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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이재관 캐나디언 카누클럽·허밍버드 왁싱룸 대표

“좋아하는 일하며 오뚜기처럼 살아온 장인이죠”

산골 빛내는 명인…튜닝과 카누 배우기 위해 해외로 떠났던 진짜배기

강주현기자(jhkang@skyedaily.com)

기사입력 2019-02-12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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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관 대표은 홍천 대명리조트로 가는 길목에서 스키 튜닝샵을 운영하고 있다. 제대로 된 튜닝 기술을 배우기 위해 독일까지 다녀왔던 그의 손은 기계에 비교해도 결코 모자람이 없다. 지금까지 9000대에 가까운 스키를 손봤다고 밝힌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튜닝 장인이라 자부했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진짜를 배워야 진짜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카누를 배우기 위해 캐나다를 다녀왔고 스키 튜닝을 배우기 위해 독일을 다녀왔죠. 그곳의 명인들에게 기술을 배운 덕에 저는 진짜배기 장인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요. 카누와 스키 튜닝에 관한 것이라면 대한민국 최고의 장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홍천 대명리조트로 이어진 고요한 산길, 길가의 작은 오두막집인 ‘허밍버드 왁싱룸’ 에선 늦은밤까지 연장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연장소리의 주인공은 스키 튜닝 전문가 이재관 대표(62·남)로 늦은밤까지 튜닝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스키를 만지는 그의 손길은 매서우면서도 세밀했다.
 
“지난 18년 동안 어림잡아 9000대의 스키를 튜닝했어요. 대한민국에 저처럼 손으로 튜닝작업을 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을 거에요. 진짜 기술을 배웠다는 자신감과 수천 번의 작업을 통해 얻어진 노하우가 오늘날의 저를 만들었죠”
 
“진짜를 배워야 진짜가 될 수 있어요”…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튜닝 전문가
 
스키 튜닝이란 스키 바닥판에 뭍은 이물질을 제거하고 날을 세우는 왁싱과 엣징 작업을 말한다. 스키는 튜닝을 통해 산화를 막고 수명을 늘릴 수 있다. 또한 스키를 탈 때 활주감을 살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결을 살리는 와중에 수백 번의 연삭작업을 해야 하기에 수작업으로 하기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 묻자 그는 “좋아하고 돈이 되니까”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또한 오뚜기처럼 살았던 시간의 다리를 건너 30년 전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처음 스키 튜닝샵을 열려고 했을 때 아는 후배에게 기술을 알려달라고 하니 단번에 거절하더군요. 튜닝 기술을 배우기 위해 독일로 떠났던 건, 바로 그것 때문이었죠. 오기가 생겼더라고요. ‘너만 기술이 있냐, 나도 직접 가서 배우고 오겠다’란 생각에 혈혈단신 독일로 떠났죠. 처음엔 언어도 안통하고 만국 공통어인 바디랭귀지로 시작해 하나하나 기술을 배웠고 오늘날 제 자산으로 만들었죠”
 
이 대표는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왁싱 작업을 이어갔다. 일감이 밀려 잠시라도 손을 놓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젊었을 때부터 스키를 즐겼던 그의 입장에서 스키 튜닝 작업을 생업으로 선택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모른다.
 
“쉬운 작업이 아니니 요즘엔 기계로 왁싱 작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하지만 전 제 기술을 믿고 기계와 다른 손맛을 제공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실제로 제가 듀닝한 것을 사용해본 손님들은 늘 잊지 않고 절 찾아오니까요. 일감이 많은 겨울철엔 새벽 2시까지 작업을 해도 작업을 끝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 이 대표는 겨울엔 스키 튜닝샵을 운영하며 눈이 녹고 난 후에는 카누클럽 운영에 매진한다. 상이한 두 일을 병행하고 있지만 그는 두 업계에서 모두 손꼽는 장인으로 통한다. 해외에 까지 나가 기술을 받아와 일에 몰두해온 결과다. 이 대표는 일을 좋아하는 점도 원동력으로 자리했다고 밝혔다. ⓒ스카이데일리
 
