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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포커스]-팩트로 본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진실(中-6·25전쟁)
6·25전쟁은 스탈린의 묵인 하에 저지른 김일성의 적화야욕
“전쟁 발발 3일 이내 남한 완전 점령하겠다 장담한 김일성”
박선옥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0-03-09 00:05:40
▲ 남한에서 군인 약 60만명의 사상자와 100만여명의 민간인 사망자, 부상자, 행방불명 등 인명피해가 발생한 6·25전쟁의 비극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 전쟁을 누가 왜 일으켰는지에 대한 역사적·객관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사진=국가기록원]
 
▲ ⓒ스카이데일리
[특별취재팀=박선옥 부장|문용균·김병만 기자]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큰 비극적 사건은  6·25전쟁(한국전쟁)이다.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가 발생했고 그 상처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 남아있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한 지 약 70년이 지나도록 이 역사적 비극에 대한 해석은 확고히 정립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스카이데일리는 이번 기획을 통해 6·25전쟁 당시의 사실들을 밝힘으로써 이 전쟁의 발단을 둘러싼 진실을 드러내고 올바른 역사관 정립에 일조하고자 취재에 나섰다.
 
지난해 7월 정경두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6·25전쟁은 김일성과 노동당이 벌인 전쟁 범죄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 야당 의원의 질문에 침묵하며 대답을 피했다. 그는 “6·25가 전쟁 범죄인가 아닌가”는 이어진 질문에도 약간 머뭇거리다 “어떤 의미로 말씀하는 것이냐”고 되물으며 즉답을 피했다. 그 후 거듭된 질문에서 정 장관이 북한의 남침이라는 데는 동의를 표했으나 이와 같은 일련의 질문에 대한 국방장관의 태도는 6·25에 대한 현 정권의 의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인민군이 전차 242대를 앞세우고 남한을 공격해 온 것을 시작으로 1953년 7월 27일까지 약 3년 1개월 동안 전쟁이 이어졌고 이 기간 동안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통계에 따르면 이 전쟁으로 한국군 약 13만7천여명이 사망했고 부상자도 45만여명이 발생했다. 전쟁은 군인뿐 아니라 무수한 민간인의 목숨도 앗아갔다. 사망자 24만5천여명, 부상자 23만명, 행방불명과 납치 등을 합치면 모두 100만여명의 남한 민간인이 피해를 입었다.
이런 비극을 낳은 전쟁이 북한 김일성의 전쟁범죄에 의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정 장관이 즉각 답하지 못한 것처럼 일각에서는 6·25전쟁을 ‘민족해방전쟁’으로 인식하고 이러한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에 우려가 제기된다.
 
“국내외적 6·25 북침설 잠재운 옐친의 비밀문서”
 
▲ 안찬일 박사는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전달한 비밀문서 외에도 6·25가 북한의 남침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팩트는 많다고 밝혔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66)은 6·25전쟁이 남한을 적화통일하려는 김일성의 야욕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당시 북한의 국력은 남한을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었어요. 사실상 1974년까지 북한의 GNP, GDP가 남한보다 앞서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김일성이 자신감을 갖고 당시 소련의 스탈린에게 이 같은 계획을 의논했어요. 하지만 스탈린은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이 분명 개입할 것이라면서 우려를 표했지요. 그러자 김일성은 전쟁 발발 후 3일 안으로 남한을 완전히 점령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어요. 소위 ‘3일설’이지요.”
국내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안 박사는 이후 국정원에 20년간 근무하면서 북한 관련 자료를 열람할 수 있었던 덕분에 북한의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도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또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서 초빙교수 자격으로 연구하는 동안 동아시아 연구의 권위자인 찰스 암스트롱 교수로부터 한국전쟁 관련 자료의 도움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한국전쟁에 관해서는 주로 남침설, 북침설, 남침유도설, 이렇게 3가지 설이 있어요. 북한이 남한에 침략했다는 남침설이 지금은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부에서는 북침설과 남침유도설이 나돌기도 했지요. 북한은 여전히 북침설을 주장하고 있구요. 남침유도설은 미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전쟁을 하도록 유도했다는 주장이죠.”
“재미있는 일은 몇 년 전 대학에서 강의 중 학생들에게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북침’이라고 답한 학생들이 많아서 이유를 물으니 ‘북한이 침략했으니 북침’이라고 대답하더군요. 단어가 통용되는 뜻을 반대로 생각해서 생긴 해프닝으로 웃어 넘겼던 기억이 있어요. 아무튼 ‘남침’ ‘북침’의 뜻을 제대로 모를 정도로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사건이자 비극인 6·25에 관한 상식이 부족한 현실을 드러낸 것이죠.”
안 박사는 6·25가 남침이라는 증거는 많지만 국내외적으로 북침설을 잠재우게 된 확실한 증거는 ‘옐친의 비밀문서’라고 설명했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을 통해 한국전쟁과 관련된 소련의 비밀문서를 전달함으로써 이를 계기로 전 세계 학계가 북한의 남침설로 결론을 냈다는 것이다.
“1994년 러시아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에게 옐친 대통령이 6·25와 관련된 500여쪽에 달하는 문서를 넘겨줬어요. 이 문서를 통해 6·25가 소련 스탈린의 묵인과 중국 마오쩌둥의 지원하에 이루어진 김일성의 준비된 남침이라는 것이 전 세계에 밝혀졌어요.”
당시 러시아가 한국에 넘겨준 문서는 1949년부터 1953년까지 소련 외무부와 북한 외무성 간의 외교전문 등으로 6.25전쟁 직전부터 전쟁 중에 오간 300여종의 극비문서다. 따라서 6·25 발발 전후의 상황과 원인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자료로 평가된다.
“그래서 스탈린은 중국이 무기를 제공한다는 조건과 미국이 개입하기 전에 북한이 남한 침략 전쟁을 끝내도록 한다는 조건 하에 묵시적으로 김일성에게 전쟁 승인을 한 거예요. 사실 북한은 이보다 훨씬 전에 전쟁준비를 시작했어요. 북한정권 수립이 1948년 9월인데 김일성은 이보다 앞서 2월 8일에 이미 정규군 창설을 먼저 서둘렀죠.”
안 박사는 옐친의 비밀문서 이외에도 북한의 남침이라는 걸 증명하는 사실 중에는 남한 측이 전혀 전쟁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도 중요한 증거가 된다고 설명했다.
“북한군이 서울을 향해 쳐들어왔는데 당시 장창국 육군본부 작전교육국장은 이 사실을 모르고 서울 시내 거리를 걷다가 정보국 당직자가 거리에서 메가폰을 들고 전쟁이 났다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서야 이 사실을 알았단 말이죠. 이 한 가지만 보더라도 남한이 전쟁준비를 하고 전쟁을 일으킨 쪽이라는 주장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에요. 또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있던 시대가 아니어서 당시 국방장관은 일요일이라 자택에서 전화코드도 뽑아놓고 쉬고 있었다는 말도 있어요.”
“앞서 말했듯이 김일성은 3일 안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큰소리쳤어요. 김일성의 계획은 서울을 점령해서 국회를 장악하는 동시에 남한 전국에 있는 약 20만명의 남로당이 들고 일어나도록 한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건 ‘순진한 착각’에 불과했어요. 남로당이 각 지역을 장악하지 못한 거지요.”
 
