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이하 유네스코)’는 유엔(UN·국제연합) 산하에 있는 여러 국제기구들 중 하나다. 세계유산, 세계기록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 등 세계적으로 가치가 있는 문화·자연 유산을 보호하는 일이 주된 업무다. 세계유산은 1972년 11월 제정된 ‘세계유산 규약’에 따라 1975년부터 하나 둘씩 지정되기 시작했다.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 등 3가지로 나뉜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다는 것은 곧 모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으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하다 보니 세계 각 국의 수많은 관광객이 세계유산을 찾는다. 관광산업이 미래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현 시점에서 각 나라의 정부가 세계유산 등재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우리나라 역시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문화재의 세계유산 등재를 적극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주목된다. 무분별한 등재경쟁과 이에 따른 예산낭비, 이미 등재된 세계유산의 허술한 관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관광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세계유산의 등재시도 단계부터 등재성공 후 관리 단계 까지의 체계적인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금주 이슈포커스 주제로 ‘한국의 세계유산’으로 정하고 세계유산 등재시도 실패 사례와 이에 따른 부작용(上), 이미 등재된 세계유산의 허술한 관리 실태(中), 문화재 관련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下) 등을 세 편에 걸쳐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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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전국 현지=김진강 부장, 이경엽·이지현·정수민 기자]최근 각 지방자치단체의 무분별한 세계유산 등재 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세계유산 심사 과정이나 경향조차 파악하지 못한 보여주기 식의 세계유산 등재 도전 사례가 적지 않아 ‘예산낭비’를 지적하는 여론이 높게 일고 있다. 일례로 서울시의 경우 300억원이 넘는 혈세를 투입해 세계유산 등재를 시도하다가 스스로 포기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세계유산 보유국은 167개국이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재는 총 1073건이다. 문화유산 832건, 자연유산 203건, 복합유산 35건 등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5년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석굴암·불국사 등 3건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12건의 문화재를 세계유산에 등재시켰다. 문화유산 11건, 자연유산 1건 등이다.
2015년 이후 등재시도 연이어 불발, 등재기준 강화 ‘알았나 몰랐나’
문화재 관련 시민단체, 정부 부처 등에 따르면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이후 우리 문화재의 세계유산 등재 성공 사례가 없다. 2016년 ‘한국의 서원’, 지난해 ‘한양도성’ 등을 등재하려 시도했으나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문화재를 세계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일종의 예비목록인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잠정목록에 등재돼 있지 않은 유산은 세계유산 등재 신청조차 할 수 없다.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우리나라는 문화재는 문화유산 13건, 자연유산 4건 등 총 17건이다. 가장 최근에 등재된 문화재는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으로 지난 8일 등재됐다.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은 각각 유네스코의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하 이코모스)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등의 현지조사를 받게 된다. 복합유산은 두 기관이 공동으로 나선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두 자문기구의 권고사항을 고려해 조사대상 문화재의 세계유산 △등재 △보류 △반려 △등재 불가 등 4가지 중 한 가지를 결정한다.
‘등재’ 판정을 받게 되면 세계유산에 등재된다. ‘보류’ 판정을 받은 문화재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 차기 회의에서 등재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반려 판정을 받게 되면 심화 연구 및 신청서 수정을 필요로 하게 된다. 재신청을 하더라고 현지 재조사를 받게 된다. 최악의 경우인 등재 불가 판정을 받으면 같은 항목으로 재신청이 불가능하다.
세계유산의 심사기준은 총 10가지다.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 △오랜 세월 또는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 조경 디자인과 관련해 영향을 미친 경우 △독보적이거나 특출한 문화적 전통 또는 문명 △인류 역사를 함축할 수 있는 사례 △빼어난 자연현상이나 지역 등이다.
최근에는 세계유산의 지역편중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심사기준이 까다로워 진 것으로 전해진다. 동시에 ‘탁월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진 것으로 분석된다. 최종호 한국전통대학교 문화재관리학과 교수는 “최근 들어 유네스코와 이코모스에서 세계유산에 대한 등재기준을 매우 엄격하게 심사하고 있는 편이다”며 “특히 개발도상국 소재 문화재에 대한 심사기준은 완화하는 한편 선진국에 대한 심사기준은 강하게 하는 편이다”고 설명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관계자는 “세계유산 등재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하고 있는 배경에는 세계유산의 국가·지역별 편중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프랑스, 중국 등 상위 5개국이 전체 유산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협약 미가입 국가들의 협약 가입을 권유하고 세계유산을 보유하지 못한 국가들의 잠정목록 및 등재신청서 준비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역시 엄격해진 심사기준의 영향을 받았다. 지난 2016년 도전한 ‘한국의 서원’은 ‘반려’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세계유산 등재에 도전한 ‘한양도성’은 본격적인 심의 전 단계에서 ‘등재불가’ 판정을 받아 자진해서 신청을 철회했다.
