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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인생 다이어트 뭘 걷어 내야 할까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04 06:31:20
 
▲ 최문형 동양철학자‧작가‧성균관대 교수
달력이란 게 신통하다. 한 해의 마지막 한 장을 넘기면 마음이 리셋된다. 시간이란 연속성에 금을 긋고 다시 출발선에 서는 심정이랄까? 청소년기를 지나고 나면 새해를 맞는다는 것이 마냥 즐겁지 않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우리가 ‘먹는 것’ 중에서 별로 환영할 것이 못 된다. 중년이 되고 노년을 바라보게 되면 시간의 흐름은 더욱 버거워진다. 늘어나는 책임과 주름과 고민이 사방에 널렸다. 몸과 마음의 민첩성이 떨어지니 많은 것들이 두려워진다.
 
중년이 되어 한 해의 끝자락, 새해의 앞자락에 있다는 것은 처연한 결심의 연속이다. 술을 줄여야 하고 담배를 끊어야 하고 몸무게도 삭감해야 한다.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하고 나쁜 습관을 절제해야 한다. 젊은 시절 무한대인 줄 알았던 시간과 에너지·감정을 아껴 써야 하기 때문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삶을 지켜보면서 한 해동안 내가 무엇을 원했고 무엇을 달성했고 무엇에 실패했는지 셈을 해 본다.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름다웠는데 며칠 전에도 상당한 분량의 눈이 내렸다. 도시 아이들까지도 풍성한 눈 인심을 즐기며 5층짜리 눈사람을 만들었다. 아파트 단지의 나무들도 눈 손님을 반겼다. 지난 가을이 포근했다가 갑자기 추위가 오는 바람에 미처 잎을 떠나보내지 못한 나무들에겐 눈 폭탄이 아주 힘들었다. 상록수들도 마찬가지였다. 10cm 이상 쌓인 눈에 가지가 휘청거리는 걸 보니 안타까웠다. 가을이 되면 조금씩 무게를 줄이는 나무처럼 인간도 삶의 이파리를 하나씩 감축해야 한다.
 
요 며칠 인생의 겨울을 생각했다. 나무처럼 한가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끝 계절을 어떻게 살아가며 마감해야 할까? 병원에서 우연히 ‘나이듦의 반전(enlightened aging)’이란 책을 보았다. 영어 제목을 그대로 직역하면 ‘밝고 환하게 비추어진 나이듦’이다. 집으로 가져와 수북한 눈 풍경을 배경으로 그 책을 찬찬히 읽어 보기도 했다. 100세 가까이 혹은 100세를 훌쩍 넘기면서도 임종 때까지 인생의 겨울을 충분히 즐기며 행복하게 살다간 선배들의 시간이 소개되어 있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계절이지만 선배들이 가신 길을 간접경험 할 수는 있다. 내가 이해한 현명한 답은 인생 다이어트이다.
 
마음과 몸을 겨울에 최적화하는 것이다. 인생 다이어트에 들어가는 우선 조건은 ‘수용’이다. 아무리 포근한 가을날이라도 계절이 역행하여 여름으로 가지는 않는다. 여름날과 가을날, 그리고 겨울의 나무와 숲을 보자. 각각 계절에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변화는 필연적이고 모든 생명체는 그것을 수용한다. 인생 또한 가을에서 겨울로 가면서 남겨진 시간과 에너지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을 절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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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잎과 가지를 떠나보내는 나무처럼 욕심과 욕망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마음의 다이어트이다. 거기에는 감정의 조절도 포함된다. 과도한 슬픔만큼 벅찬 희열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다고 소소한 즐거움을 배제하라는 뜻은 아니다. 흰  눈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소복이 내려주듯 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활용되면 좋을 것이다. 노년을 아름답게 보낸 선배들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흰 눈으로 쌓였으니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특정한 몇 사람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나의 마음을 그들에게 의탁하면 낭패를 본다. 나에게 과도하게 의지하려는 사람도 피해야 한다. 나뭇가지에 무겁게 눈이 쌓이면 부러지고 말 터이니. 그래도 이 시대 중년들에게는 인생 겨울, 노화에 대한 풍부한 과학적 지식이 많이 쌓여 있다. 그 지식을 바탕으로 정신적·신체적·사회적 대비가 가능하다. 노화에 대해 능동적으로 적응하고 재기하는 일상에서의 회복력을 단단히 준비해 두어야 한다.
 
사계절 모두 회복력은 중요하다. 회복력이 떨어지면 생명은 끊어진다. 하지만 겨울을 뺀 나머지 계절의 회복력은 그런대로 든든하다. 그래서 겨울의 능동적 회복력이 더욱 절실하다. 겨울에도 도전이 필요하지만 그 도전은 기대치가 조절된, 나이에 맞는 도전이다. 몸이든 마음이든 여름처럼 굴려서는 안 된다. 지나치게 축소지향으로 갈 필요는 없다. 나무마다 특성이 제각각이듯 사람들의 개성과 나이듦도 모두 다르니까.
 
인류의 스승인 공자는 나이듦을 경험한 분이다. 이 현명한 선배는 인생의 계절을 지나면서 몇 가지 조언을 우리에게 남겼다. 오십에는 천명(자연의 순리)을 알았고, 육십에는 (어떤 말을 들어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고, 칠십에는 마음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행하여도 아무 지장이 없었다고 술회했다. 공자 같은 인생 선배는 이미 여름부터 가을과 겨울을 준비했을 것이다. 인생 다이어트에 성공한 분이다. 하지만 그분도 사랑하는 제자의 처참한 죽음에 회복력을 잃고 쓰러졌다. 인생 겨울은 녹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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