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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포커스]-퇴색된 호국보훈의 가치(下·국가 유공자 대우)

사라진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와 존중… 희생의 가치는 어디로

“어떻게든 안 주려는 국가 태도 상처… 다른 유공자와 비교하게 돼”

관련 제도 있어도 유공자 몰라… 국제 정세·여론에 추도식 못하기도

“유공자라고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기를… 정치색 묻어선 안 된다”

기사입력 2022-06-07 00:05:00

▲ 나라를 위해 헌신한 국가유공자들의 처우를 두고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특별취재팀=한원석 부장|양준규·신성수 기자] 대한민국은 77년 전인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았다.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고, 1950년에는 6.25 전쟁이 발발했다.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새로 출발하는 시기에 맞은 큰 위기였지만 이름모를 수많은 호국 영령들의 희생덕분에 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고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해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스카이데일리가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도록 굳건한 토대가 됐던 국가 유공자들의 처우에 대해 짚어봤다.
 
돈으로 환산된 명예… 보상 받을 유공자가 법 존재 모르기도
 
현재 대한민국은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에게 보상금과 각종 수당, 사망일시금 등을 제공하며 교육, 취업, 의료지원금 등을 함께 지원한다. 하지만 명예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 시작하면서 국가유공자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새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베트남전 참전 유공자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다는 것은 돈보다는 명예이며, 실제로 보상금이나 수당 등이 없을 때는 유공자 단체 같은 곳에서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하지는 않았다”며 “하지만 각종 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하면서 명예의 가치를 따지게 되고 다른 종류의 유공자와 비교가 되니까 신경이 쓰이는 면이 있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참전 유공자는 “예를 들면 상이자를 대상으로 하는 지원금을 제공하면 참전 수당은 안 주던가 하는 식으로 뺀다”며 “얼마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이것저것 빼면서 예산을 줄이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편 국가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사례도 눈에 띈다.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에서 살아남은 장병들은 대다수가 심각한 수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었다. 2018년 진행된 조사에 따르면 생존자의 91.3%가 PTSD 증상을 겪었고 58.3%가 극단적 선택을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비중도 29.1%에 달했을 정도였다.
 
생존자들은 자신을 패잔병 취급하는 사회의 싸늘한 시선에도 시달려야 했다. 마땅히 국가에서 이들을 책임져야 했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최근에야 이뤄질 정도로 걸음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천안함 전우회 관계자는 스카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천안함 생존자들이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법이 있는지도 모르고 알려주지도 않아서 일일이 찾는 과정이 3년 정도 걸렸다”며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절차를 밟아서 신청한 후 가까스로 보상을 받은 사람도 있고 아직까지 기다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행사는 사건 발생 후 46년이 지나서야 민간에서 열렸을 정도로 진행이 더뎠다. 사진은 판문점 도끼만행 희생자 추모사업 현장. [사진=판문점도끼만행유엔군희생자추모사업회 제공]
  
이 밖에도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져 희생했지만 그 명예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달 22일 파주 임진각 망배단에서 열린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희생자 추도식이 대표적 사례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은 1976년 8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벌목 작업을 하던 UN군을 북한국 병사들이 참혹하게 살해한 사건이다.
 
이번 추모식은 사건 발생 무려 46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 주도로 열렸다. 이 자리에 많은 시민단체 인사와 종교인, 예비역 장성 등 15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고귀한 희생을 기렸지만 너무 늦어 '만시지탄'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전에는 군부대 내에서만 추모식을 거행하고 민간에서는 아예 행사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진호 판문점 도끼만행 유엔군 희생자 추모 사업회 사무국장은 “당시 월남전이 끝나고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이 있던 상황이라 한국에서도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며 “사건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졌지만 추모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최 사무국장은 이어 “시간이 많이 지났고 안보에 대한 경각심도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이 사건을 다시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공자 모자 쓰고 다니기 눈치 보여… 평상시에도 호국보훈 가치 지켜야”
 
국가유공자들의 처우와 관련된 이야기를 자세히 듣기 위해 장광현 6.25 참전유공자회 조직복지국장을 만났다. 장 국장은 6.25 전쟁과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그는 6.25 전쟁이 세월이 지나가면서 잊혀지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져 너무 안타깝다고 소회를 풀어냈다.
 
장 국장은 “6.25 전쟁이 발발한 지 이미 72년의 세월이 흐르고 보니 전쟁 초기부터 참여하신 분들은 대부분 돌아가시거나 병석에 계신 분이 많으며, 그 뒤에 참전한 분들도 연세가 거의 아흔살이 넘었다”며 “시간이 아무리 많이 지나도 대한민국 역사에 중요한 일이고 잊어서는 결코 안 되는데 참전용사들이 다 죽고 나면 지금보다 더 잊혀질 것 같아 우려가 된다”고 하소연했다.
 
국가유공자들이 국가를 위해 헌신한 보람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 지에 대해 물었다. 장 국장은 호국보훈의 달이나 현충일처럼 특정 행사 때에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존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광현 6.25 참전유공자회 조직복지국장은 국가유공자들이 당당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사진=대한민국 625 참전 유공자회]
 
장 국장은 “6.25 유공자들한테 주는 모자가 있는데 행사에 나갈때는 어쩔 수 없이 쓰고 가지만 평소에 쓰고 다니면 힐끗힐끗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며 “6.25가 그저 과거의 유물로 취급되니 당당해야 할 유공자들도 알게 모르게 움추러드는듯 싶다”고 안타까운 속내를 내비쳤다.
 
장 국장은 특히 “같은 모자를 쓰고 미국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했는데 거기서는 모자를 보더니 먼저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자기 할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여했다면서 반가워하기도 하는 등 너무 달랐다”면서 “미국 만큼의 예우는 아니라고 해도 국가유공자라는 것을 드러냈을 때 창피하지는 않아야 하는데 지금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 크다”고 털어놨다.
   
장 국장은 호국 보훈과 애국의 가치가 정치적인 색채가 덧씌워지면서 색이 바래는 그릇된 세태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장 국장은 “나라를 지키는 일에는 좌·우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중시하는 사건들을 보면 왼쪽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건이 있고 오른쪽에서 중시하는 사건이 있는데 이런 것들이 국가에 대한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하면서 “예를 들어 나 같은 사람은 6.25 관련 단체에서 일하니까 우파 꼴통 할아버지 취급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장 국장은 이어 “유공자의 권리나 명예를 위한 법안을 요구해 정치권에서도 여당과 야당이 둘 다 발의했는데 통과가 안 돼서 물어보면 여당은 야당이 반대해서 못 한다고 하고 야당은 여당 동의를 아직 얻지 못했다고 한다”며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정치 싸움의 도구로 사용하는 행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호국보훈의 가치와 애국심을 다시 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장 국장은 안보 교육을 강화해 국민 모두가 애국의 가치를 되새겨야 한다고는 점을 강조했다.
 
장 국장은 “안보 교육을 준비해서 교육은 우리가 하겠으니 시간만 할애해 달라고 학교에 문의해도 받아주는 데가 100곳 중 한 곳 정도에 불과할뿐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해도 내부 반대 등의 이유로 무산되기도 한다”고 고충을 토로하면서 “교육 현장에서부터 호국보훈과 안보의 가치를 무시하는 상황에서 나라가 바로 설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양준규 기자 / jgyang@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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