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 조선기업인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은 글로벌 조선업계 ‘빅3’지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최근 삼성중공업이 일본 이마바리 조선그룹에 자리를 내주면서 ‘빅3’ 자리에서 내려왔다. ‘물량’으로 승부했던 중국 업체들의 거센 추격에 이어 기술력을 갖춘 일본 업체들의 위협까지 받아 직격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글로벌 1·2위를 유지하며 체면을 지키고 있기는 하지만 국내 조선업계의 미래는 지금 어둡기만 하다. 글로벌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두 업체 모두 플랜트사업에서 발생한 수조원대 적자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고전 중이기 때문이다. 급기야 정부는 ‘5대 취약업종’에 해운·철강·건설·석유화학과 함께 조선업을 포함시켰다. 대표적인 노동집약 산업인 조선업의 위기는 국가경제 전반에 심각한 상황을 촉발한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조선산업의 위기→실직자 양산→지역경제 파탄→국민경제 파문→국가경제 악영향 등 일련의 위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최근 정부의 대규모 구조조정 방침은 이 같은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인 셈이다. 실제로 조선소가 위치한 지역의 경우 이미 ‘악순환’의 첫 걸음을 내딛은 곳이 있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가 들어선 경상남도 거제시다. 수조 원대의 적자를 기록해 ‘위기설’의 주인공으로 빈번하게 거론되는 대우조선해양의 핵심 산업시설이 위치한 거제에는 곳곳에서 위기의 징후가 드러나고 있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임박했다는 위기감에 대우조선 직원들은 물론 협력사와 상권까지 모두 초조와 불안에 흔들리는 조짐들이 보이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격동하는 한국경제의 엔진으로 ‘조선의 메카’, ‘조선의 도시’ 경남 거제시에 드리운 불황의 그늘을 ‘이슈 포커스’ 시리즈로 현장 취재해 3편에 걸쳐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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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심각한 경영난으로 국민들의 우려를 사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거제옥포조선소의 내부 분위기는 그야말로 긴장과 초조로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는 상황을 보였다. 조선소 현장 분위기는 기존 수주물량으로 분주하게 작업을 소화해내면서도 앞으로 다가올 대규모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나타내는 직원들이 많았다. 사진은 대우조선해양 거제옥포조선소 전경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
최근 3년 간 누적 영업손실(연결) 5조5000억원,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연결) 4000% 등 최악의 경영 지표를 나타내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거제옥포조선소(이하·대우조선 옥포조선소) 현장 분위기를 요약하면 이랬다.
경상남도 거제시에 위치한 대우조선 옥포조선소는 우리나라 경제계의 이슈 메이커로 부상한 대우조선해양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는 거대한 생산시설이다. 격동하는 한국경제를 상징하는 조선업의 메카이자 임직원 및 협력사까지 수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이 곳의 분위기는 최악의 실적 악화로 인한 경영 위기를 온 몸으로 겪는 바람앞의 등불과도 같은 비장함까지 묻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과거 수주한 일감을 소화해 내느라 지금 당장은 분주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직원 개개인별로 저마다 극심한 불안감을 드러내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규모 구조조정설 등 조선소 외부에서 연일 불거져 나오는 각종 위기설이 만든 결과였다.
대규모 구조조정 기정사실화 분위기에 초조·긴장·불안 뒤숭숭…“언론과의 대면 함구령”

▲ 임시공휴일(6일)을 포함한 연휴기간 동안 스카이데일리 특별취재팀이 찾은 대우조선해양 거제옥포조선소의 분위기는 언뜻 보기에는 조용했지만 을씨년스러운 적막감을 숨길 수 없었다. 일부 직원들의 표정에서는 불안감을 드러내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진은 대우조선해양 거제옥포조선소 작업현장(위) 및 휴식을 취하는 직원들의 모습 ⓒ스카이데일리
정부가 정한 임시공휴일 연휴를 앞둔 지난 4일 취재를 시작했을 당시의 대우조선 옥포조선소의 분위기는 들떠있는 일반 국민들과는 달리 완연히 달랐다. 연일 새로운 이슈가 터지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에 몸담고 있는 직원들의 태도는 을씨년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곳의 분위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부분의 직원들은 스산한 표정을 지으며 냉랭한 대답들을 토해냈다.
점심시간 직원 휴게실에서 만난 한 직원은 “할 말 없습니다”며 아예 무시하듯 자리를 떴다. 또 한 무리의 직원들은 “우리도 좀 쉽시다”라며 최근의 상황에 지쳤다는 듯 퉁명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그 후로도 직원들의 영문 모를 냉랭한 반응은 계속됐다. 대우조선해양 직원 대부분이 말을 아끼는 상황은 한 직원의 설명을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대우조선해양 직원 정일채 씨는 “직원들이 기자들과의 대답을 피하는 이유는 얼마 전 한 유력 언론 매체에서 대우조선해양 직원들에 대한 부정적 기사가 나간 것 때문일 것이다”며 “한 부서에서는 기자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만약 접하게 되더라도 함구하라는 일종의 ‘함구령’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수차례의 인터뷰를 시도한 끝에 최근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내부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몇 개의 단어로 대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려와 긴장, 불안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직원 박지형(가명) 씨는 “최근 조선소 내부에는 ‘앞으로’에 대해 불안감을 드러내는 직원들이 상당수 있다”며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는 직원들은 회사가 정하는 방침대로 앞으로 먹고 살 길이 정해지는 것이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옥포 살생부’가 나돈다는 식이었다.
또 다른 직원 임희현 씨는 “조선업 자체가 수주량의 변동폭이 큰 산업이다. 세계경제활황, 환경규제 강화 등에 따라서도 수주량은 변한다”며 “그런데 회사의 경영 위기 극복 노력은 인력재편 방향으로만 치중 돼 있다. 앞으로도 이 같은 상황이 심화될 게 뻔해 일을 하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한 숨만 나온다”고 토로했다.
서릿발 같은 구조조정 분위기 확산에 “생사기로 모르겠다. ‘옥포의 눈물’ 분위기다”
직원 신진선(가명) 씨는 “얼마 전 대우조선해양의 임금삭감 얘기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동결도 아니고 삭감이 현실화 된다면 직원 전체의 사기저하로 이어지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신씨는 “이런 서릿발 같은 분위기가 퍼지면서 막말로 저마다 생사기로를 모르는 식이다. ‘옥포의 눈물’이라고 해야 할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일부 직원의 경우 대우조선해양 위기가 지역 경제 전반의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직원 박지연(가명) 씨는 “옥포조선소가 위치한 거제도는 ‘많이 벌고 많이 쓰자’라는 인식이 팽배해 물가가 비싼 지역이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느 순간 소비가 급격히 쪼그라들어 버리면 지역 경제는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다”고 우려했다.