한양도성 세계유산 도전에 327억원 혈세 퍼부은 서울시, 시도도 못하고 ‘자진 철회’
2년 연속으로 세계유산 등재에 실패하면서 국내 문화재의 세계유산 등재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17건의 잠정목록 중 과연 실제로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가능한 문화재가 몇 개나 있겠느냐’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스카이데일리는 직접 등재 신청을 자진 철회한 한양도성을 찾아봤다. 한양도성은 지난 1396년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수도로 삼으면서 건설하기 시작한 성곽이다. 이후 세종, 숙종, 순조 시기에 각각 보수 공사를 거쳤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상당 구간이 훼손됐지만 1974년 복원사업을 시작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옥정원 한양도성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당초 한양도성의 평균 높이는 약 5~8m, 전체 길이는 약 18km였지만 현재는 약 70%에 해당하는 13km 구간이 남아있다“며 ”600년이 넘는 오랜 시간동안 수도를 감싸서 방어하는 실질적인 기능을 해왔다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유네스코의 의뢰를 받아 세계유산 심사를 거친 이코모스는 심의 전 단계인 전문가 패널 심사에서 “한양도성은 진정성, 완전성, 보존관리계획 등은 충분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면서도 “세계유산인 타 도시성벽과의 비교연구에서 한양도성이 갖는 탁월성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는 등 세계유산 등재 기준에 따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전체적으로 충족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양도성의 세계유산 등재 실패에 대해 현실적으로 등재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세계유산 등재를 시도해 예산을 낭비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09년 한양도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하고 이후 예산 327억원을 투입했다. 2012년에는 전담조직인 ‘한양도성도감’, ‘한양도성연구소’ 등을 설치했다.
최종호 교수는 “이미 우리나라에는 수원화성과 남한산성이 성곽유적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상태다”며 “이 때문에 ‘더 이상 한국에서 성곽유적을 추가적으로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은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는 말을 이코모스 관계자로부터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같은 맥락으로 이미 안동과 경주의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이 세계유산으로 올라있기 때문에 현재 잠정목록으로 올라있는 낙안읍성, 외안마을 등의 전통마을 유적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어려울 것이다”고 내다봤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난 2010년 이후 세계유산 등재신청서 양식이 변경되는 등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등재 신청 심사가 강화되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러한 변화에 대한 준비와 대응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나라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심사가 강화되고 있는 것도 일정 부분 영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양도성의 세계유산 등재 실패를 둘러싼 각종 지적에 대해 신영문 서울시 한양도성도감 주무관은 “한번 유네스코에서 등재불가 판정을 받으면 재도전이 힘들기 때문에 중간에 철회를 하게 됐다”며 “심사를 받으면서 말로는 꼼꼼하게 심사를 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심사를 꼼꼼하게 하지 않는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심사원의 대부분이 서양인이다 보니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인 차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철저한 사전분석 없인 세계유산 등재 어려워”…잠정목록 등재성공 부산 사례 촉각
지난 2016년 4월 반려 판정을 받은 ‘한국의 서원’은 영주 소수서원, 경주 옥산서원, 정읍 무성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돈암서원,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등 9곳의 서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코모스는 당시 심사에서 서원 9곳의 연계성과 중국·일본 서원과의 차별성이 부각되지 않았고, 서원의 주변 경관이 문화재 구역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반려 판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한국의 서원처럼 여러 개의 문화재를 하나의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것을 ‘연속유산’이라고 한다”며 “연속유산은 왜 여러 개가 하나로 묶이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나라에서 연속유산 등재시도가 많아지는 바람에 (우리의) 연속유산 등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도 각 지역에서는 지자체 주도의 지역 문화재 세계유산 등재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세계유산 등재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대표적인 세계유산 등재 시도 사례로는 지난 8일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린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이 꼽힌다. 부산시는 임시수도대통령 관저, 부산임시수도정부청사, 부산항 제1부두, 유엔묘지 등 8곳의 시설을 묶어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한국전쟁기 피난수도 부산의 유산’은 지난해 12월 문화재위원회 심의 결과 몇 가지 사항을 보완하는 조건으로 잠정목록 신청을 하기로 했다”며 “부산 유산의 경우 최근 세계유산목록에 20세기 이후 유산이 등재된 사례가 비교적 적다는 점이나 개발 압력이 높은 대도시에서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등재 준비과정에서도 개발압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과 효과적인 보존관리계획 등을 철저하게 마련해야 한다”며 “이 점을 잘 극복한다면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린 최초의 근현대 유산이라는 의의를 잘 살릴 수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정자옥 부산시 도시재생과 주무관은 “현재 2025년 등재를 목표로 준비를 하고 있다”며 “이미 2016년과 작년에 등재에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준비를 하려고 한다”며 “등재를 위해 논리를 가다듬고 자료를 추가로 수집하는 등의 노력을 계속 할 것이다”고 피력했다.
[이경엽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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