“많은 사람들이 경쟁업체가 생기면 손님이 끊길까 두려워하곤 하는데 전 두렵지 않아요. 제 기술을 믿고 있으니까요. 제 솜씨는 누구와 경쟁해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한 혼자 잘 살기보다 함께 살아가는게 중요해요”
 
그는 혼자 잘 사는 외톨이는 오래 못간다는 걸 자연을 통해서 배웠다고 한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기자에게 두 개의 명함을 건냈다. 하나는 허밍버드 왁싱룸이 적힌 명함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캐나디언 카누클럽’이란 이름이 적힌 명함이었다.
 
두 번째 명함을 건넨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자연을 통해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다. 그는 겨울철엔 스키 튜닝을, 봄부터 가을에는 카누클럽을 운영하며 산다. 스키 튜닝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 반열에 올라있는 그는 투어링 카누 분야에서도 손꼽는 명인으로 통한다.
 
“처음 카누를 탄 건 30년 전이에요. 아는 선배가 카누 수 십대를 들여왔는데 그 때 처음으로 카누를 타보게 됐죠. 그리고 부드런 강물에 자신을 맡기는 카누의 매력에 반해버렸죠. 본격적으로 카누를 배우며 자연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배웠죠. 그러면서 자연과 동화되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깨닫게 됐고 카누를 알리기 위해 몸을 바치기 시작했죠”
 
스키 튜닝을 배우기 위해 독일로 떠났던 것처럼 그는 카누를 배우기 위해 가방하나 메고 캐나다로 훌쩍 떠났다. 진짜를 가르치기 위해선 진짜를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공식 라이센스 자격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도착한 최고의 나라였다. 그는 그곳에서 전문가 교육을 받고 테스트를 통과해 ‘Recreational Canoeing Association of British Columbia Flatwater Level 4’를 받았다. 국내 유일 공인 라이센스 보유자가 된 것이다.
 
“카누클럽의 문을 연 직후에는 카누를 알리고 손님을 모으기 위해 ‘체험’에 무게를 두었어요. 하지만 체험은 금방 교육으로 바뀌었죠. 전 사람들에게 카누를 알리며 가르치고 싶어 캐나다에 다녀온 것이니까요. 단순히 카누를 체험하는 것에 그칠 것이라면 멀리 타국에 가서 고생할 필요가 없었죠. 진짜를 배워온 만큼 사람들에게 진짜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꺾이지 않는 노익장…그 배경은 일을 좋아하는 것
 
이 대표가 홍천강가 마곡에 터를 잡기까지 그는 많은 길을 돌아왔다. 중학교 때 그는 기계체조 선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운동을 그만두려고 잘 다니던 경희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학교로 전학했다. 잘 다녔다면 경희대 체대에 입학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진로를 바꾼 그는 지금의 사회복지학과 격인 사회사업과에 합격해 대학에 진학했으며 군 복무를 마친 후에는 종로2가에 있던 YMCA에서 수영강사로 일을 하기도 했다. 이때 그는 조용하고 생각할 시간이 많은 등산의 매력에 푹 빠졌다.
  
▲ 이 대표는 카누의 조용한 매력에 매료돼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산을 좋아했던 배경도 마찬가지다. 사색을 즐겼던 그는 지금도 일을 하며 많은 생각에 빠지곤 한다. [사진=이재관 대표]
 
“전국에 있는 명산은 다 다녀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산을 다니다가 여행사에서 가이드로 산행에 오르며 더 많은 산에 오르곤 했죠. 지금은 무릎이 아프고 일이 바빠 산에 자주 오르지 못하지만 당시엔 산의 매력에 매료됐던 걸로 기억해요”
 
이후 그는 대명스키장에서 행사를 맡아 진행하는 일을 했으며 선후배들과 함께 내린천에서 래프팅 사업도 진행했다. 산장을 열고 스키장과 산을 오가는 손님들을 맞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98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IMF가 터지자 수입이 떨어져 먹고 살 길이 막막해졌다.
 
