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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부동산 추월차선’ 저자 김은자 씨

“취미로 시작한 부동산 투자로 100억대 자산가 됐죠”

어려운 환경 딛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돈·성취감 두 마리 토끼

문용균기자(ykmoon@skyedaily.com)

기사입력 2019-02-19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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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추월차선’을 펴낸 김은자(사진) 저자는 500만원 투자를 시작으로 100억대 자산가에 오른 인물이다. 맹지에 길을 내거나 낭떠러지 임야를 분양하는 등 남들이 매입하기 꺼려하는 토지를 자신이 생각한 방식으로 꾸며 시장가치를 높이는 것에 그는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저는 부동산 중에서도 토지에 관심이 많아요. 남들이 여기에 이런 땅이 있었냐고 되물을 정도의 땅을 토목공사를 진행하고 길을 만들어 쓸모 있는 곳으로 만들죠. 그럴 때 가장 희열을 느껴요. 게다가 꾸며놓고 나면 더 높은 가격이 따라와요. 부동산은 다른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성공하기 어렵죠. 정형화된 부동산이 접근하기 쉽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쪽으로 몰리곤 하죠. 정보도 파악하기 쉽고 그럴듯하죠. 그래서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많아요”
 
김은자(여·60) 씨는 집안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20대 초반부터 생업 전선에 뛰어 들었다. 그녀는 이후 부동산과 관련된 공부를 계속하고 투자를 통해 100억대 자산가가 됐다. 김은자 씨는 상명대학교 경영대학원 부동산학과에서 4년 동안 강의를 했다. 현재는 서울 소재 한 대학에서 부동산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또한 농업법인 대표로, 부실채권 매입을 하는 NPL 회사의 대표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오늘만 넘기자 다짐’…일하면서 시간 쪼개 좋아하는 부동산 공부
 
“아주 어린 시절에는 부족함이 없이 자랐어요. 아버지 직업이 군인이셨어요. 아버지가 군 장교라 휴전선이 가까운 동네에서 살았죠. 그러다 중학교 1학년 때 서울 구의동으로 유학을 왔어요. 그 당시 주변 지역이 개발되기 시작해 그 때 처음으로 집과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친구들을 보니 집을 짓고 조금 살다 그 집을 팔고 그 옆에 다시 집을 짓더라고요. 집을 지으면 저렇게 잘 팔린다는 생각에 ‘집을 지으면 돈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죠”
 
부족함이 없던 김 대표는 아버지가 퇴임 후, 수차례 사기를 당하면서 고등학교 때는 단칸방으로 이사했다. 가세가 기울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그녀는 대학 진학의 꿈을 포기하고 취직을 선택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늘 ‘남에게 당하지 말고 살자’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어린 나이 때부터 생활력을 다지게 된 셈이다
 
“20대 때 무역회사에 다니면서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어요. 재미가 있었지만 제가 꾸준한 성격이 못돼서 문제였죠. 마음속으로 집안이 힘들지만 이번 고비만 넘겨보자 하는 생각으로 부동산 공부를 계속했어요. 처음에는 ‘하루만 참아보자’, ‘삼일만 참자’ 이런 다짐을 하며 살았어요. 그랬더니 어려움은 기억 속으로 사라졌죠”
 
그렇게 20대를 보내며 그녀는 직장이라는 소속 집단을 벗어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손이 느려 접시 닦는 일도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김은자 대표는 자신이 잘할 수 있다고 믿은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 집안이 기울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 그녀(사진)는 미래에도 할 수 있는 일을 찾기위해 공부, 그 중에서도 좋아하는 부동산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20대 때 했다고 한다. ⓒ스카이데일리
 
주경야독(晝耕夜讀) 밤을 낮 삼아 공부했으며 중간 중간 비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일을 하며 대학교에 들어가 경영학 학사학위를 받았으며 대학원에서는 부동산행정학을 공부했다. 또한 법학박사 학위를 따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모두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뤄낸 성과였다.
 
