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12월 ‘재건축 안전진단 합리화 방안’을 발표한 이후 서울 내 주요 노후 아파트단지들이 재건축 사업 진행에 속도를 가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18일 제1차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용도지구(아파트지구) 및 아파트지구 개발기본계획 결정 및 변경안’을 수정·가결했다. ‘아파트지구’는 과거 1970년대 급속도로 늘어나는 서울의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아파트를 신속하게 공급하고자 도입한 용도지구로, 현재 서울 시내에는 14개 지구(약 11.2㎢, 208개 단지, 15만 가구)가 있다.
아파트지구는 과거 교외의 독립된 주거지 조성에 적용하던 평면적 도시관리기법으로, 현대 도시가 요구하는 다양한 건축수요 수용에 한계가 있고 아파트 재건축에도 불리하다는 단점이 제기돼 왔다.
이에 서울시는 재건축 사업을 촉진하고, 재건축 단지 외 일반 필지의 용도·높이 등의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아파트지구를 지구단위계획으로 전환을 추진한다. 1차 도시계획심의가 수정·가결됨에 따라 대부분의 아파트지구가 올해 안에 폐지 및 지구단위계획으로 전환돼 재건축을 시작할 수 있다.
안전진단 완화… 재건축의 시작
이렇듯 재건축 사업이 물꼬를 틀게 된 배경에는 정부의 안전진단 기준 완화가 큰 몫을 했다. 대부분 단지가 직전 1차 안전진단에서 ‘조건부 재건축’을 통해 사실상 사업 진행이 멈춰 있었으나 새로운 안전진단 기준을 통해 재건축 추진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5일부터 새로운 기준을 적용했다. 안전진단 평가 항목 중 가장 높은 점수를 차지하고 있는 ‘구조안전성’ 비중을 50%에서 30%로 낮췄다. 또 주거환경 및 설비노후 비중을 각각 30%로 상향 조정했다.
앞서 주요 단지들이 ‘조건부 재건축’을 받았던 것에 대해 조건부 재건축 점수 범위를 기존 ‘30~55점 이하’에서 ‘45~55점 이하’로 축소함으로써 45점 이하에 대해 즉시 재건축 추진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에 더해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았을 때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했던 공공기관 적정성 검토(2차 안전진단)를 지자체의 요청이 있을 때만 진행하도록 개선했다.
이를 통해 목동 신시가지 3·5·7·10·12·14단지와 신월 시영 등 7개 단지가 최근 안전진단을 통과했다. 이들 단지는 1980년대 지어져 현재 준공 30년 차를 넘겼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기존 안전진단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재건축 사업이 진행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이미 안전진단을 통과해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재건축 사업을 진행 중인 단지도 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가락 우성1차아파트·개포동 우성아파트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정비계획이 완료된다 해도 재건축 사업의 시작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며, 해당 단지들은 정비계획안에 대해 보류판정을 받아 사업 시행까지 넘어야 할 산이 적지는 않다.
그러나 안전진단을 통과한 이들 단지가 정비계획의 수립 단계로 넘어갔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동안 재건축 사업 추진에 가장 큰 산으로 여겨지던 안전진단을 통과하는 모습을 통해 다른 단지들도 재건축 사업 시행에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진단 통과의 영향은 부동산 시장에서도 나타났다. 노원구 상계동 상계1·2·6단지와 상계 한양 등 4개 단지가 안전진단을 통과해 재건축이 확정되자 지역 부동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앞서 안전진단 완화 발표 전까지 급매물이 나오고 주민들의 지역 이탈이 눈에 많이 띄었지만, 재건축이 확정되자 급매물이 차츰 줄어들고 외부에서 오히려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물론 재건축의 확정이 당장 직접적인 부동산 매물의 거래로 이어지지는 않는 상황이다. 재건축 사업 자체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외부에서도 지켜보자는 의견이 많고, 집주인 또한 어려운 시장 상황에서 섣불리 가격을 올리거나 거래를 하기에는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건축의 확정으로 부동산이 활기를 띤 것이 긍정적인 신호로 평가받는다.
