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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포커스]-한국의 세계유산(中-부실관리)
남한산성·창덕궁…세계유산 지정취소 가능성 ‘충격’
세계가 인정해도 한국은 찬밥대접…깨지고 망가져도 관리예산 집행률 바닥
정수민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18-01-22 00:19:05
▲ 창덕궁 빈청(사진)은 조선시대 고위관료들의 회의장소로 사용되던 곳이다. 과거 일제는 격을 낮추기 위해 이곳을 차고지로 사용했다. 하지만 지금도 예전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음료와 기념품점으로 사용되고 있어 이 곳이 빈청임을 아는 관람객은 드물다.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
[특별취재팀|전국 현지=김진강 부장, 이경엽·이지현·정수민 기자]우리민족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세계유산의 관리 실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들 유산은 가치에 걸맞은 대접은커녕 오히려 홀대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의 배경에 문화재 보존관리에 대한 정부의 허술한 태도가 지적되고 있어 그 심각성이 더해졌다.   
 
2018년 1월 현재 유네스코(UNESCO·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에 등재된 한국의 세계유산은 총 12개다. 아시아권에서는 중국(48개), 일본(19개)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숫자다.
 
등재된 연도순으로 살펴보면 △해인사 장경판전(1995) △종묘(1995) △석굴암·불국사(1995) △창덕궁(1997) △수원화성(1997)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2000) △경주역사유적지구(2000)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 △조선왕릉(2009)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2010) △남한산성(2014) △백제역사유적지구(2015) 등이다.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은 자연유산에 속하고 나머지는 모두 문화유산이다.
 
세계유산 곳곳에 버젓이 낙서·쓰레기…외국인 관광객 볼까봐 ‘얼굴 화끈’
 
문화재보존 시민단체, 관련 분야 전문가 등에 따르면 세계 각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적극적인 이유는 우선 관광객 유치에 있다. 실제로 세계유산을 많이 보유한 국가는 대부분이 관광산업이 발달했다. 지난 2016년 기준 이탈리아(세계유산 51개), 중국(〃 48개), 스페인(〃 44개), 프랑스(〃 41개), 멕시코(〃 33개) 등이 대표적이다. 세계유산은 곧 돈이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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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세계유산이 여럿 존재하지만 있지만 정작 이들을 관람하는 관광객 숫자는 점차 감소하고 있다. 한국의 세계유산을 방문하는 관람객은 △2014년 2349만5493명 △2015년 2329만8078명 △2016년 2329만1440명 등으로 2년 새 20만 명 넘게 줄었다. 
 
이러한 현상의 결정적 이유로는 세계유산에 대한 부실한 관리가 지목됐다. 등재만 해놓은 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찾는 이들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실제로 스카이데일리가 직접 찾은 한국의 세계유산들은 제대로 된 관리는 커녕 거의 방치되다시피한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광주시·성남시·하남시에 걸쳐있는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조선시대 도성의 방어를 위해 쌓아올린 산성이다. 극동지역의 공학적 군사기술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과 요새화된 군사도시라는 등재 기준을 충족해 지난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남한산성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가 사적(史蹟)으로 지정돼 있으며, 문화재청과 지방자치단체, 시민자원봉사자 등이 유기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정의섭] ⓒ스카이데일리
 
하지만 스카이데일리가 찾은 남한산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상태를 보였다. 외국 관광객이 찾을 만한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찾지 않는 게 한국의 이미지에 더욱 도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을 정도였다.
 
일례로 남한산성 행궁(행궁은 왕이 지방을 내려가거나 유사시에 머무르던 궁궐)내에 있는 외행전(外行殿)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군사들을 독려하고 음식을 베풀었던 곳이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이지만 현재의 모습을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외행전 문에 붙은 창호지는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관람객 김순홍(61·남) 씨는 “겨울이라 보수를 안 하는지 찢어진 문짝이 보기 안 좋다”며 “옆에 일본인 관광객도 있는데 이런 모습을 보여주니 너무 부끄럽다”고 말했다.
 
축성시기와 문화양식을 알 수 있는 기왓장 역시 반쯤 떨어져 나간 것들이 여럿 있었다. 그나마 온전한 것은 관람객들의 낙서로 더럽혀져 있었다. 귤껍질, 담배꽁초, 일회용컵 등 여기저기 버려진 쓰레기 역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CCTV가 설치돼 있지만 무용지물처럼 느껴졌다.
 
성곽을 등산하던 최용우(50·남) 씨는 “등산하다 보면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양심불량인 사람들이 있다”며 “관리인들도 훼손된 건물이나 유적들을 보수하고 유지하는데 좀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적 가치가 높은 남한산성을 깨끗하게 보존하는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이는 과정이다”고 덧붙였다.
 
일제의 만행으로 격하된 한국의 유산, 해방 후 반세기 흐른 지금도 여전히 찬밥신세
 
지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은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파악할 수 있을뿐 만 아니라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지어져 예술적 가치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창덕궁 내에 위치한 빈청(賓廳)은 조선시대 당상관 이상의 고위관료가 왕을 알현하기 전 머물던 곳으로 국가의 긴급 현안에 대한 대책을 숙의하던 격(格)이 높은 장소였다. 과거 일제는 빈청의 격을 추락시킬 목적으로 차고지로 사용했다.
 
