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는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그림만 그렸어요. 말을 하지 않으니 비장애인 급우들과도 어울리지도 못했죠. 심지어 낯가림이 심해서 집 앞 200m 이상을 혼자 나가지 못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타만 잡으면 당당해졌죠. 평소 말이 없는 제가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해내는 순간인 것 같아요.”
김지희(25·여) 씨는 핑거스타일 기타리스트다. ‘핑거스타일’은 기타를 연주할 때 피크로 긁는 방식이 아닌 손가락으로 줄을 튕겨 연주하는 주법을 말한다. 13살에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고 기타 악보도 읽지 못했던 그는 평창 스페셜올림픽, 미국 공연 등 내로라하는 국제무대에 서는 기타리스트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인 이순도(63·여) 씨의 든든하고 열정적인 지원이 있었다. 스카이데일리는 지난 25일 인천 송도 라마다호텔에서 열린 ‘IBN 미디어페어 런칭쇼’ 축하공연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을 찾은 기타리스트 김지희 씨와 어머니 이순도 씨를 만났다.
7개월 반 만에 출생, 학창시절엔 말없이 줄곧 그림만
이순도 씨에 따르면 김지희 씨는 어머니가 임신한 지 7개월 반 만에 태어났다. 태반이 자궁 출구에 매우 근접해 있거나 덮고 있는 증상인 ‘전치태반’ 형태로 임신됐기 때문이다. 태어난 후에는 20일간 인큐베이터 안에서 울기만 했다. 6살이 될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말을 한 후에는 언어장애연구소 등에 보내고 학교도 일반 학교로 진학 시켰어요.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면 지희의 부족한 사회성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죠.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놀지 않고 혼자 그림을 그릴뿐이었죠. 집 앞 미술학원에도 보내봤지만 거기서도 혼자 지내더라고요”
김지희 씨가 기타를 처음 접한 시기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됐을 때였다. 왕년에 포크송을 좋아했던 아버지가 또래 친구가 없어 외로워하던 김 씨에게 기타를 권유했다. 이를 계기로 김 씨는 동네 기타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김지희 씨는 기타를 배운 지 1년 후인 고등학교 3학년 시절 ‘핑거스타일’ 장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해 5월 기타리스트 정성하 씨의 연주 영상을 찾아보던 김 씨가 어머니인 이순도 씨에게 직접 핑거스타일 주법을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새로 보낸 기타 학원에서 지희가 오선지로 된 클래식 악보는 못 봐도 타브(핑거스타일 악보) 보는 능력은 뛰어났대요. 그 해 여름방학엔 재능기부 뮤직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오디션을 봤는데 기타부문에서 선발된 7명 중 한명이 됐죠.”
“2박3일간 열린 뮤직캠프에선 클래식 기타리스트 이병우 교수에게 기타 수업을 들었어요. 이 교수는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 중 유일한 장애인이었던 지희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지희의 가능성을 알아봐준 첫 멘토죠.”
국제무대서 졸업식 치른 기타 천재…장애 학생에게 희망 주는 멘토로 성장
캠프에 참가한 후 대전방송 주관 장애학생 콩쿨 등에서 금상을 거머쥔 김지희 씨는 이듬해 특별한 졸업식을 치렀다. 2013년 2월 평창 스페셜올림픽(지적장애인올림픽) 폐막식 공연에 초청받아 세계인 앞에서 기타를 연주한 것이다.
“그 때 지희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됐어요. 친구들은커녕 제 눈조차 제대로 못 쳐다볼 정도로 사회성이 없던 아이가 전 세계인 앞에서 당당하게 기타를 치더라고요. 지희가 기타 연주를 하면 담력과 용기를 키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죠. 나중엔 장애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2013년 스무살이 된 김지희 씨는 평창에서 발휘한 저력을 이어나갔다. 어머니인 이순도 씨가 적극적으로 무대를 만들었다. 공원, 카페, 지하철역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1달에 2번씩은 꼬박꼬박 공연을 했다.
2014년 7월에는 기타리스트 정성하 씨와의 듀엣 무대도 가졌다.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4집 앨범 발매 기념으로 열린 ‘모놀로그 투어 서울’에서 김지희 씨는 정성하 씨와 협연을 했다.
2016년에는 행복한우리복지관이 주관한 ‘장애인식개선 프로그램’ 음악강사로도 활동했다. 대전 대덕구 중리중학교에서 수업시간 1시간씩 기타를 연주했다. 비장애 급우들과 어울리기 힘들었던 김지희 씨가 과거와 달리 음악으로 비장애인 학생들의 멘토 역할을 해낸 것이다.
“지희의 어릴 적 꿈은 기타리스트가 아닌 화가였어요. 중1 때부터는 민화를 그렸는데 지금도 계속 그림을 그려요. 꿈을 포기하지 않은 거죠. 나중에 지희의 그림을 전시해놓고 그 공간에서 기타를 연주하면 좋을 것 같아요. 세계로 쭉쭉 뻗어나가면서 지희가 자신의 재능과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할 수 있길 바라요”
김지희 씨의 사연을 담은 영화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가 장애를 딛고 아티스트가 된 과정을 담은 다큐 영화 ‘리틀 걸 블루’가 상영될 예정이다. 기타 연주를 시작한 이후 여태껏 슬럼프를 단 한 번도 겪지 않았다는 김지희 씨는 앞으로 연습에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 열심히 연습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는 게 그의 포부다.
[이슬비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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