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코스피 지수가 100으로 지정된 지 41년 만에 3100선을 넘어섰다. 3000선을 넘은지 하루 만에 또 다시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코스피 지수는 지난해 3월 1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1457.64까지 폭락한 뒤 10개월도 지나지 않아 무려 116%나 상승했다. 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급속도로 오른 적은 국내 증시 역사상 처음이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코스피의 급격한 상승을 마냥 기뻐하긴 이르다며 우려감을 내비친다. 실물경제 상황이 처참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코스피 급등은 비정상적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작년 하반기 경제지표를 보면 국내 경제는 침체 상태다.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간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5월 말 2000선을 회복하고 나서 상승장이 지속된 점을 고려하면 주식시장이 실물경제를 3~6개월 앞서 미리 반영해 온 기존의 공식에서 벗어나 있다는 반응이다.
시중에 돈 찍어내도 늘지 않는 소비…자영업자·중소기업 생사 갈림길
한국은행(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시중 통화량(M2기준)은 3178조4000억원이다. 전년 동월과 비교해 9.7% 늘어났다. 작년 4월부터 8개월째 9%대의 높은 증가율을 지속 중이다. 이처럼 시중 통화량이 빠르게 불어난 건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와 정부의 정책 금융지원 등으로 가계와 기업에 대한 대출이 급증해서다.
주목되는 사실은 시중에 넘칠 정도로 풀린 유동성이 민간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주식시장 등 자산투자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가계 소비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 줄어든 294만5000원으로 집계됐다.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하는 평균소비성향도 같은 기간 전년 동기 대비 3.2%p 하락한 69.1%로 나타났다. 2003년 이후 3분기 기준 최저치다. 쓸 돈이 있어도 지갑을 닫는다는 의미다.
민간소비가 침체에 빠진 이유는 근로·사업소득이 큰 폭으로 감소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3분기 근로소득은 347만7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했다. 사업소득도 같은 기간 1.0% 줄어든 99만1000원으로 집계됐다. 소득이 줄어들어 지출이 감소하고 이로 인해 다시 소득이 줄어드는 경기침체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민간소비 침체로 소상공인·자영업자·중소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이들은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상향 조정으로 매출이 큰 폭으로 줄어들면서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소상공인연합회에 따르면 전국 1018개 사업체 중 70.8%가 2019년 대비 지난해 매출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매출 감소 비율은 평균 37.4%이었다. 한국신용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마지막 주 전국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6%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마포구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는 30대 조모 씨는 최근 들어 손님이 예전보다 80% 정도 줄어들었다고 토로했다. 하루에 손님이 한 명도 없는 경우가 1년에 한번 있을까 한 일인데 지난달부터 그런 일이 잦아졌다고 설명했다. 조 씨는 “지난해 8월부터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대략 70% 매출이 감소한 것 같다”며 “매달 임대료 걱정이 가장 크다. 이런 상태로 매일, 매달 제자리걸음 내지는 뒷걸음질치고 있는 현실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상황도 녹록치 않다. 경기 불황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대다수의 중소기업은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이 발표한 ‘2021년도 중소기업 경영 전망과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은 올해 경영실적에 대해서 지난해 저조한 경영실적에 따른 기저효과에도 불구하고 매출액, 투자, 고용 모두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올해 3월엔 정책금융기관을 포함한 금융권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게 빌려준 원리금 및 이자 상환 유예 기간이 종료된다. 금융당국이 억지로 억누르고 있던 ‘뇌관’이 터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한은이 발표한 ‘2020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의 금융지원이 전면 종료될 경우 내년 유동성 부족기업 비중이 올해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송민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저금리의 장기화와 실물경제의 침체가 동반될 경우 경기부양을 위한 완화적 통화정책에 의존하기보다 저금리의 원인에 대한 체계적인 진단과 비통화적 정책수단의 조합 등 정책의 유연성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실물경제와 따로 노는 코스피 지수…“2000년 IT 버블 때와 흡사, 거품은 결국 사라진다”
침몰하는 실물경제와 반대로 증시는 연일 강세다. 지난 13일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71% 오른 3149.93으로 거래를 마쳤다. 앞서 이틀 간 조정을 받긴 했지만 개인투자자의 순매수 액수가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증시는 요동쳤다. 다만 이러한 흐름이 지속될지는 미지수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주가가 고평가됐다는 지표가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에 비해 시가총액(시총)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 한다. 시총을 GDP로 나눈 값인 ‘버핏지수’는 주가에 거품이 끼었는지를 판단하는 지표로 알려져 있다. 보통 70~80% 수준이면 주가가 저평가, 100%가 넘어가면 고평가된 것으로 판단한다.
