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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배우 김아라

“목숨 건 북한 탈출 경험, 배우에겐 큰 자산이죠”

어린 시절 가족과 이별 아픔…한국 온 후 방송활동 종횡무진

배수람기자(baebae@skyedaily.com)

기사입력 2018-03-13 00: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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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아라(사진) 씨는 탈북자들이 출연하는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알리기 시작해 현재는 연기자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작은 단역도 소홀히 하지 않는 성실함을 바탕으로 김아라 씨는 최근 지상파까지 진출했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나중에 통일이 되고 나면 북한에 있는 가족과 친척들을 다시 만날 거잖아요. 혼자 탈북해서 잘 사는 게 아니라 ‘우리 가족이 다시 만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해왔구나, 열심히 살았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그 날을 생각하면 언행 하나하나 조심하게 되죠. 작은 역할 하나에도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더 많이 노력하는 것도 같은 이유죠”
 
2009년 한국에 온 북한 출신 배우 김아라(28·여) 씨는 한 방송 프로그램 출연을 계기로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됐다. ‘탈북자’라는 단점을 그만의 장점으로 소화해 낸 그는 작은 배역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성실함을 바탕으로 최근 지상파 드라마에까지 캐스팅되는 쾌거를 이뤘다. 그가 지금에 오기까지의 삶은 고난과 역경, 이를 이겨낸 꾸준함과 성실함의 연속이었다.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웠던 유년시절…한국 온 후 ‘탈북 미녀’로 얼굴 알려
 
“어렸을 땐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았어요. 그러던 중 어머니가 돈을 벌어오겠다며 중국으로 건너가신 뒤 소식이 끊겼죠. 어린 여동생은 외가에 맡겨졌어요. 저는 재혼한 아버지, 새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됐죠.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마저 행방불명 된 거예요. 그때 집에서 쫓겨났고 이집 저집 떠돌면서 지냈죠. 당시 제 나이가 10살도 안 됐을 때였어요”
 
어린 나이에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지게 된 김아라 씨는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남의 집 밭일과 장사를 도우며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그러던 중 중국으로 건너간 어머니와 가까스로 연락이 닿았다. 2002년 12살이 되던 해 김아라 씨는 팔려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북한을 탈출했다.
 
“어머니가 탈북을 도와주는 사람에게 꼭 저와 여동생 모두를 데리고 오라고 했대요. 하지만 그러지 못했죠. 동생이 있던 외할머니 댁은 제가 지내던 곳에서 꼬박 이틀을 걸어야 갈 수 있을 정도로 먼 곳이었어요. 북한은 워낙 교통수단이 좋지 않다 보니 결국 저만 중국으로 데리고 간 거예요. 당시 어린 동생일 외가에 보내지 않고 함께 있었더라면 좋았을 걸 지금까지도 후회되는 부분이예요”
 
무사히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간 김아라 씨는 어머니, 새 아버지와 함께 지냈다. 학교에 다니면서 중국어를 배워 차츰 중국생활에도 적응해 나갔다. 하지만 중국에 정착할 생각은 없었다. 미래를 그려나가기엔 중국이란 나라는 낯설고 위험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7년을 살았는데 신분이 확실치 않았기 때문에 늘 불안했어요. 위협도 많았죠. 중국에서 제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한류 문화를 접하게 됐죠. 사실 그 전에는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몰랐죠. 처음 한류 문화를 접했을 때 언어는 물론이고 의식주 문화까지 비슷하니까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당시 제 눈에 비친 한국은 아늑한 고향 같았어요. ‘당연히 내가 갈 곳은 저기구나’라고 생각했죠”
 
▲ 김아라(사진) 씨는 다름을 인정하고 당당해지면 ‘북한 출신’이라는 점을 강점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탈북 후 상처가 온전히 치유되지 않은 새터민들을 대신해 주도적으로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려고 노력한다. ⓒ스카이데일리
 
한국으로 건너온 김아라 씨는 명지대학교 뷰티아트과에 입학했다. 헤어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준비하던 중 그는 친구의 권유로 종합편성채널인 채널A에서 방영하던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하·이만갑)’에 출연하게 됐다. 이만갑은 탈북자들이 출연해 북한의 생활문화와 여러 실상을 소개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처음에는 아무도 제가 북한에서 온 줄 몰랐어요. 사람들의 편견이나 시선이 불편해 강원도에서 왔다고 둘러댄 적도 있었죠. 방송에 출연하고 난 뒤로 더 이상 숨기지 않아도 됐죠. 제 탈북 스토리를 묻는 분들이 늘어나고 저도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어느새 아픔이 치유가 되더라고요. 북한은 워낙 폐쇄적이다 보니 궁금하고 신기한 게 많잖아요. 제가 겪은 일을 이야기하고 서로 다른 점을 나누다 보니 관계를 맺기가 수월했어요”
 
