후의 인류가 맞이해야 할 정치제도를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발상으로 명쾌하게 제시하고자 한다.
 
불교에 칭찬을 해 주고 필자 또한 그 것을 좋아하는 것을 하나 들라면 ‘바루공양’이다. 현 지구촌 인류가 가장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첨단무기 개발 경쟁이고 그 다음이 음식물쓰레기이다. 모든 음식물에는 쌀, 채소, 과일, 물고기, 육고기 이 모두가 다 생명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그들의 생명을 빼앗았으면 그들에게 고맙고 미안함을 느껴야지 그것을 깨닫지 못함으로 음식물을 함부로 많이 만들어 다 먹지 못하여 버리게 된다. 그 버리는 양 만큼은 생명을 빼앗지 않아도 되는 생명을 추가로 함부로 해치는 것이다. 이것이 죄라면 참으로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런데 승려들은 바루공양에서 딱 먹을 만큼만 덜어서 먹는다. 그러니 낭비가 없다. 이 행위는 더없는 칭찬을 해줘도 된다.
 
<본 칼럼의 필자의 의견이며 스카이데일리 편집방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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