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세계를 향하는 ‘시민의 정치’를 꿈꾸고 가장 아래로부터의 ‘보통정치’를 말해요. 보통의 시민들에게 사회의 마이크를 돌려줘 정의로운 국회와 올곧은 정부를 만들고, 국가폭력에 의해 시민권을 박탈당한 이들과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모든 이를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죠.”
자유민주주의가 보편적인 체제로 자리 잡은 오늘날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국가폭력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채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식이다. 시민들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피를 흘리며 투쟁하지만 국가권력을 상대로 승리하기는 쉽지 않다. 국제연대가 필요한 이유다.
‘세계시민선언’은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시민들과 국경을 넘어 연대하는 비영리단체다. 세계시민의식을 퍼뜨려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난달 17일에는 영화 ‘뮬란’ 개봉일에 맞춰 보이콧 1인 시위를 벌였고 홍콩 우산혁명의 주역인 조슈아 웡과 연대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이설아·박도형 세계시민선언 공동대표와 최승헌 세계시민선언 회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홍콩 항쟁은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
세계시민선언은 홍콩 연대 활동을 계기로 결성됐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열린 ‘홍콩항쟁에서 5·18정신을 만나다’라는 토론회에서 만난 것이 시작점이 됐다. 그 자리에서 이설아 공동대표와 박도형 공동대표는 국제사회의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기 위한 청년 단위의 학생 연대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서로 확인했다. 당시 이 공동대표와 박 공동대표는 활동하는 단체와 추구하는 정치적 성향도 달랐지만 홍콩 항쟁에 관한 생각이 일치하면서 올해 5월 시민단체 세계시민선언을 결성했다.
“저희는 홍콩항쟁 연대 활동을 지속적으로 했어요. 특히 영화 ‘뮬란’ 보이콧 활동을 활발히 했죠. 물론 그 외에도 국제연대가 필요한 사안이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였어요. 예를 들어 주뉴질랜드대사관 내 성추행 사건이 터졌을 때 정보공개 청구와 항의 등을 했고, 벨라루스 민주항쟁 시위가 벌어졌을 때 성명서를 내며 연대 활동을 했어요.”
세계시민선언은 영화 ‘뮬란’ 개봉 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본사 앞에서 보이콧 성명을 발표하고 1인 피켓 시위를 벌이며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러한 활동을 한 이유는 영화 ‘뮬란’이 국가폭력을 묵인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주연배우 류이페이가 작년 홍콩항쟁 당시 시위대를 조롱하고 경찰을 지지했을 때 디즈니는 그 발언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어요. 사회문제에 관해 즉각 사과했던 예전과 다른 모습이었죠. 국가폭력을 암묵적으로 옹호했다고 생각해요. 또 영화 엔딩 크레딧에서 신장위구르 당국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잖아요. 소수민족에 폭력을 저지르고 있는 공안당국이 감사를 받을 만한 주체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측면들을 고려했을 때 영화 ‘뮬란’은 국가폭력을 전부 묵인한 콘텐츠가 분명하죠.”
세계시민선언이 홍콩항쟁 문제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 그들은 홍콩문제는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이므로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되는 사건이라고 답했다. ‘G2’ 국가로서 모범을 보여야 할 중국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홍콩은 평범한 사람들이 여행하기 좋은 평화로운 관광지였어요. 근데 중국이 국가보안법으로 홍콩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달라졌죠. 경찰을 동원하며 강압적으로 시민을 탄압했잖아요. 누군가를 때리거나 괴롭히면 안 된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아는데 그런 것을 뻔히 알 법한 나라가 시민을 향해 폭력을 자행한다는 건 말도 안 되죠. 우리나라도 비슷한 역사를 겪었기 때문에 다른 문제보다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었어요.”
오늘날 국가폭력 사례는 중국 정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럽, 아프리카, 중동 등 대륙을 가리지 않고 여러 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피를 흘리며 투쟁 중이다. 대통령 부정선거를 계기로 시작된 벨라루스 민주항쟁과 ‘태국은 국왕의 것이 아닌 국민의 것이다’라는 구호로 전개되고 있는 태국 민주항쟁 등이 대표적이다. 세계시민선언은 국가권력이 자행하는 폭력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민주시민들과 연대하고 있다.
