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덮친 차량용 반도체 부족난이 장기화하면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밀려드는 수요에도 불구하고 차량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기존 내연기관차에 비해 반도체 부품이 10배 가량 더 많이 탑재되는 전기차의 경우 사실상 생산을 못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국내 완성차 업체의 생산 차질로 소비자들이 국산 전기차 대신 수입차를 선택하면서 수입차 업체들이 대당 최대 1900만원에 달하는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지자체) 보조금을 독식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는 첫 전용 전기차 EV6 사전예약을 이달 14일 마감한다. 기아는 당초 올해 3월 31일부터 이달 31일까지 두달 간 사전예약을 받기로 했다. 이어 올해 7월 정식 출시와 함께 고객에게 차를 인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사전예약 대수가 이달 10일 기준 3만대를 넘어서며 기아의 올해 EV6 생산 목표 1만3000대를 가뿐히 넘어섰다.
EV6가 엄청난 흥행을 일으킨 것임에는 틀림없으나 기아 입장에선 마냥 반길 수 없는 상황이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인해 주문이 들어와도 차량을 생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기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자동차의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는 앞서 2월 사전예약 첫날에만 1년 판매 목표량 2만6500대의 89.6%(2만3760대)를 판매했다. 이같은 흥행 돌풍에 힘입어 지난달 19일 아이오닉5가 정식으로 출시됐으나 차량을 인도받은 고객은 일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는 당초 울산1공장에서 지난달 총 1만대를 생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실제론 2600대만을 생산했다. 현대모비스의 PE 모듈 생산 차질에 이어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까지 겹치며 공장이 일주일간 휴업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이달부터 월 1만대 수준으로 정상 생산한다는 계획을 내놨으나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의 장기화로 인해 이달 생산량도 2800여대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생산이 더딘 것은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더 많은 차량용 반도체 부품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전기차에는 기존 내연기관차보다 10배 이상 많은 2000여개의 반도체가 탑재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 대란으로 내연기관차의 고객 인도도 최대 6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오닉5, EV6 등 전기차 생산을 위해 공장 가동을 늘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국산 전기차를 기다리다 지친 일부 소비자는 사전예약을 취소하고 미국 테슬라 등 수입 전기차로 옮겨가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을 받지 못할까 염려돼서다. 지자체들은 차량 출고 등록 순서대로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에 사전예약을 걸고 전기차 인도를 기다렸다가 보조금이 전부 소진될 연말께 인도받을 경우 보조금 혜택을 전혀 못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정부 및 지자체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도 예상보다 빠르게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이달 11일 기준 서울에서 전기차 보조금은 이미 74.5%가 소진됐다. 이에 향후 쳬택을 받을 수 있는 전기차는 645대 정도에 불과하다.
울산과 세종도 보조금 소진율이 50%를 넘어섰다. 경기 수원·하남, 경북 구미, 전남 나주 등 16개 지자체는 이미 보조금이 전부 소진됐다.
시장조사업체 카이즈유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4월 신규 등록된 전기차 중 가장 많은 차종은 테슬라 모델3로 2321대를 기록했다. 사실상 정부·지자체 보조금 상당 금액이 테슬라에 쏠린 셈이다.
이런 가운데 올 1분기 전기차 보조금을 싹쓸이했던 테슬라가 모델Y의 국내 인도를 본격화하고 있어 보조금 소진 속도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 판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델3는 계약이 이뤄지면 바로 미국 등에서 공수할 수 있는 반면 아이오닉5, EV6 등은 구동 모터와 반도체 부족 등으로 차량 인도 시기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며 “이 추세라면 아이오닉5, EV6 사전예약자들의 계약 취소 대란이 번질 수 있고 전기차 구매를 희망하는 소비자들 역시 대거 테슬라로 옮겨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창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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