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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貨幣)’는 상품의 교환 유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교환수단을 의미한다. 여기서 ‘화(貨)’는 ‘조개 패(貝)’와 ‘될 화(化)’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글자다. 과거 인류는 물물 교환의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 편리하고 신뢰할 수 있는 매개 수단 중 하나로 조개껍질을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화(化)’는 변한다는 뜻도 있어 ‘조개를 물건으로 바꾼다’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물물교환시대에는 조개껍질 이외에도 곡물이나 삼베 등의 옷감이 화폐로 사용됐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표준화된 형태의 화폐를 사용한 국가는 기원전(B.C) 7세기경 지금의 터키 지역에 위치했던 고대 리디아 왕국이라고 한다. 리디아에서 만든 화폐는 콩알 모양의 금속 조각이었는데 일정한 가치를 표시하기 위해 무늬를 새겼다고 한다.
동양에서 기록된 가장 오래된 화폐는 중국 상나라에서 청동으로 만든 패폐이다. 이후 춘추전국시대 농기구를 본따 만든 포폐나, 칼을 형상화한 도폐 등이 만들어졌다.
최초의 원형 화폐는 진시황이 만든 ‘반량전’이었고, 이후 전한 무제시절인 기원전 118년 ‘오수전’이 처음으로 주조됐다. 오수전은 이후 5호16국 시대를 거쳐 당나라 초반까지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유통됐다. 오수전은 우리나라 유적에서도 출토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초의 화폐는 고려 성종시절 만들어진 건원중보다. 이후 삼한통보나 해동통보, 동국통보 등이 만들어졌다. 조선에서는 세종이 조선통보를, 세조가 팔방통보를 만들었지만 제대로 유통되지 못했다. 이후 인조 대에 이르러 만들어진 상평통보가 상품경제의 발달과 함께 숙종 때에 전국적으로 유통되기에 이르렀다.
지폐의 경우 공식적으로는 중국 남송시대에 처음 발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앞선 10세기경 중국 상인들이 예탁증서 형태로 사용하던 ‘교자(交子)’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폐라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이후 원나라 쿠빌라이칸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공식화폐인 ‘교초’를 발행했다. 교초는 은 1냥을 교초 10관으로 정한 일종의 지폐였다. 원나라는 지폐만 유통시키기 위해 모든 금은과 동전을 몰수하고 이를 지폐로 바꿔주었고 지폐 받는 것을 거부하면 사형을 당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통화들은 주로 자국 내에서만 사용됐다. 원나라와 같은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강대국이더라도 먼 나라와의 거래에서 그 화폐가 사용되기는 쉽지 않았다.
이러한 국제적인 거래에서 기본이 되는 ‘기축 통화(key currency)’의 시초로 꼽히는 것은 영국의 파운드 스털링이다. 역사적으로 기축통화는 항상 당대 최강국의 통화였다. 당연히 지금의 기축통화는 미국 달러화다. 달러화는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 이후 기축통화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TV토론회에서 “우리(나라)가 곧 기축통화국으로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해 논란에 휩싸였다. 민주당 측은 이 후보의 발언이 전경련 보도자료를 인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전경련에서는 “한국의 경제적 위상을 고려했을 때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인 SDR 통화바스켓에 편입될 자격이 충분하므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기축통화 논의와는 거리가 있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원화는 기축통화가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국제 결제에서 사용되는 원화의 비율은 0.2%에도 미치지 못해 거래되는 화폐 순위에서 20위 안에도 들지 못하는 실정이다. 원화는 태국의 바트화, 말레이시아 링깃화, 남아공의 랜드화나 멕시코의 페소화, 헝가리의 포린트화보다도 뒤지는 것이 현실이다.
어디까지가 기축통화냐에 대해 명확히 정해진 범위는 없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전문가들은 주로 미국 달러화만을 기축통화로 본다. 여기에 유로화와 엔화, 영국 파운드화까지 기축통화로 쳐주기도 한다.
기축통화 문제는 단순히 국가의 경제력에 좌우되는 문제가 아니라 세계인들의 신뢰와 국제정치의 역학 관계가 작용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중국의 위안화조차도 기축통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아직 세계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측은 이 후보의 발언을 “우리나라 경제가 튼튼하고 재정 건전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좋고 국가 채무에 아직 여력이 있다는 걸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기축통화국은 우리가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닌 국제적인 신뢰와 인정을 받아야 한다. 국채를 대량으로 찍더라도 화폐 가치나 국가 신인도가 흔들리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유능한 경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후보라면 실현 가능성이 없는 ‘장밋빛 미래’로 국민들을 현혹하기 보다는 자신이 내세운 말을 어떠한 방법으로 실천할 수 있을 지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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