“20대에는 한 달에 쉬는 날이 격주 두 번 뿐이었어요. 당시 여자는 결혼하면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어요. 때문에 가끔 쉬는 날에 나오라고 해도 회사를 빠질 수가 없었죠. 그래도 1년 치 경매지를 구독해 매일 밤마다 전국 매물을 분석했어요. ‘이 물건은 뭐가 좋고 왜 사야하는지’를 혼자 생각했죠. 회사를 빠져가며 경매장에 갈 수 없어서 20대 때는 잘못 다녔어요.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배우고 투자하는 재미가 있어 즐겁기만 했죠”
 
500만원으로 시작해 100억대 자산가로…“일반인 대상으로 강의하고 싶어”
 
“마흔이 될 무렵 위기가 찾아왔죠. 남편이 사업에 실패했거든요. 그 당시 경매를 통해 집 3채를 가지고 있었는데 모두 잃고 말았죠. 압류까지는 아니었지만 고비를 넘기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일산에 집이 2채 있었지만 전세로 들어가 살았어요.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전세로 들어간 집이 경매에 넘어갔죠. 확정 일자를 받지 않은 탓에 10원 한 장 받지 못하고 나왔어요. 지금처럼 전세권 같은 기능도 없었으니까요. 직장이 있던 강남으로 남편과 함께 이동해, 차고를 개조해 만든 집에서 월세로 살았어요”
 
말이 집이지 집이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더 공부에 매진했으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남은 돈 500만원을 가지고 ‘이판사판’ 식으로 경매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도봉구에 있는 빌라를 경매로 낙찰 받았다. 처음엔 경매 물건이라 내부 사정이 복잡한 줄로 알았지만 들어가 보니 빈집이었고 바로 세를 놓을 수 있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경매 시장에 뛰어들었다. 김 대표는 경매를 통해 물건을 되팔면서 3년 만에 기운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42살쯤 됐을 때에요. 회사일과 부동산 투자를 병행하다보니 너무 힘들어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직장을 그만뒀어요. 그런데 보름인가 만에 우울증이 찾아왔죠.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서점에서 국토개발 계획도가 그려진 지도를 하나 사왔어요. 지도를 보며 꾸준히 경매도 하고 부동산 공부도 했으니 이번에는 토지에 투자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당시는 IMF 이후라 연봉제로 바뀌면서 퇴직금이 없었어요. 돈을 긁어모아 8000만원을 만들어 의료 기업이 들어선다는 원주를 찾았죠. 당시 원주가 꽤 비싸서 충청북도 제천으로 내려갔어요. 제천은 원주로 들어가는 길목이기도 하고 벤더 업체들은 땅값이 비싼 원주보다 한 시간 거리인 제천에 회사를 차릴 것이라 생각했죠”
 
▲ 다른 이들을 위해 책을 출간했다는 그녀(사진)는 ‘건강하게 전원 생활하는 법’과 ‘부동산 추월차선 2’ 등의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반인을 대상으로하는 부동산 강의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카이데일리
 
김 대표는 제천에 있는 부동산을 찾아가 투자한 돈에 20% 마진만 돌려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수수료를 깎으려고 할 때에는 김 대표는 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다. 8000만원에 달하는 토지를 사면 10%의 계약금을 걸었으며 부동산에서 빠르게 토지를 팔아준 덕에 8000만원의 20%인 1600만원을 이익을 낼 수 있었다. 800만원의 계약금을 걸어 1600만원을 벌었으니 100%의 수익률을 냈던 셈이다.
 
“부동산은 수수료를 후하게 주는 사람에게 좋은 물건을 먼저 주기 마련이죠.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 들어 각종 규제가 생기면서 부동산이 망한다고 했지만 저는 남들과 다르게 토지를 잘 가꿔서 팔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임야 8000평을 사놓은 걸 토목공사를 하고 길을 내 분양했어요. 덕분에 양도소득세 비용만큼 벌었죠. 저는 주거용으로 꼽히는 아파트에 투자하기보다 남들이 덜 접근하는 토지를 찾아서 가꾸고 다시 파는 것에서 희열을 느꼈어요. 못난 땅을 잘 만들면 재미가 있죠”
 
김 대표는 여러 사람이 함께 몰려가 투자한 부동산은 떨어질 확률이 높다고 전했다, 또한 정형화된 부동산만이 투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현재 토지와 공장, 카페 등 100억이 넘는 자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주거용은 자신이 사는 집하나 뿐이다.
 
“제가 책을 낸 이유는 조금만 도와주면 부의 세계로 들어오는 길을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예요. 저도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책을 통해 동기부여를 가지고 도전했으면 해요. 또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다보면 제 방식으로 접근해 성공한 제자들이 있어요. 그래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도 계획하고 있어요. 앞으로 10년은 더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사회복지 기관을 세워 내 모든 것을 환원하고 재밌게 살다가 가는 것이 최종 목표에요. 제가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문용균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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