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쏘아올린 차등의결권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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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쏘아올린 차등의결권 논란

한원석 기자페이지 + 입력 2021-02-18 00:02:52

최근 전자상거래 업체 쿠팡이 미국 뉴욕증시(NYSE) 상장을 신청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목받고 있다. 쿠팡은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서 거래액 기준 네이버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회사다. 특히 쿠팡이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에게 ‘차등의결권’을 부여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를 끌고 있다.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신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김 의장이 보유하는 클래스B 주식에 대해 1주당 29배의 ‘차등의결권’을 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분 1%만 가져도 29%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차등의결권이란 ‘1주 1의결권’에서 벗어나는 경우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크게 1주에 2개 이상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복수 의결권’과 1개 미만을 부여하는 ‘부분 의결권’으로 나뉜다. 이번에 김 의장이 받은 것은 복수 의결권에 해당한다. 다만 김 의장이 주식을 매각하거나 증여·상속하면 무효화한다는 조항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등에서는 창업주나 최고경영자(CEO) 등이 보유한 주식에 보통주보다 많은 의결권을 부여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방지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된다. 2004년 구글 상장시 복수 의결권을 인정받은 뒤 미국에서 기술 기업 위주로 이를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밖에도 영국, 프랑스, 독일뿐만 아니라 2018년 홍콩과 싱가포르에도 도입됐다.

반면 국내에선 2011년 상법에 무의결권을 도입·허용했으나 실제 발행으로 이어진 경우는 한 건도 없다. 현재 국회에 정부가 제출한 ‘벤처기업 육성 특별법’ 개정안에서는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1주 10의결권의 주식 발행을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2003년 소버린 펀드가 SK에 대한 경영참여를 시도하고, 2006년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이 KT&G의 2대주주에 올라 배당 확대 등의 요구로 1500여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기고 떠나는 등 외국 자본의 위협이 가시화되면서 경제계에서는 경영권 방어장치의 일환으로 차등의결권의 전면도입을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에서는 차등의결권이 악용돼 지배주주 권한만 강화할 것이라거나 차등의결권 외에 경영권 방어 수단이 있어 제도 도입의 득보다 실이 많다는 반론도 나온다.

그러나 차등의결권 도입이 단순히 지배주주의 권한 강화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앞서 2019년 현대차 주총을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8조3000억원 규모의 배당금을 요구했다. 이는 현대차가 2018년 기록한 당기순이익의 3배를 훌쩍 넘는 액수였다.

자본주의 제도에서 주주가 회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이상 배당금을 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주주의 이익 실현을 위해 적절한 배당은 필요하다. 하지만 너무 과도한 배당은 회사의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시설투자의 여력을 빼앗아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훼손해 자칫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격‘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237조원, 영업이익 36조원을 달성했다. 한편 반도체 부문 33조원 가량을 포함해 시설투자에도 38조5000억원을 썼다. 영업이익 이상의 금액을 투자한 것이다. 주주들이 단기적인 고수익만을 바라며 무리한 배당을 요구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삼성전자의 성공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출범이후 ‘경제 민주화’를 앞장세워 여권은 지난해 말 이른바 ‘공정거래 3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감사위원 선출시 최대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 등이 골자다.

게임의 룰은 공정해야 한다. 기업의 경영 방어권을 제한하기만 하면 안 된다. 앞서 살펴본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치권은 ‘차등의결권’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한원석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한원석 wsha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