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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의 청담유감(有感)

‘대통령 아들’ 문준용에 대한 다른 생각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1-06 10:00:49

 
▲홍찬식 칼럼니스트(전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특혜 논란에 ‘달빛 대신 햇볕 보라’는 엉뚱한 화살
//직업으로서의 예술가에 대한 역설적 조명 끌어내
//예술에 대한 찬사와 과잉 공급으로 빈곤 더 부추겨
//어른들이 ‘듣기 좋은 말’ 말고 ‘필요한 말’도 해야
//영세 예술가에 대한 활발한 토론으로 지난한 문제 풀라
 
세계 문화의 중심으로 손꼽히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MoMA가 있는 도시. 그 중심가에 위치한 PA 예술고등학교는 영화와 뮤지컬로 제작된 ‘페임(fame)’의 무대다. 해마다 입시철이면 미국 전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지원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지만 최종 합격자는 200명에 불과하다. ‘페임’은 선택 받은 유망주들의 꿈과 도전, 그리고 좌절을 그리고 있다.
 
최근 대통령 아들 문준용 씨의 좌충우돌 행보를 보며 ‘페임’을 다시 떠올렸다. 1980, 90년대에 유행했던 작품으로 이제는 기억에서 멀어졌으나 문 씨를 둘러싼 논란에 많은 것을 시사해주기 때문이다. 문 씨는 특혜 비판이 나왔을 때 “다들 어려운데 누구보다 혜택 받아온 제가 지원을 받겠다고 나선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며 자세를 낮췄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제 작품은 대통령 아들이 아니더라도 예전부터 인정받고 있다’고 자기자랑을 하며 엉뚱한 방향으로 화살을 돌렸다. 사람들은 달빛을 가리키고 있는데 그는 햇볕 가리지 말라고 화를 내는 격이었다. 다들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에 대한 연민도 지울 수 없다. 그동안 사람들이 무심했던 수많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존재, 직업으로서 예술가의 어려움이 그를 통해 역설적으로 드러났다. ‘페임’에서 너무도 생생하게 다루고 있듯이.
 
문 씨는 토로했다. “코로나 때문에 아무 것도 안 할 수는 없고 그거(전시회)라도 해야겠으니 피눈물을 흘리며 혹여 한 점이라도 팔아보려는 것이다.” 다른 예술가의 말이었다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림직한 호소다. 그러나 대한민국 최고의 ‘아빠 찬스’를 갖고 있는 문 씨가 자신의 억울한 처지만 자꾸 강변하려고 하니 일이 꼬이는 것이다.
 
2009년 리메이크된 영화 ‘페임’의 첫 장면. 예술고등학교 입학식에서 교장이 환영 인사를 한다. “올해 1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지원했지만 그 중 200명만이 여기서 공부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입니다. 이제 성공한 거나 마찬가지일까요? 여러분은 여기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배우게 될 겁니다. 만약 지름길을 찾고 있거나 명성이나 쉬운 보상을 원한다면 지금 당장 떠나는 게 좋습니다. 여러분의 자리를 대신 채울 재능 있는 젊은이들은 차고 넘치니까요.” 예술가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가를 깨우치려는 죽비 소리와 같다. 입학식장은 일순 숙연해진다.
 
한국 사정은 어떨까. 언제부터인지 문화예술을 떠받드는 사회 분위기가 고조됐다. 예술은 위대하다, 고귀하다 같은 찬사들이다. 문화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인식도 일반화됐다. 전체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직업으로서의 문화예술은 또 다른 문제다. 문화예술은 대표적인 승자독식의 세계다. 문화 소비자는 예술가의 명성을 사고 그 명성은 예술가 중 극소수만 갖는다. 성공하는 이들은 1%에도 못 미친다. 이런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술 지망생이 크게 늘었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골드러시’에 빗대어 ‘아트(art)러시’라는 말이 나온다.
 
예술인 빈곤 문제는 구조적이다. 우선 예술인 양성기관이 과잉 상태다. 국내 대학의 예술계열 입학정원은 전문대를 포함해 모두 5만8350명(2020년 교육부 교육통계서비스)이다. 해마다 이 정도가 대학 문을 나선다는 얘기도 된다. 국내 10대 대기업이 연간 채용하는 대졸자 신입사원 규모가 많아야 5만 명이다. 민간기업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영세한 문화계 형편으로는 수용 불가다. 대학 문을 나서자마자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찬바람 부는 거리에 내몰린다.
 
그동안 한국 경제가 많이 발전했고 소득 수준도 높아졌으나 예술 영역은 제자리걸음이다. 예술인들의 평균 수입은 연 1281만원, 소요 경비인 연 309만원을 빼면 순수입은 972만원(2018년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그친다. 한 달 평균 81만원 꼴이다. 단언컨대 예술 분야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저소득 직종이다.
 
문준용 씨에게 개인전 지원금으로 1400만원을 지급한 서울시의 해당 사업은 ‘코로나 피해 예술인 긴급 지원’이었다. 500건을 뽑는데 4999건이 지원했다. 10대1의 경쟁률이었다. 이 안에는 문 씨에게처럼 적지 않은 돈을 주는 사업도 있었지만 50만원을 지원하는 사업도 있었다. 자존심 강한 예술가들이 체면 불구하고 몰려들었다는 얘기다. 코로나 이전에도 사정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해법으로 예술에 대한 정부 지원을 주장하지만 시각은 엇갈린다. 미국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는 문화예술을 지원하지 않는 게 대원칙이다. 대신 민간 후원이 활발하다. 반면 유럽은 정부 역할이 큰 편이고 한국도 여기 속한다. 미국과 유럽 방식에 각각 일장일단이 있으나 정부 지원은 문화예술의 예속화를 초래하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정부가 마음먹으면 돈을 미끼로 예술가의 영혼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한류가 정부 지원 아닌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성취됐듯이 기본은 자생 능력이다.
 
다시 영화 ‘페임’의 마지막 장면. 학생들의 졸업이 다가온다. 무용 담당 교사는 발레리노를 꿈꾸는 케빈이라는 학생을 불러 불편한 진실을 털어놓는다. “네 실력으로는 어려워. 네가 춤으로 먹고살기는 어려울 것 같아. 하지만 이런 얘기를 해주는 게 내 의무란다. 이 학교를 마치기는 해야겠지만 너는 다른 준비를 해야 돼.” 당사자 케빈은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 속에서 현실을 받아들인다.
 
예술가의 재능을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다. 대기만성 스타일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이 분야가 어느 곳보다 살벌하고 재능이 필수적인 동네임은 알고 뛰어들어야 한다. 한국에서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듣기 좋은 말은 해도 꼭 필요한 말에는 입을 닫는다. 젊은 세대는 종종 어른 세대를 무시한다. 소통의 단절이다. 그래도 길은 어른들이 먼저 열어야 한다.
 
문준용 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경고: 정치인들은 함부로 영세 예술인들을 입에 담지 말 것’이라는 글귀가 자꾸 머리에 남는다. 나는 그의 의견과 반대다. 정치인을 포함해 일반인들이 영세 예술인에 대한 화제를 자주 입에 올리면 올릴수록 이 지난한 문제가 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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