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시세가 크게 널뛰는 가운데 국내 시세가 해외보다 높은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 가상화폐 시장이 과열됐다는 신호로 공급에 비해 수요에 월등히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가상화폐 시장과의 괴리 현상이 심화될 경우 가격변동 확대로 인한 다양한 부작용 가능성이 제기된다. 외화유출 현상과 투자자 피해 등이 대표적이다.
일물일가(一勿一價) 법칙 사라진 가상화폐 시장…미국·한국 1비트코인 시세 500만원 차이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 중 하나는 ‘한 상품에는 하나의 가격이 존재한다’는 ‘일물일가(一勿一價)의 법칙’이다. 차익거래자가 저렴한 곳에서 한 상품을 사고 이를 비싼 곳에서 되팔면 상품의 가치가 떨어져 결국 가격이 똑같아진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가상화페 시장만큼은 이 법칙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올해 초부터 국내외 거래소 간 가상화폐 가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25일 0시 기준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은 전날 같은 시간 대비 4.5%(260만5000원) 오른 6019만1000원에 거래됐다. 또 다른 거래소인 빗썸에서는 6023만2000원으로 전날(5785만8000원)보다 4.1% 올랐다.
13일 8073만6000원(업비트 기준)으로 정점을 찍었던 비트코인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금액은 압도적이다. 올해 1월 초와 비교해 88%(2818만원), 지난해 4월 25일(916만4000원)과 비교해서는 무려 566.8%(5102만7000원)이나 폭등했다.
같은 기간 해외에서도 비트코인 시세는 크게 올랐지만 국내보다는 약 500만원 가량 낮았다. 미국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25일 0시 기준 비트코인 시세는 전 거래일보다 0.9% 내린 4만9241달러(약 5502만원), 또 다른 거래소 크라켄(Kraken)에서도 4만9330달러(약 5512만원)로 각각 집계됐다.
같은 시간 일본 가상화폐 거래소인 비트플레이어에서 비트코인은 540만8739엔(약 5603만원), 홍콩 거래소인 비트포렉스에서는 5만72달러(약 5595만원), 유럽 몰타 거래소인 바이낸스에서는 5만258달러(약 5616만원)에 각각 거래됐다.
다른 가상화폐도 국·내외 시세 차이가 존재했다. 25일 0시 기준 업비트와 코인베이스에서 도지코인은 각각 331원, 300원으로 거래되며 10.0%(31원)가 차이났다. 이더리움 역시 업비트에선 270만1000원이었으나 코인베이스엔 약 245만원으로 10% 저렴했다.
국내·외 가상화폐 현상의 시세 괴리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내 시장이 이상 과열로 수요가 급증한 반면 기술·제도적 요인으로 공급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해외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저렴하게 산 뒤 국내에서 비싸게 팔기가 쉽지 않아 결국 국내에서 유통되는 가상화폐에 계속해서 웃돈이 붓고 있는 현상이 발행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업비트의 지난달 이용자는 320만명으로 2월(204만명) 대비 116만명(56.9%) 늘어났다. 올해 1월(119만명)과 비교해선 3배에 가까이 늘어났다. 빗썸 역시 작년과 비교해 신규 회원 수가 1월 77%, 2월 80%, 3월 78% 각각 증가했다.
거래량 규모도 해외 거래소보다 컸다. 이달 23일 하루 동안 업비트의 비트코인 거래량은 2만1900개로 지난달 23일(9960개) 대비 120%나 늘었다. 1월 1일(5750개)과 비교해선 281% 증가한 규모다. 같은 기간 유럽 바이낸스의 하루 비트코인 거래량은 65.4% 늘어난 2만6733개였고, 1월 1일(1만1051개)과 비교해선 141.9% 증가했다.
국내 가상화폐 시장의 가열 현상은 간접적인 수치로도 확인되고 있다. 구글 트렌드에서 한글로 ‘비트코인’을 검색했을 때 이달 18~24일 국내 지수는 100으로 올해 초(1월 3~9일) 50이었던 것과 비교해 넉 달 만데 2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영어로 ‘Bitcoin’을 검색했을 때 미국의 지수는 70으로 올 초 100이었던 것과 비교해 오히려 떨어졌다.
양철원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비트코인의 국내외 가격 차이를 이용한 차익거래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비트코인에 대한 한국의 관심 급증과 열풍이 원화가격을 비정상적으로 높여 김치 프리미엄을 형성시킨다”며 “비트코인의 국내·외 가격차이가 투자자들의 이성적 요인에 영향을 받기보다는 사람들의 관심, 즉 심리적 요인에 더 강한 영향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2017년에는 국내시장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의 시장 주도권은 국내에서 미국으로 상당부분 넘어갔다”며 “높은 ‘김치 프리미엄’은 분명 부담스러운 요인이고 괴리율을 좁히는 과정에서 국내 비트코인 가격이 조정 받을 수는 있어도 급격한 추세전환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고 내다봤다.
외국서 채굴된 가상화폐, 한국서 웃돈 붙어 거래…“과열 현상 대책 시급”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세 괴리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공급이 필수이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엄격한 법규정 때문이다. 한국은행(한은)은 2018년 ‘암호자산 시장에서 국내외 가격차 발생 배경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국내 수요가 증가해 가격차가 발생했을 때 해외로부터 공급이 탄력적으로 증가하기 어려워 국내·외 가격차가 확대·지속됐다”고 분석했다.
공급이 쉽게 늘어나지 않는 주된 이유로는 엄격한 외환거래법이 지목됐다. 외환거래법에 따르면 가상화폐를 구매하기 위한 외화송금은 불법이고 목적과 상관없이 송금할 수 있는 외화 금액도 1인당 연 5만달러로 제한된다. 투자자가 해외 거래소 계좌로 돈을 보내 가상화폐를 산 뒤 이를 국내에서 되팔기가 쉽지 않는 구조인 셈이다.
한은은 “해외로부터 암호자산 공급을 제약하는 규제인 거래실명제와 송금한도 등은 자금세탁, 탈세 방지 등 본래 도입 목적을 고려할 때 암호자산 가격차 축소만을 목적으로 완화하기 어렵다”며 “이를 고려할 때 향후 국내에서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경우 국내·외 가격격차가 다시 확대될 가능성도 상존한다”고 전망했다.
국내 가상화폐 채굴 물량이 적은 것도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운 원인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국내 비트코인 채굴물량은 0.5% 미만이다. 이는 전 세계 수요의 6.5%를 차지하는 국내 비트코인 수요를 고려할 때 턱 없이 부족한 공급량이다. 채굴량은 중국이 65.0%로 가장 많았고 이어 미국 7.2%, 러시아 6.9% 등의 순이었다.
사실상 국내에서 거래되는 가상화폐 대부분이 ‘수입산’이고 비싼 가격에 들여와 판매한 이들 역시 외국인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에 앞으로 국내·외 가상화폐 시세 괴리 현상이 심화될 경우 외화 유출량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양 교수는 “비트코인 시장의 비효율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거래비용을 줄이고 거래체결을 용이하게 하는 등 유동성을 증가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다”면서 “차익거래자로 활동할 수 있는 기관투자자들의 투자가 늘어나고 차익거래 활동이 증가한다면 더 효율적인 시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윤승준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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