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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PBS의 ‘예고된 고난의 행군’과 공영방송 위기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공영방송의 취약성 드러나
美PBS·英BBC 등 진보적 매체 우파 정부와 갈등
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2-03 00:02:50
 
▲ 황근 선문대 교수·언론학
차기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정부효율부(DOGE·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수장으로 내정된 일론 머스크가 6조9000억 달러의 예산을 쓰는 ‘공룡 정부’를 대폭 축소하겠다고 말했다. 작은 정부를 통해 국가 부채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는 선거 기간 중에 여러 차례 언급한 내용이고, 이전에도 같은 조치들이 실행된 바 있어 충분히 예견되었던 일이다.
 
삭감 분야는 대부분 문화·예술·교육·미디어 같은 미국이 절대 우위에 있는 ‘소프트 파워’와 관계된 것들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번 대통령 집권 중에도 박물관·도서관·비영리단체 등을 지원하는 국립예술기금(NEA), 교육문화자원을 보존하는 국립인문학기금(NEH) 같은 예산을 축소·폐지한 바 있다. 예산이 축소된 분야에는 공영라디오(NPR)와 공영방송서비스(PBS)를 관할하는 공영방송공사(CPB)도 포함됐다.
 
 
이번에 머스크가 지목한 분야도 국제지원기금 15억 달러·진보단체 보조금 3억 달러 등 그때와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예고된 공영방송공사 예산 5억3000만 달러 삭감 방안도 그대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정책 기조도 그렇지만 트럼프 본인은 물론 머스크 또한 PBS와 불편한 관계라는 사실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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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S를 대표하는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가 자신을 조롱했다는 생각과 기성 언론에 대한 트럼프의 적대적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최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언론보호법(Press Act)’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할 법안이라는 주장을 내놓은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이 법은 언론의 취재원 보호를 목적으로 올해 1월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바 있다. 주목할 점은 트럼프가 PBS의 관련 보도를 공유했다는 사실이다.
 
 
일론 머스크도 PBS와 불편한 관계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작년에 NPR과 PBS가 “우리의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엑스 계정 사용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극우 음모론·인종주의 같은 유해 콘텐츠를 확산시키는 플랫폼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런 상태에서 머스크가 PBS 예산 지원을 중단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더구나 PBS 예산 삭감은 이미 시작된 상태다. 작년 7월 하원 세출 예산 소위원회가 2026년까지 공영방송 지원 전면 중단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당초 조 바이든 정부는 교육부 학습 준비 프로그램 3100만 달러, 공영방송 상호 연결 인프라 구축비 6000만 달러, 그리고 2026년 CPB 사전 세출 예산으로 5억7000만 달러를 배정했다. 하지만 상·하원 다수 의석을 확보한 차기 트럼프 정부가 PBS를 비롯한 공영방송 지원을 중단하는 데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다.
 
PBS는 1967년 ‘카네기 위원회’ 보고서를 기반으로 설립되었다. 학교 교육 기능을 넘어선 광범위한 사회 교육 방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상업방송이 지배하는 방송 시장을 ‘거대한 황무지(vast wasteland)’라 비판했던 당시 FCC 위원장 뉴트 미노우(Newt Minow)가 이를 수용해 공영방송법을 제정하고 의회가 국가 예산으로 재원을 지원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공영방송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이번 경우가 잘 보여 주고 있다. 정부 지원은 매우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재원이지만, 정치적 간섭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 PBS나 영국 BBC 같은 공영 매체들은 진보적 성향이 강해 우파 성향의 정부와는 갈등 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공영 매체는 리처드 닉슨·조지 부시 등 공화당 출신 대통령의 집권 중에도 몇 차례 재정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그들과 결이 다르다. 어쩌면 공영방송 체제의 근간을 원천 부정할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정부의 재정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공영방송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인터넷 매체들이 급성장하면서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는 급속하게 약화되고 있다. 심각한 경영 압박과 시청자들의 외면으로 수신료 같은 공적 재원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영국 BBC 방송의 수신료조차 지속성 여부를 검토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 보니 안정성과 지속성을 보장받기 위해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공영방송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EU) 역내에서 수신료 재원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은 11개지만, 정부의 직접 지원을 받는 곳은 14개나 된다. 공영방송이 정치도구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트럼프 정부의 PBS 예산 삭감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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