1기 신도시, 조금씩 따라가야
서울 내 아파트단지의 재건축의 진행 정도에 비해 아직 1기 신도시는 미흡한 상황이다. 이에 19일 경기도 주관으로 1기 신도시 특별법 발의와 관련해 주민 설명회를 개최했다. 아직 구체적으로 재건축 관련 사업안이 나온 것이 없어 ‘노후 택지 재정비 특별법 경기도안’ 등을 제시했으며 이는 100만㎡ 이상에 준공 후 20년이 지난 1·2기 신도시를 범위로 정하고 신속한 추진을 위해 실시설계 절차를 생략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한, 설명회 관계자는 “재건축 사업 시행을 위해 이주 대책이 필요하고, 준공된 단지에 이주민을 유도하는 것보다 주변 지역에 새롭게 이주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며 용적률 완화 등을 제시했다.
앞서 고양시 일산동구의 백송마을 5단지는 일산신도시에서 처음으로 예비 안전진단을 신청하고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직접 방문해 단지를 둘러보는 등 빠른 추진력으로 재건축 사업을 준비했다. 그러나 안전진단 완화 정책 발표 전, 재건축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예비 안전진단 단계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당시 주민들의 반응은 “안전진단 기준이 완화된다고 해서 빠른 시일 내에 통과하고 재건축을 시작할 수 있을까?”가 대부분이었다. 아직 안전진단 완화의 기준도 발표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확실한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 아파트단지가 하나씩 기준을 통과하자 다시금 안전진단 준비를 위해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는 모양새다.
백송마을 5단지뿐만 아니라 3단지도 예비안전진단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며, 향후 다른 1기 신도시 내 노후 단지들도 발 빠르게 안전진단을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재건축 규제 완화로 인해 재건축 사업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서 일각에서는 리모델링의 인기가 식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리모델링 사업도 재건축 사업과 비슷하게 주거환경의 개선을 위해 실행하는 사업이다. 리모델링은 과거 재건축 규제가 심했던 문재인정부에서 재건축 사업보다 접근 장벽이 낮아 크게 각광을 받은 바 있다.
재건축과 비교했을 때 사업 시행 기준이 낮고 시간과 비용 부분에서 이점이 있으나 리모델링의 경우 기존 골조를 유지한다는 점으로 인해 확실한 주거환경의 변화를 위해 재건축 사업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1기 신도시 주요 단지에서도 ‘1기 신도시 특별법’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꾸준하게 ‘리모델링파’와 ‘재건축파’가 대립했다. 하지만 규제 완화에 이어 서울 지역 대부분 단지의 재건축 시행이 물 흐르듯 이어지자 재건축 추진 위원회의 힘이 더욱 거세지는 모양새다.
앞서 1기 신도시 중 안양 평촌신도시의 목련마을 2단지 아파트는 독자적인 리모델링 조합을 꾸려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안양에서 처음으로 사업계획승인을 포함한 행위허가가 발표되자 리모델링을 선두로 한 정비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최근 다양한 관련 정책이 변경되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재건축으로 다시 눈을 돌리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안양 평촌신도시 재건축 관계자는 “평촌 내 리모델링을 시도하던 단지들이 서서히 돌아설 것”이라며 “애초에 재건축은 시간이 걸리는 사업이고 정책도 개정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리모델링에 얽매이기보다 다시 기다려볼 만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이런 부동산 정책의 개선은 지금까지 침체됐던 시장의 거래가 소폭 상승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나타났던 큰 폭의 거래량 폭락이 앞으로는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7일 국토부는 노후계획도시에 안전진단을 아예 면제하거나 완화하는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노후계획도시는 택지조성사업 완료 이후 20년 이상이 지난 100만㎡ 이상 택지를 뜻한다.
이에 따르면 재건축 연한으로 30년 대신 20년을 적용한다. 또 안전진단의 경우 광역교통시설 같은 대규모 기반 인프라를 확충하는 등 공공성을 확보하면 면제해준다. 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 등 1기 신도시와 함께 수도권 택지지구·지방거점 신도시 등이 이 특별법의 적용 대상에 들어간다.
국토부는 1기 신도시의 지자체장과 간담회 등을 통해 최종 의견을 수렴한 뒤 이달 안에 이번 특별법을 국회에 발의할 계획이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