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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부터 글로벌 경제의 리스크로 지목되던 우크라이나 사태가 결국 전쟁으로 비화되면서 한국 경제에도 상당한 여파가 불어닥치고 있다. 특히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원유 수입 의존도가 큰 한국 경제에 전반적인 타격이 우려된다. 아울러 반도체 소재로 사용되는 희귀 광물 확보도 갈수록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여기에 러시아에 대한 금융 제재로 러시아 기업으로부터 대금 수령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의 피해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국제유가 배럴 당 110달러 돌파…반도체 희귀 광물 수입 난항
지난 2월 24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내에 군사 작전을 지시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 전역에 걸친 공격에 나서고 있으며, 우크라이나군이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국가 총동원령을 내려 즉시 전시체제로 전환했다. 우크라이나 내 징집 대상자와 예비군 전체가 소집되며 18~60세 우크라이나 남성의 출국이 금지됐다. 러시아 군이 하르키우 가스관을 폭파하는 등 산업기반시설에 대한 공격을 이어나가는 바람에 설령 전쟁이 끝나더라도 우크라이나가 회복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또한 러시아의 침략 행위에 전 세계가 제재에 나서면서 한국도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7개 주요 러시아 은행·자회사와의 금융거래 중단·러시아 국고채 투자 중단·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배제·러시아 전략물자 수출 심사 강화 등을 이행하기로 했다.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의 피해가 커지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에 우크라이나 문제는 우리 경제에 커다란 리스크로 여겨졌던 사안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석유와 천연가스(LNG) 주요 생산국이어서 이번 사태로 유가가 폭등할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월 우크라이나 사태로 원유 및 LNG 수입 물가가 급등하면서 원재료 수입 물가가 59.0%나 급등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10년 이후 분기별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원재료 수입 물가가 59.0% 상승하며, 산물가 상승력도 7.9%p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미국 서부텍사스원유 4월 인도분 선물은 8일(현지 시각) 기준 배럴당 123.70달러에 장을 마쳤다. 런던 국제선물거래소 북해 브렌트유 5월물은 배럴당 127.98달러를 기록했다. 국제 유가가 시장에 반영되기까지 약 2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감안할 때 급증한 국제유가가 반영되면 휘발유 가격은 2000원대를 넘길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비축유 6000만배럴을 방출하기로 합의하고 우리나라도 여기에 동참했지만 국제유가 상승세는 이어지고 있다.
원유 의존도가 높으면서 원유 생산량은 거의 없는 한국 경제의 특성상 고유가가 이어질 경우 더욱 타격이 클 전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 경제 원유의존도(배럴/GDP만달러)는 5.70배럴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22년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기록할 경우 경제성장률이 0.3%p 하락할 것으로 예측됐다.
여기에 정유, 철강, 화학, 전력·가스·증기, 도로운송, 항공운송 등에서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비용 상승 압력이 급등하고 물가 상승뿐 아니라 고물가에 따른 소비 심리의 악화, 원자재 가격 급등에 의한 기업 생산 비용 증가, 수입 단가 상승에 따른 교역 조건 악화 등이 경제에 전반적인 악영향을 줄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원료 수급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희귀광물인 네온, 크립톤, 크세논 가스 등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상당량을 수입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네온 수입량 중 각각 23.0%와 5.3%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들여왔다. 크립톤은 전체 수입량 중 30.7%가 우크라이나 산으로 수입국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17.5%도 합하면 거의 50%에 달한다. 크세논 가스 역시 지난해 우크라이나에서 17.8%, 러시아에서 9.2%를 수입했다.
다행히 반도체 제조용 특수가스 전문 소재 기업 TEMC가 포스코와 협력해 올해 초 네온 가스의 국산화 설비 기술 개발에 성공하는 등 국산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공급이 시작되는 것은 올해 하반기로 예상된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각종 리스크에도 안정적이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 구축을 위해서는 핵심소재의 국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업계의 기술 개발 노력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다짐했다.
크림 반도 사태 시 수출 크게 감소…SWIFT 제재로 대금 수령도 어려워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로 인해 한국 기업들이 입을 타격도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 CXO연구소가 발표한 '국내 72개 그룹이 러시아에 세운 해외법인 현황 조사’에 따르면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을 포함한 16개 그룹이 러시아에 53개 법인을 설립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산업부와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對)러시아 수출액은 99억8000만달러로 전체 교역국 중 12위로 액수가 많았다. 이미 크림반도 사태로 인한 대러시아 제재로 2015년 러시아 수출 규모가 크게 감소한 바 있다. 당시 수출이 크게 감소한 업종은 완성차(62%), 타이어(55%), TV(55%), 아연도강판(47%), 자동차부품(39%) 등이 있다.
현대자동차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간 약 23만대의 차량을 생산한다. 현대차는 1일부터 5일까지 러시아에서 가동 중인 완성차 공장을 가동 중지했다. 현대자동차는 반도체 수급난에 대한 일시적인 조치라고 밝혔지만 경제 제재로 인한 러시아 내수 시장 축소 등으로 생산 감소가 우려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러시아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의 피해도 예상된다.
러시아에 상품을 수출하는 기업들이 대금을 받지 못할 위험성도 고조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SWIFT 결제망이 막히며 달러 결제가 어려워지면서 대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이에 더해 국내 주요 은행들이 러시아 기업과의 신용장 개설을 거부하며 러시아산 원자재를 수입하는 기업들의 무역 거래가 막힌 상황이다.
한국무역협회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일어나 운영하는 우크라이나 사태 긴급 대책반에 2일까지 국내 기업 188곳이 애로사항 254건을 접수했다. 이 중 146건(57.5%)은 대금 결제 문제였으며 물류 문제가 79건(31.1%)이었다.
조선 업계도 제재 여파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주요 조선사들은 2020년 말 이후 러시아 선주에게 LNG 운반선 7척을 수주했다. 삼성중공업이 즈베즈다 조선소와 맺은 설비공급계약까지 고려하면 현재 러시아와의 거래금액은 7~8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박 계약은 건조가 끝난 후 선박을 인도하면서 대부분의 선가의 대부분을 받기 때문에 당장 받아야 할 대금은 아니지만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가 이어지면 대금을 받지 못할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전문가들은 정부에서도 대책을 강구해야 하지만 기업이 자체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 세계적인 무역 제재 속에 정부가 나선다면 동맹국과의 신뢰를 깰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이웅희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원자재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공급망 다변화 등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 맞다”며 “현재 일어나는 거래나 대금 지급 문제는 정부가 할 수 없으므로 기업이 자체적으로 인맥이나 거래망 등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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