작년 10월 국제통화기금(IMF)가 추산한 지난해 국내 추정 GDP는 약 1913조원이다. 반면 지난달 30일 기준 코스피 시총은 1981조원이다. 이를 ‘버핏지수’로 환산하면 103%다. 2019년(76%), 2018년(70%), 2017년(87%), 2016년(75%) 등 최근 5년 간 비교해도 확연히 높은 수치다.
주가순이익비율(PER)도 크게 올랐다. PER은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수치로 주가가 1주당 수익의 몇 배가 되는가를 나타낸다. 2011년부터 2019년 동안 코스피의 평균 PER은 13.76이었다. 이익의 14배 정도의 가격으로 주식 시장에서 거래됐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난해 PER은 29.47로 훌쩍 뛰었다. 1년 사이 11.27p나 증가했다. 증시 내 안전자산이라고 분류되는 코스피 대형주들의 평균 PER도 28.65로 높았다. 이는 아이티 버블이 한창이었던 2000년 4~7월 당시의 22.97~30.28 사이를 넘나들던 PER과 흡사하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당분간 코스피의 단기 조정, 되돌림 과정은 불가피해 보인다”며 “추세반전은 아니지만 단기 급등에 따른 과열·밸류에이션 부담을 덜어낼 이유들이 충분해졌다”고 말했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코스피200)도 ‘역대급’이다. 이는 코스피 옵션 시장 투자자들이 예상하는 향후 30일간의 지수 변동성을 나타낸 지수로 보통 하락장에서 지수가 상승한다. 12일 V-코스피200은 34.95이다. 통상적으로 25를 초과하면 시장 변동성이 커진 불안정한 상황으로 여긴다.
이재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거래대금 폭증에 따른 과열을 식힐 필요가 있다”며 코스피 RSI(상대강도지수)는 86p로 직전 과열장이었던 작년 8월 수준 상회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우려했다.
주목되는 사실은 주가 상승 요인이 저금리에 따라 불어난 유동성 때문이라는 점이다. 국내 투자자들 중 상당수는 여윳돈이 아닌 대출금으로 투자하는 일명 빚투 등을 통해 주식에 투자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로 증권사에 돈을 빌려 주식을 산 신용융자 잔액은 21조원 육박한 금액까지 오르며 1998년 집계 이래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1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2일 기준 신용거래융자는 전 거래일보다 2761억원 증가한 20조7872억원을 기록했다. 7거래일 연속 증가세다. 투자자 예탁금도 74조4559억원으로 전날보다 2조1347억원 증가하며 역대 규모를 찍었다.
시중은행의 신용대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작년 연말 ‘대출 조이기’에 들어갔던 시중은행들이 신용대출을 재개하면서 신용대출 규모는 올해 초 급증했다. 은행권에 따르면 이달 7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134조1015억원으로 지난달 31일(133조6482억원)보다 4533억원 늘어났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7일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금융시장의 안정적 상승세가 지속되려면 시장 참가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코로나 방역 성공과 실물경제 회복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위기가 남긴 상흔이 예상보다 깊을 수 있고 회복 과정에서 어떤 리스크 요인이 불거질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재만 숭실대 교수는 현재 코스피 지수가 고평가됐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대출을 받아서 투자하는 ‘빚투’, ‘영끌’ 등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주식이 크게 떨어졌을 때 손실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정 교수는 “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하는 건 위험하다. 저금리라는 건 갚을 수 있는 부담이 덜한 것일 뿐이다”며 “현재 국내 증시가 대출을 받은 개인 투자자들이 주도하는 시장이라면 작은 충격에도 갑자기 폭락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고 우려했다.
[윤승준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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