문제는 지금도 일제시대와 다름없는 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7년 이후 이곳은 음료와 기념품을 판매하는 홍보관으로 전락해 버렸다. 일제시대가 막을 내린 지 반세기 넘게 흘렀지만 여전히 과거의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우리나라 세계유산은 곳곳이 훼손되고 망가져 있었다. 외국인들 관광객이 볼까 민망할 정도였다. 사진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찢어진 남한산성 행궁 외행전, 깊게 파인 채 훼손된 남한산성 성곽 일부, 커피잔을 들고 창덕궁을 오가는 관광객들, 낙서로 훼손된 채 방치된 남한산성 남문의 기둥 ⓒ스카이데일리
               
빈청 앞을 지나가던 관광객 김해찬(22·남·가명) 씨는 “그냥 카페나 기념품을 판매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곳인 줄 알았다”며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는 안내판도 없어 궁궐의 일부일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관광 안내지도를 봐도 아무런 설명 없이 홍보관(음료·기념품점)만 적혀있다”고 덧붙였다.
 
창덕궁 곳곳에는 ‘궁궐 전(全) 지역 음식물·음주 흡연금지’라는 안내판이 놓여있다. 하지만 빈청에서 일회용 컵에 담긴 음료를 들고 나오는 관람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노순창(67·남) 씨는 “음식물을 먹지 말라고 하고서는 음식물을 파는 건 무슨 의도냐”며 “우리민족의 숨결이 담긴 이곳에서 도대체 왜 커피를 파는 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창덕궁 내 빈청에 대한 부실 관리 문제에 대해 “빈청에 대해 지난 2010년부터 발굴조사를 실시하는 등 빈청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그러나 고증자료가 부족해 확보한 후 복원한다는 방침이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은 형태와 규모, 밀집도 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으로 평가된다. 선사시대의 사회상과 생활상을 보여준다는 점이 높게 평가돼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하지만 이곳 역시 허술하게 관리되긴 마찬가지였다. 강화군 교산리 고인돌군 안내문에는 세계유산 등재 배경이나 역사적 가치에 대한 설명은 전무했다. 대신 등재시기, 위치 설명, 고인돌 노래 가사 등 크게 중요하지 않은 내용들만이 안내문을 채우고 있었다. 유적 보안을 위한 CCTV는 물론 관리사무소나 관리인도 없었다. 유일한 안전장치인 펜스마저 너무 낮아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었다.
 
“세계유산 관리,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최악의 경우엔 지정 취소 조치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한국의 세계유산이 무방비로 방치된 결정적 원인으로 정부의 허술한 관리실태가 꼽혔다. 현저히 낮은 예산집행율이 근거로 거론됐다.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보니 책정된 예산조차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전문가들은 문화재예산 배분의 효율성을 높이고 집행 실태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교산리 고인돌군 진입로, 고인돌 주변으로 설치된 낮은 울타리, 안내지도에 홍보관으로만 표시된 빈청, 홍보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빈청 내부 ⓒ스카이데일리
 
지난해 국회가 발표한 ‘2016년도 세계유산보존관리 지원 실집행내역’에 따르면 해인사 장경판전의 경우 총예산 4억5000만원 중 집행금액은 1억2100만원에 그쳤다. 집행율은 약 27%에 불과했다. 다른 세계유산 관리 예산 집행율은 △석굴암·불국사 34.8% △한국의 역사마을(안동시) 55.5% △남한산성 31.4% △화산군(고인돌) 57.6% △부여군(백제역사유적지구) 33.4% 등이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세계유산 관리 예산은 증가하고 있다. 문화재청의 ‘2017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각목명세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유산 9점(창덕궁·종묘·경주역사유적지구 제외)의 보존관리(보조)를 위해 자치단체에 편성된 금액은 전년대비 45% 증가한 659억6000만원이다.
 
특히 가장 최근인 지난 2015년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예산은 89억3900만원에서 215억100만원으로 전년 대비 140% 급증했다. 수원화성과 남한산성도 각각 35%, 38%씩 증가했다. 세계유산의 관리 부실 문제는 정부의 무관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익명을 요구한 문화재 관련 한 전문가는 “세계유산은 등록도 중요하지만 관리도 상당히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실질적인 관리비용의 산정과 예산배분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관리와 보존, 수리 등은 지속적인 관심 하에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유산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가치가 훼손될 경우 언제든지 지정이 취소될 수 있는 점은 주변의 우려를 더욱 드높이고 있다. 세계유산협약 당사국들은 자국 내 세계유산 보존 상태와 보호 활동에 관해 정기적으로 세계유산위원회에 보고해야할 의무를 갖는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보고를 통해 유적지들의 상태를 평가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할지 결정한다.
 
조치 가운데 하나가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일례로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계곡’은 18~19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경관이 높은 점수를 받아 200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하지만 2006년 현대적 다리가 건설됐다는 이유로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분류된데 이어 2009년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훼손됐다는 이유로 세계유산에서 제외됐다.
 
[정수민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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