늘 그랬건 것처럼 이 때도 그가 선택한 것은 혈혈단신 가족들의 살 길을 찾아 떠나는 것이었다. 그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혼자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는 페인트 칠하는 일을 배워 칠을 해서 번 돈을 모두 한국의 가족들에게 보냈다.
 
“한국에선 먹고 살 방법이 없어 미국으로 건너가 페인트일을 배워 돈을 벌었어요. 2년 정도 지난 후 외환위기가 진정되자 한국으로 돌아왔죠. 그 후에도 페인트 일은 계속했어요. 산장 운영도 병행했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미국에서 배운 페인트 칠 기술로 주중에는 양평 일대의 고급 주택의 페인트 칠을 해주고 주말에는 산장을 운영하며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집값이 올랐을 때 산장을 팔고 인근에 작은 목재건물을 지어 허밍버드 왁싱룸의 문을 열었어요. 건물을 지을 당시 아는 후배에게 4일을 줄테니 건물을 지으라고 했었죠. 그런데 그 후배가 진짜로 나흘만에 건물을 지었고 지금까지 이 집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요”
 
이 대표는 튜닝 작업을 하면서 수많은 생각을 한다고 했다. 혼자 있는 산중 가게의 작업실은 가장 아늑한 공간이며 생각의 집합소다. 그는 그곳에서 따스한 커피 한잔의 여유를 나누며 틈틈히 미래의 일기를 쓰곤 한다.
 
“아픈 다리가 나아지면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날 생각이에요. 오랜 생각 끝에 나온 다짐 중 하나인데 그곳에 제 발자취를 남기고 싶어요. 작업실 한쪽 벽에 순례길 지도를 걸어놓고 언제나 저 목표를 이뤄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죠. 다만 그간 생각을 너무 많이 했다는 느낌이 들어 이제는 생각을 좀 안하려는 하기도 해요”
 
올 봄 그는 일본으로 떠날 예정이다. 일본의 카누명인이 그를 초청했기 때문으로 보름 정도 머물며 카누를 타며 휴식을 취할 심산이다. 일본행은 평생 삶의 수레바퀴 속에서 쉼없이 살아왔던 자신에게 휴식을 주기 위함이다.
 
“일본에는 한국과 달리 수백킬로미터의 강이 있어 그곳에서 카누를 타면 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어요. 약오르지만 부러운 부분이죠. 그곳에서 카누를 타며 강에 몸을 맡기고 나머지 삶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져볼 생각이에요”
 
인터뷰 말미에 그에게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장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묻자 그는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니까”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오랜 시간 일을 해온 배경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금까지 늘 자신의 무게를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찾았다. 그래서 지금도 계속해서 카누와 스키에 몸을 맡기고 싶어한다.
 
▲ 이 대표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중에도 일을 손에 놓지 않았다. 한 번에 두 개의 일을 하는 탓에 집중력이 무너질만도 했지만 그는 전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섬세한 그의 손길을 거친 스키는 새것처럼 날이 빛났다. ⓒ스카이데일리
 
“한편으로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커요. 제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절 믿고 묵묵히 옆에 있어준 아내가 있어요. 항상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기자의 손엔 빈 커피잔이 남아 있었다. 이 대표가 건낸 커피였다. 그의 커피는 흔히 맛볼 수 있는 커피와는 달랐다. 직접 볶은 커피콩을 갈아 커피를 우려냈던 그의 손길 덕분이었다. 꽤나 귀찮은 작업임에도 그가 마다하지 않은 까닭은 아주 단순했다. ‘커피를 좋아하니까’. 그가 이처럼 수고스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좋아하고 잘하니까’였다. 그 철칙이 힘든 삶에도 늘 그를 지켜주었던 것이다.
 
[강주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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