“벨라루스 민주항쟁에서 경찰 폭력이 굉장히 심해요. 시민들은 경찰 폭력을 중단하라는 뜻으로 하얀색 옷을 입고 ‘부끄러운 줄 알아라(Shame)’라는 구호를 외치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국가권력을 상대로 싸우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태국에서도 헌법 개정을 요구하며 독재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죠.”
국가폭력은 민주주의와 시민의 인권을 짓밟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세계시민선언이 생각하는 국가폭력의 의미는 좀 더 포괄적이었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도록 강요하는 것부터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행위까지 모두 국가폭력으로 보았다.
“카타르에서도 국가폭력이 자행되고 있어요.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사망하고 있죠. 희생자는 모두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앞두고 경기장을 짓는 데 동원된 해외 노동자들이에요. 이런 것도 거시적인 측면에서 국가폭력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비중이 적게 다뤄져 안타깝죠.”
“올해 초 미국에서 일어났던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도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민주항쟁이라고 생각해요. 미국 내 경찰들의 반복적인 흑인 살해로 조지 플로이드를 포함한 많은 흑인이 사망했잖아요. 흑인 혐오를 부추기는 폭력적인 분위기 속에서 국가가 방관하고만 있어 안타까웠어요.”
담론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존재
세계시민선언의 모토는 ‘세계를 향하는 시민의 정치’와 ‘아래로부터의 보통 정치’다. 담론장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돌려줘 그들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언론사에서 대학생의 어려움을 취재할 때 기사에 나오는 표준 대학생의 모습은 소위 명문이라는 S.K.Y. 재학생 남성이에요. 결과적으로 상위 3~4% 학생들만 데려다 놓고서는 그들이 겪는 고충을 취재하는 식이죠. 그들의 어려움을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여성 혹은 지방대 또는 고졸 청년들이 소외되는 점이 문제예요. 비율로 따졌을 때 70~80%나 해당하는데 말이죠. 스피커가 큰 사람들의 목소리만 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내내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답변했지만 힘든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조심스럽게 재정적인 부분이라고 밝혔다. 청년단체다 보니 ‘돈’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었다.
“단체를 운영하기 위해선 돈과 사람이 필요해요. 근데 저희는 사람은 있어도 돈은 없어요. 현재 서로 각출을 하며 버티고 있죠. 사실 국제연대를 주장하는 단체는 저희가 처음이 아니에요. 열심히 활동하다가 재정적인 문제를 버티지 못해 다 사라졌죠. 그래서 저희는 당장 힘들더라도 사업 모델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서 비전을 보여주고 싶어요. 사단법인으로 등록해서 제도권에 편입해 활동하는 게 목표 중 하나죠.”
세계시민선언이 꿈꾸는 사회는 폭력이 정당화되지 않는 사회다. 과거 구의역 사고처럼 최소한 일하다가 사람이 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 문제는 곧 국가폭력으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하다가 사람들이 죽었을 때 국가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잖아요. 꼬리 자르기 식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최종책임자는 늘 솜방망이 처벌만 받죠. 그런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는 데 앞장 설 생각이에요.”
세계시민선언은 향후 재생산이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외교부 산하에 사단법인을 설립해 지속적으로 단체 활동을 하고 싶다는 의지였다. ‘주뉴질랜드대사관 성추행 사건’에서 외교부를 비판한 점이 마음에 걸리지만 정상적인 국가라면 차별 없이 승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작년에 홍콩연대를 할 때 대자보를 붙이면서 활동을 했어요. 근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만 연대활동을 진행하고 있죠. 만약 코로나 사태가 완화되면 홍콩항쟁 전시회를 여는 것이 단기적인 목표예요. 홍콩항쟁과 민주화운동가들의 사진을 전시하는 것이죠. 장기적으로는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뒤 교육기관처럼 민주시민교육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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