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각계각층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강행처리로 국회 문턱을 넘은 중대재해처벌법 통과를 둘러싼 일선 산업현장의 반발이 고조되고 있다. 산업재해 발생에 대한 고강도 처벌 내용을 두고 사실상 회사 문을 닫으라는 것과 다름없다며 이는 경영 책임자 뿐 아니라 소속 근로자 전체의 생계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응이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산업현장의 우려는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입을 모은다.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해도 현장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원천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로 오히려 산업재해 예방 대신 처벌을 피하기 위한 대책에 기업 역량이 낭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발적 사고 한 번이면 범죄자 되는 경영자들…회사 문 닫을 걱정 품고 일하는 근로자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기업들의 입지는 크게 위축되고 있다. 기업에 대한 지원은커녕 연일 ‘기업 때리기’만 일삼는 탓에 투자와 고용이 악화되는 현상만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기업하기 힘든 나라’라는 볼멘소리 또한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부작용 우려가 빗발쳤던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 문턱을 넘자 일선 산업현장에서는 ‘대한민국 경제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다는 반응이 일고 있다. 해당 법안은 사업현장에서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한 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와 안전관리 책임자의 형사처벌 및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해당 법안이 최초 등장했을 당시 경제 단체들은 산업재해 자체가 우발적 사고인데 단 한 건의 사고로 기업 전체가 휘청일 정도의 처벌을 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부작용 완화를 위해 △사업주 징역 하한규정을 상한으로 변경 △반복적 사망시에만 중대재해법 적용 △사업주 의무 구체화 및 의무 다할 경우 처벌 면제 규정 △50인 이상 중소기업에도 최소 2년 유예기간 부여 등의 보완입법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일선 산업현장에서도 같은 반응이 나온다. 특히 해당 법안이 통과된 이후에는 중대재해처벌법 철회 또는 보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대로라면 회사 문을 닫을 수밖에 없어 경영자는 물론 근로자들의 생계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격양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기도 수원에서 30년 가까이 소규모 건설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병식(가명) 대표는 “우리나라 근로자 사망사고 추이를 보면 전체 사고의 52%가 건설현장에서 발생한다”며 “건설현장의 안전장치가 많이 선진화됐음에도 잠깐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선제적인 예방대책이 아닌 무작정 원청 건설사에 강하게 법을 적용한다고 사망사고가 과연 줄어들지 의문이다”며 “대부분 소규모로 이뤄진 하청업체들의 경우 사업주가 처벌을 받게 되면 회사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어 결국 근로자의 생계 또한 위태롭게 된다”고 강조했다.
올해로 30년째 인쇄물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최재규(가명) 대표도 중대재해법과 관련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최 대표는 현장 특성 상 건설업만큼은 아니지만 근로자가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종종 발생하는데 그럴 경우에도 사업주가 온전히 책임을 지는 것은 기업 경영을 하지 말란 것과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최 대표는 “1명 이상 또는 부상자가 2명 이상 나올 경우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만큼 우리뿐만 아니라 산업단지 내 위치한 모든 기업들이 우려감을 나타내고 있다”며 “아직까지 현장에서 위험발생 요소는 크게 없으나 종종 직원 몇 명이 계단에 걸어가다 넘어져 골절상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 당장 중대재해예방법을 제정해야 될 판에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실상 전 기업을 예비 범법자로 몰아넣는 것과 다름없다”며 “이는 사장 한 사람이 아닌 기업 전체를 범죄집단으로 간주한 잘못된 발상이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해외선진국들처럼 사후처벌이 아닌 사전예방의 제도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최 대표는 “사실 법안 취지 자체가 현장 근로자들을 위해 추진한다고는 하지만 이는 차후 기업경쟁력을 갉아먹어 결국은 근로자의 생계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사리고 있는 한 우리나라에서 기업을 경영하려는 사람을 갈수록 줄어들어 결국 국가경쟁력에도 타격을 입힐 것이다”고 강조했다.
독일, 프랑스 등 해외 선진국 사전예방 집중, 한국만 사후처벌 역행
중대재해처벌법 등장 전에도 이미 우리나라는 해외 선진국에 비해 사망사고에 대한 처벌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7년 이하 징역인 반면 독일은 1년 이하 징역, 영국은 2년 이하 금고형, 미국·일본은 6개월 이하 등의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해외 선진국들 같은 경우 산업안전 정책이 ‘사후처벌’이 아닌 ‘사전예방’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유럽연합(EU)의 경우 중대재해 발생 원인을 기업의 안전보건 투자재원 부족, 안전보건 역량 및 기술 부족, 안전보건 정보부족 등에 있다고 진단하며 강한 제재보다는 경제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독일은 연간 근로자당 최대 500유로까지의 안전비용에 대한 세금혜택을 부여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안전증진 기술개발투자에 대한 세금혜택을 주고 있다. 또 이탈리아는 산재보험료 결정 시 재해율 외에 재해예방대책 도입여부를 평가하고 안전장비·유해환경 개선 등에 대한 보조금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사후처벌 보단 사전예방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만 유독 반대행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시작으로 처벌에 초점을 둔 정책·법안들이 줄줄이 등장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12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안전·보건 조치 의무 위반으로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 사업주 등 책임자에게 최대 징역 10년 6개월을 선고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 양형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전문가들은 산업재해와 관련해 처벌에만 초점을 맞춘 법안·정책이 등장할 경우 결국엔 산업재해 예방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일자리축소, 투자위축 등의 경제적 피해만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존 산업안전보건법만 해도 충분한데 과도한 과징금을 부과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까지 더하면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들의 입지는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정치권의 포퓰리즘과 노조의 입맛대로 기업들의 생존이 더욱 어려워진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고 지적했다.
[이창현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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