▲ 대우조선해양 거제옥포조선소에 근무하는 직원 중 일부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일찌감치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거제도를 아예 떠나고자 하는 직원들은 ‘거제 엑소더스(Exodus, 탈출)’라는 거친 표현까지 썼다. 이들은 “옥포조선소 사람들의 소비심리가 위축되면 지역 경제 전반의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사진은 대우조선해양 거제옥포조선소 작업현장 전경 ⓒ스카이데일리
두 아이의 엄마라고 자처한 직원 이나연 씨는 “상여금과 보너스 축소로 인해 전체 수익 자체가 줄어 버렸다”며 “당장 대출 이자 갚는 것도 부담된다. 주변에서는 아이들 학원 끊는다는 소리도 자주 들린다. 기존에 계약한 보험을 해지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이 같은 반응에 대해 대우조선해양 전체 직원을 대변하는 노동조합 측은 어느 정도 수긍한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 조현우 정책기획실장은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침체돼 있는 게 사실이다”며 “과거 수주한 물량 덕분에 지금은 일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구조조정 얘기가 나오고 있어 불안감이 팽배해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최근 분위기로 봐선 구조조정이 거의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데, 이는 향후 국가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오판이다”며 “2018년까지는 일감이 충분한데 당장의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숙련된 전문가들을 대거 내보내면 나중에 수주가 증가할 경우 누가 일을 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조 실장은 과거 일본의 예를 들었다. 그는 “과거 일본 조선기업들이 수주량이 줄었다는 이유를 앞세워 고숙련자들을 내보냈다가 나중에 수주 물량이 풀린 뒤 일할 사람이 없어 수주 자체를 포기한 사례가 있다”며 “우리나라 또한 일본의 뒤를 따라가지 말란 법 없다. 단기적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찌감치 짐싸고 떠나는 젊은층 늘어…앞길 막막한 중년 관리자급 ‘불안에 한숨만’
대우조선해양 거제옥포조선소에서 만난 대우조선해양 직원들은 앞으로 자신들의 생계에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데에 대부분 불안증을 토로했다. 다만 위기 상황을 대처하는 반응만큼은 제각각 이었다. 전문직군과 사무직군, 나이와 지위별로 다른 반응들을 보였다.
정규직 직원이었다가 퇴직 후 다시 계약직으로 대우조선해양에 재입사 한 신재명(가명) 씨는 “원래 조선업이 호황과 불황의 싸이클을 반복해서 타는 사업이기 때문에 전문 기술만 있다면 다시 얼마든지 일어설 수 있다”며 “퇴직하면 같은 분야(1차 협력사, 검사원 등)로 재취업할 수 있는 기회도 있고 주변만 봐도 절반은 재취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사무직 및 계약직 직원들의 입장은 사뭇 달랐다. 특히 직원들 나이 대에 따라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많은 온도차가 느껴졌다.

▲ 거제옥포조선소에서 만난 대우조선해양 직원들은 앞으로 자신들의 생계에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데에는 대부분 공감하면서도 위기 상황에 대한 반응 만큼은 제각각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대우조선해양 거제옥포조선소 야경(위) 및 작업현장 ⓒ스카이데일리
대우조선해양 직원 박진홍 씨는 “인력 감원이 추진된다면 생산직보다는 사무직이 먼저고, 사무직 중에서도 계약직이 우선순위에 오르지 않을까하는 얘기가 돌고 있다”며 “사무직 직원 상당수가 쉬쉬하면서도 불안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자꾸 회사의 위기라는 말들이 많아지다 보니 20대 젊은 친구들 가운데 사원·대리급은 벌써 사표를 내고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며 “나가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토익공부를 하면서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상대적으로 재취업의 기회가 넓은 20대~30대 초반과 달리 40대 이상 직원들의 상황은 그야말로 ‘처절한 수준’에 가까웠다.
약 20년 넘게 대우조선해양에 몸담아 온 직원 이정효(가명) 씨는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라선 직급, 특히 관리자인 부장급들은 재취업 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며 “협력사 같은 중소기업 임원으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원래 급여 수준의 60~70%밖에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퇴직하면 회사에서 자회사로 알선해주거나 나이가 많은 분들은 그냥 쉬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서울·대구 등 타지 사람들의 경우 더 이상 거제 지역에서의 메리트를 못 느끼고 이곳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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