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예금자 보호 한도 상향 논의는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불씨를 지폈다. 지난달 23일 열린 ‘예금보호제도 개선 전문가·금융권 간담회’에서 고승범 위원장은 “경제 규모와 금융자산 보유 확대 등으로 예금자 보호 한도를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금융산업과 환경의 변화에 맞춰 예금보험제도도 재점검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보호 한도 '상향'에 무게중심을 뒀다.
같은 자리에서 김태현 예보 사장은 “경제 규모 확대와 금융 환경 변화 등에 맞춰 보다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는 인식에 공감한다”며 “금융위원회(금융위)와 함께 외부 연구용역,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 논의 등 충분한 검토를 거쳐 내년 8월까지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화답했다.
예보는 이달 2일 ‘예금보험제도 개선 검토 관련 연구용역’ 입찰 공고를 내는 등 즉각적인 행동에 들어갔다. 적정 보호 한도 및 예금보험료(이하 예보료)율과 기금 목표 규모 및 확충 방안 등을 검토하는 연구 착수를 구체화한 셈이다. 이달 안에 금융당국, 업권별 협회 등과 이를 논의할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내년 8월까지 구체적인 개선안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현재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금융기관이 예금자에게 돈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에는 예보가 대신 지급한다. 지급(보호) 한도는 2001년 같은 법 시행령에 5000만원으로 책정한 뒤 지금껏 유지됐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액(GDP) 등 경제 수준에 걸맞게 현실화하려면 예금 보호 한도를 대폭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16년 예보에 은행·보험·퇴직연금의 보호 한도를 1억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를 근거로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 등이 개정을 시도하기도 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검토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인당 국내총생산액(GDP)은 3760만원, 그해 6월 말 기준 부보예금액은 2419조5000억원으로 2001년 대비 각각 2.5배, 4.4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1인당 GDP 대비 보호 한도 비율이 1.3배로 미국(3.7배), 영국(2.5배), 일본(2.2배)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한도 상향 논의가 모두에게 희소식인 것은 아니다. 특히 금융사들 입장에서는 전혀 달가울리가 없다. 금융사는 평소 예보에 예보료를 납부하는데 한도가 오르는 만큼 예보료가 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저축은행은 상대적으로 예보료율이 높아 불만이 커질 수도 있다.
저축은행 예보료율은 예금자보호상품 평균 잔액의 0.4%로, 은행(0.08%)의 5배에 달한다. 증권·보험 예보료율은 0.15%다. 예보료율 상한은 0.5%이며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 이후 시행령에 업권별로 달리 정하도록 했다.
그간 예보료 인하는 저축은행권의 숙원이었다. 예보는 2011년 설치한 예보기금 내 저축은행 특별계정을 2026년 종료하고, 2027년에는 공적자금 상환기금을 청산할 계획이었다. 이에 저축은행권은 예보료 부담을 덜 것으로 기대하는 한편, 이를 좀 더 앞당기기 위해 노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보호 한도 상향 논의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반면 일각에서는 예금자 보호 한도 상향이 저축은행, 인터넷전문은행 등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상존한다. 저축은행은 부실 우려 등으로 한도까지만 맡기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좀 더 큰 금액을 맡길 수 있도록 그릇 자체가 커지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예금을 인출하는 ‘뱅크 런’이 벌어지면 은행은 망한다"면서 "예금자 보호는 예금자와 금융사를 함께 보호하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예금자 보호 한도가 1억원 정도로 커지면 이율이 조금 더 높은 저축은행으로 돈이 몰릴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주소현 이화여대 교수는 “현재 금융시장에서는 ‘소비자 보호’가 가장 중요한 정책목표 중 하나가 돼야 한다”며 “인구 구조, 금융 자산 비중 등 소비자 환경 변화 등을 고려해 예금 보호 한도 변경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현재 예금자 보호 한도 5000만원은 원금과 이자를 합한 금액이다. 이자는 원래 약정이자와 예보 결정이자 가운데 작은 금액으로 결정된다. 예컨대 5000만원을 맡겼다면 이자액을 보장 받을 수 없다.
모든 자산을 보호하지도 않는다. 펀드, 머니마켓펀드(MMF) 등의 금융 상품이나 주식을 매매한 투자금은 제외된다. 증권사 계좌에 넣어둔 예탁금은 아직 투자에 쓰지 않았기에 보호된다. 쉽게 말해 ‘투자에 쓴 돈’은 보호받지 못한다.
주택청약종합저축, 우체국 예적금 역시 적용 대상이 아니지만 관련법에 의해 국가가 한도 없이 보호한다. 주택청약종합저축은 ‘주택도시기금법’에 따라 국민주택기금이 관리하고 보상하며, 우체국 예금·보험은 ‘우체국예금보험법’에 따라 국가가 지급을 책임진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