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스타일의 대성공으로 지금은 월드스타로 대접받는 싸이(본명 박재상)지만 데뷔 당시만 해도 그는 ‘악동’ ‘날라리’ ‘양아치’로 불렸다. ‘싸이’(PSY)라는 활동명도 ‘싸이코’(Psycho)에서 따올 정도였다. 또 자신의 이름 ‘(재)상이’를 주변 사람들이 부를 때 사투리로 억양이 비슷한 ‘(재)싸이’와 비슷한 것도 ‘싸이’로 정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는 반도체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학창시절 타고난 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좋아해 학교에선 오락부장과 응원단장을 맡았고 사람들에게 코믹한 춤을 보여주며 에너지를 채웠다. 성적도 나쁘지 않았기에 엘리트 코스를 밟을까도 고민했지만 공부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공부를 강조하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어찌할 수 없었다.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기 위해 미국 보스턴대학교 국제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이때도 싸이는 보수적인 아버지의 눈을 피해 미국에서 제대로 놀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내 학교를 중퇴한 그는 학비를 유흥비로 탕진했다. 그러다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싸이는 남은 학비로 컴퓨터, 전자키보드, 컴퓨터와 연결해 연주할 수 있는 미디(MIDI·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 등을 배웠고 버클리음악대학 프로페셔널 뮤직과에 입학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싸이는 청음, 현대 음악 작곡, 전자 음악 등 교과 과정 수업을 받았지만 중퇴한 뒤 가수로서 꿈을 이루기 위해 귀국했다.
한국에 돌아온 싸이는 23세 때 2001년 1월 ‘PSY From The Psycho World!’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 앨범에서 ‘완전히 새 됐어’라는 가사로 널리 알려진 타이틀 곡 ‘새’가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통통한 몸매에 번쩍이는 재킷을 입고 열정적인 춤을 선보여 ‘엽기가수’라는 수식어와 함께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이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해 11월 대마초 흡연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것이다. 이로 인해 방송 출연을 금지당하면서 싸이는 반짝 스타로 잠시 떠올랐다가 가요계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기사회생하는 행운을 맛봤다. 가수 생활을 잠시 접고 자숙 중이던 싸이는 월드컵 당시 SBS 이혜승 아나운서와 인터뷰한 것이 계기가 돼 출연 정지가 해제됐다.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싸이는 “나는 당시 생업이었던 자숙을 멈추고 시청 거리 응원에 나섰다”며 “응원을 하고 있는데 취재 중이던 이혜승 아나운서가 나를 즉석 인터뷰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그 모습이 SBS 6시 뉴스를 통해 나갔다. 이를 계기로 방송에 복귀하게 됐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해 싸이는 ‘챔피언’을 발표하며 복귀에 성공했다. 이후 ‘낙원’ ‘아버지’ ‘연예인’ 등의 많은 히트곡을 냈다. 하지만 만 29세가 되던 2007년 또다시 구설에 휘말리고 말았다. 군복무 관련 문제였다. 검찰은 싸이가 군 복무 당시 ‘지정업무 외 종사’ 혐의가 있다며 수사를 벌인 것이다. 결국 싸이는 2007년 현역으로 재입대했고 연예병사로 활동한 후 2009년 제대했다. 재입대는 싸이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꿨다.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거친 싸이는 2012년 엄청난 일을 맞게 된다.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에서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월드스타로 떠오른 것이다. 당시 그의 유튜브 뮤직비디오는 조회수 수십억건을 기록할 정도로 화제가 됐고 퍼포먼스는 모두가 따라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후 싸이는 ‘젠틀맨’ ‘행오버’ ‘나팔바지’ ‘I LUV IT’ 등 여전히 그만의 독특한 감성과 음악, 퍼포먼스를 담은 곡들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편 싸이는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기 전, 자신의 콘서트에서 현장을 뒤흔드는 퍼포먼스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올해는 볼 수 없게 됐다. 코로나가 종식된 후 싸이가 보여줄 가수로서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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