“북한의 대남전략은 ‘반파쇼 민주화운동’”
 
▲ 김일성대학 출신의 박현종 목사는 인터뷰 중 탈북민의 신원이 노출되면 북한에 있는 가족에 피해가 갈 수 있다며 얼굴 노출을 꺼렸다. ⓒ스카이데일리
  
박현종 목사(80)는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탈북민이다. 그는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목사지만 북한에서는 오랜 기간 군 요직에 있었다. 6·25 전쟁이 났을 때 그는 함경남도 북청에 사는 10세 소년이었는데 당시 일을 생생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전쟁이 나자 시내 있는 학교들이 모두 산골로 피난을 갔어요. 거기에서 학생들은 나무총을 들고 군사훈련을 받았죠.”
“북한에서는 6·25가 북침이라고 가르치고 또 모두들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 이유로 북한은 1948년부터 남한이 전쟁준비를 하면서 국지적으로 북한을 침략해왔다는 주장을 내세우지요.”
박 목사는 북한에서 15살의 나이에 군대에 입대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급중학교 재학 중 입대했는데, 군대는 입대하는 군인들에게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다’는 내용의 혈서를 쓰게 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국시는 ‘통일’입니다. 이를 기준으로 대남정책을 전개하지요. 전쟁 직후에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남한 못지 않았어요. 남한도 전쟁 피해가 컸지만 북한 역시 인명과 가옥 파괴 등 피해가 남한 못지 않았지요. 북한은 전쟁으로 인해 국토가 쑥대밭이 됐고 북한 전역에서 겪었던 전쟁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그런데 김일성은 전쟁으로 초토화된 북한 현실의 원인으로 미국을 지목하고 인민들에게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겼어요.”
박 목사에 따르면 북한은 4·19 이후에는 미국을 향했던 화살을 남한에 대한 대남전략으로 바꿨다. 그리고는 남한에서의 ‘반파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도록 전략을 짰다.
“남한에 개입하려는 북한은 이런 지령을 내렸어요. ‘조선혁명을 모스크바에서 지휘할 수 없듯이 남조선혁명을 평양에서 지휘할 수 없다’면서 ‘우리 혁명가들을 남조선 현지에 파견해서 반파쇼 민주화운동을 전개하라’는 것이죠. ‘민주화운동’을 명분으로 남한을 분열시켜 결국 적화통일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전략이지요.”
박 목사는 인터뷰 말미에 인생의 대부분을 북한에서 살았고 북한의 선동선전 업무에 종사하던 탈북민으로서 현재 대한민국이 누리는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잊지 말아 달라고 국민들께 당부하고 싶다고 전했다.
“대한민국이 지금 서민들의 경제적 여건도 어렵고 우한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지만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 건국과 발전을 위해 힘쓴 지도자들의 위대함을 잊지 말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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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옥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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