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회장이 이끄는 LX그룹의 경영승계가 사실상 9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 회장의 장남 구형모 LX홀딩스 경영기획담당(상무) 중심의 지배력 확보를 위한 사전 정제작업이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구 상무는 수중에 풍부한 현금을 보유한데다 최근의 LX홀딩스 주가 하락으로 재원마련 부담까지 감소한 상태다.
구본준-구광모 ‘지분스왑’ 촉각…구형모 최대주주 조기 등극설 대두
재계 등에 따르면 구본준 회장과 구광모 회장은 서로 소유하고 있는 (주)LG 주식과 LX홀딩스 주식을 내년 5월 이전에 정리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규모기업집단 지정이 내년 5월 발표되기 때문이다. 두 회장이 서로 보유하고 있는 상대방 그룹 지주사 지분으로 인해 LX그룹은 법적으로 LG그룹에 묶여있는 상태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상 계열 분리를 인정받기 위해선 한 그룹의 특수관계인들이 상대 그룹 계열사 지분을 3% 미만으로 보유해야 한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구본준 회장은 (주)LG 지분 7.72%를 보유 중이고 구광모 회장은 LX홀딩스 15.95%를 가지고 있다.
만약 두 사람이 내년 5월까지 상대 그룹 지주사 지분을 처분하지 못할 경우 두 그룹은 내부거래 제약 등 각종 패널티를 떠안게 된다. 몇몇 계열사의 내부거래 비중이 상당하기 때문에 LX그룹 입장에선 실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일례로 LX홀딩스의 계열사 엘엑스판토스는 지난해 개별기준 매출액 2조7284억원 중 1조8106억원 가량을 LG전자,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생활건강 등 LG그룹 계열사와의 거래로 일으켰다.
아직까진 지분정리와 관련한 구체적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양측 오너가 서로 지분을 맞바꿀 가능성이 가장 높게 점쳐진다. 구광모 회장은 부친인 고(故) 구본무 전 회장의 지분에 대한 상속세 7000억원을 납부 중이라 구본준 회장 소유 지분을 사들이기 위한 추가자금을 마련할 여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본준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주)LG 지분의 가치는 1일 종가 기준 약 1조1230억원이다. 반면 구광모 회장이 보유 중인 LX홀딩스 지분의 가치는 1080억원에 불과하다. 구광모 회장은 LX홀딩스 지분을 전부 넘겨도 1조원 가량을 추가 마련해야 하는 셈이다. 증여 방식으로 받는다고 해도 약 6000억원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구광모 회장이 (주)LG 지분을 추가적으로 확보할 이유가 많지 않다는 점도 변수다. 이미 구광모 회장은 (주)LG 최대주주로 있는데다 특수관계인 지분율도 40%가 넘는다. 구본준 회장 지분이 빠진다고 해도 지배력 등에 변수가 생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구태여 천문학적 자금을 동원해 구본준 회장의 지분을 매입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본준 회장의 지분은 시장이나 (주)LG에 자사주로 매각하고 대신 아들인 구 상무가 구광모 회장과 지분스왑을 진행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LX그룹 차기 총수 등극을 기정사실로 하고 있는 구 상무지만 LX홀딩스 지분은 0.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구본준 회장이 일흔을 넘긴 고령이 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구 상무 중심의 지배구조 구축은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해야 할 현안이다.
구 상무 현재 (주)LG 지분 0.6%를 보유 중이다. 지분가치는 약 879억원이다. 구광모 회장이 보유 중인 LX홀딩스 지분의 가치와 차이가 크지 않다. 구 상무와 구광모 회장 모두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지분교환에 나설 수 있는 셈이다. 이는 구광모 회장 입장에선 내부거래 이슈를 해소하면서 (주)LG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자금여력까지 확대할 수 있는 방안으로 평가된다.
구본준 부자(父子)에게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구광모 회장 지분을 확보하면 LX홀딩스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하는 동시에 세금 부담도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본준 회장이 직접 구광모 회장 지분을 사들일 경우 추후 구 상무에게 지분을 넘기는 과정에서 증여세 등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수백억대 실탄 확보한 구형모, LX그룹 승계 시나리오 ‘탄탄대로’
1987년생임에도 불구하고 구 상무의 현금동원 능력이 풍부하다는 점은 일련의 ‘승계 시나리오’에 가능성을 더하는 대목으로 꼽힌다. 구 상무는 당장 다음날 구광모 회장의 지분을 넘겨받는다고 해도 상속세 등을 곧바로 완납할 수 있는 수준의 현금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시간 (주)LG 지분을 통해 확보한 구 상무의 배당금 수익은 수백억대로 추산된다. 당장 지난해 수령한 배당금만 26억원 수준이다.
구 상무는 또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소재 상지리츠빌카일룸 4차 한 호실을 개인명의로 소유하고 있다. 전용면적 237.74㎡(약 72평) 크기 호실로 시세는 약 60억원이다. 이곳엔 근저당권도 설정돼 있지 않다. 해당 호실을 담보로 활용할 경우 수십억대 현금을 추가 조달할 수 있다.
과거 운영했던 개인회사 ‘지흥’을 통해서도 다량의 현금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2018년 구 상무가 지흥 지분 100%를 매각하면서 획득한 현금만 153억원에 달한다. 지흥은 구 상무가 2008년 미국유학시절 10억원의 자본금으로 설립한 사업체다. LG전자, LG화학 등 LG그룹 계열사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2012년엔 10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구본준 회장은 LG전자 대표(부회장)로 있었다.
지흥은 2014년 대기업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된 이후 LG그룹 계열사와의 거래를 축소하게 됐으며 사업규모는 영세해졌다. 이런 가운데 적자구조가 고착화됐고 결국 구 상무는 지흥 지분을 매각했다.
최근의 주가 흐름도 구 상무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최근 9000원을 밑돌고 있는 LX홀딩스 주가는 시초가 1만2650원에서 약 30% 하락한 상태다. 구 상무는 동일한 비용으로 보다 많은 LX홀딩스 지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주)LG의 주가도 나쁜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9만원대는 지속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주)LG 주가는 7만원대에 머물러 있었다.
(주)LG 주가가 현재와 같은 흐름을 지속한다는 가정 아래 구 상무 소유 (주)LG 지분의 가치는 약 880억원으로 계산할 수 있다. 이는 1일 종가 기준으로 LX홀딩스 지분 990만주 가량을 확보할 수 있는 금액이다. 구광모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LX홀딩스 지분의 81%에 해당한다. 1일 LX홀딩스 종가는 8870원이다.
만약 LX홀딩스 주가가 지금보다 더 하락한다고 가정하면 구 상무는 (주)LG 지분을 활용해 LX홀딩스 지분을 더욱 많이 확보할 수 있다. 구광모 회장이 가진 LX홀딩스 지분 전체를 확보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게 투자업계의 시각이다. LX홀딩스 주가하락에 따라 구 상무의 비용부담이 크게 절감되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IB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LX홀딩스 소액주주들 사이에서 이유 없는 주가하락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다”며 “LX홀딩스 주가가 추가로 하락할 경우 오너 일가 입장에선 승계비용 부담을 덜 순 있겠지만 소액주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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