“물론 사람들이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다보니 그로 인해 겪게 되는 불편함도 컸어요. ‘누가 탈북을 했다느니’ ‘북한이 핵을 쏘아 올렸다느니’ 등 저와 관련이 없는데도 물어보는 일이 다반사였죠. 단편적인 것만 보고 ‘역시 북한 사람들은 이렇다’고 단정해 버리는 일부 사람들이 밉기도 했어요. 하지만 소소한 일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못할 것 같더라고요. 저를 좋게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생각으로 일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꾸밈없는 솔직한 성격과 올망졸망 귀여운 외모로 김아라 씨는 이만갑에서 ‘탈북 미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인기에 힘입어 2015년에는 웹드라마에 출연하게 됐다. 처음에는 자신이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될 줄은 생각조차 못했다. 그러나 연기를 하면서 얻는 즐거움과 행복함을 깨달은 이후 배우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헤어·메이크업 계열로 가기 위해 학교에서 배웠던 시간이 아깝기도 했지만, 연기를 하면서 느꼈던 행복함 또한 컸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 해서 행복한 일과,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을 나눠서 생각해 보니 연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10년 이상 준비해도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운 좋게도 탈북자로 방송에 출연해 기회를 얻게 됐잖아요. 놓칠 수 없었죠”
 
북한에 남은 가족위해 현재의 삶에 충실…배우로서 남·북 관계 개선 일조 희망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김아라 씨는 2년 동안 연기학원을 다니며 매일같이 연습에 매진했다. 연기 수업은 물론 춤도 함께 배웠다. 특유의 북한 사투리를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평소 영화를 좋아하는 김아라 씨는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영화를 보면서 배우들의 말투, 표정, 움직임 등을 유심히 보고 직접 따라 해보기도 한다.
 
“배우라는 직업이 힘들다는 건 당연히 알고 시작했어요. 현실과 마주하면 좌절할 때도 많죠. 그런데 그건 잠시더라고요.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대가가 따른다고 생각해요. 작은 역할이라도 다른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고 벅차요”
 
“이만갑 MC였던 개그맨 남희석 선배가 저를 많이 예뻐해 주시는데 처음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달가워하지 않으셨어요. 워낙 힘든 걸 아시니까요. 주위에서 예쁘다고 해주니까 소위 말하는 ‘방송물’ 들었다고 놀리기도 하셨죠. 얼마 전 회식을 했는데 그때 남희석 선배를 비롯해 이만갑 식구들이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시더라고요. 엄청난 힘이 됐고 위로가 됐죠”
 
▲ 김아라 씨는 중국과 일본 등을 오가며 현지 TV프로그램에도 다수 출연했다. 그는 최근 일본에서 출판 제의가 들어와 자신의 솔직하고 꾸밈없는 모습을 담은 에세이도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캡쳐화면]
 
이만갑을 시작으로 김아라 씨는 채널A ‘잘 살아보세’, 네이버TV 웹드라마 ‘아는 사람’,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6’ 등에 주·조연으로 출연했다. 연극 ‘댄서의 순정’ 주연으로 발탁돼 극중 조선족 ‘채린’역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있다.
 
솔직한 모습과 성실함, 꾀부리지 않는 성격 덕분에 그는 12일부터 방영된 MBC 드라마 ‘위대한 유혹자’에 캐스팅 됐다. 김아라 씨는 재벌가에서 일하는 중국인 가사도우미 빙빙 역을 맡아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과 함께 씬 스틸러로 활약할 예정이다.
 
“탈북자·중국인·조선족 등 북한 출신이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맡게 되는 역할이 제한되는 게 있긴 하죠. 물론 아쉬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배역들을 통해서 탈북자들과 북한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바로 잡아나가고 싶어요. 제가 탈북자 이미지에서 탈피해 다른 배역을 맡는다면 시청자들은 더 신선함을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북한인 역할이라고 하면 ‘김아라’가 떠오를 정도의 대표성도 갖고 싶어요.”
 
어린 시절 헤어진 김아라 씨의 아버지는 지금도 행방불명 상태다. 외가에 지내는 여동생과는 지난해 우연한 기회에 연락이 닿아 안부를 주고받았다. 한국에서 북한으로 먼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김아라 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먼저 연락을 해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너무 어릴 때 헤어졌고 시간도 10년이 더 넘었어요. 사진이라도 있으면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보면서 기억이라도 하는데 그마저도 없어서 이제는 얼굴이 거의 기억나지 않아요. 만약 통일이 된다면 바로 옆을 지나가도 못 알아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게 얼마나 슬픈 일이예요”
 
김아라 씨는 방송활동을 하면서 늘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의 만남을 고대한다고 말했다. 그가 작은 배역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배우라는 직업이 본인 혼자만의 만족을 위해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가족을 만나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곤 한다.
 
“배우에게 제일 힘든 건 기다림이잖아요. 기다림이 짧을 수도 있고 기약 없이 길어질 수도 있죠. 저는 기다릴 줄 아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사소하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연기하는 배우로 겸손함을 잃지 않으면서요”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에 북한 응원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응원하는 모습이 굉장히 화제였잖아요. 남북이 세계적인 축제에서 이렇게 하나된 모습을 보니까 또 다른 감동이더라고요. 기쁘고 안타깝고 짠하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왔죠. ‘북한에서 왔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반가움이 큰데 만약 제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더 감동일까요. 작은 움직임이지만 저 역시 남북 간의 관계 회복에 일조하는 배우로 성장하고 싶어요”
 
[배수람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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