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칼럼] 이승만의 1950년대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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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건국전쟁’이 되살려 낸 현대사 핫 코너
암흑시대 아닌 창조적 전환기로 새로 봐야
박정희의 60·70년대에 못지않은 의미가 있어

조우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2-20 06:31:00

내내 찜찜한 대목이 있다. 요즘 흥행 중인 다큐 영화 ‘건국전쟁’을 때리는 일에 뛰어든 중앙일보 지면 말이다. 그중 고약했던 게 2월14일자 중앙선데이 편집국장대리 고정애의 칼럼 ‘건국전쟁이 말하지 않은 것’이다. ‘건국전쟁’은 “취사선택한 사실의 나열”에 불과하며, 그런 과정에서 이승만의 공은 키우고 과는 축소했다는 얘기다. 좋다. 그거야 상투적 지적에 불과하다.

정말 께름한 건 1950년대 전면 부정이다. 당시 현장 기자였던 조용중의 입을 빌어 1950년대는 “이승만 12년 왕조”라고 했고 “이승만 독재를 지탱하기 위한 격동의 연속”이라고 칼럼은 주장했다. 물론 그런 증언은 1950년대를 살았던 이들의 느낌을 일부 반영한다.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른바 전후(戰後) 문학이 증언하는 사회상도 대부분 그쪽이다.

대표적으로 손창섭이 1953년 발표한 단편소설 ‘비 오는 날’이 보여 준 무섭도록 침울한 세계를 우린 잊을 수 없다. 절망과 무기력 그리고 가난의 땟국물은 다시 들여다 봐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다. 1959년 발표된 이범선의 단편소설 ‘오발탄’도 그러했다. 그 작품은 4·19 직후 감독 유현목에 의해 이른바 사회 고발 영화로 개봉돼 지금도 좌파가 열광하는 작품 목록 1위다.

그 이전인 1954년 소설가 정비석은 서울신문에 ‘자유부인’을 연재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당시 한국인은 춤바람에 탈선 등으로 정신 못 차렸던 게 작품의 배경이다. 그래저래 1950년대는 뒤숭숭했던 게 사실이다. 단 문학 작품이나 동시대인들의 기억엔 한계가 있다. 시야를 가리는 역사의 먼지 때문이다. 때문에 전체에 대한 통찰이 결여되기 마련이다.

그런 한계를 뛰어넘은 빼어난 학술 논문이 있다. 유영익 전 연세대 교수가 쓴 ‘거시적으로 본 1950년대의 역사-남한의 변화를 중심으로’가 그것이다. 논문은 악마적 좌파 논리를 부수기 위해 출간됐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전2권)에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원한다면 어렵지 않게 읽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 타계한 국사학의 대가인 유 교수가 썼다는 게 포인트다.

유 교수는 20년 전부터 학계에서 불었던 이승만 연구 붐을 주도한 분이다. 그래서 태두(泰斗)다. ‘이승만 연구’ ‘젊은 날의 이승만’ 등은 정말 명저 중의 명저다. 그의 통찰에 따르면 1950년대는 “창조적 변혁의 전환기”다. 이 말에 밑줄을 쫙 그어 주시길 바란다. 실제로 그는 1950년대의 근본적 변화를 보지 못한 채 당시를 정체 혹은 퇴영기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못 박는다.

더 거시적으로 말할까? 1950년대는 19세기 실학자들과 개화파 개혁가들이 희구했던 개혁의 이상이 실현되기 시작한 분기점이었다는 말까지 그는 덧붙였다. 군주제를 벗어나 역사상 처음 공화제 민주주의 정치를 시도한 점부터 그러하다. 의회·정당·선거 등 민주주의의 기본 제도를 첫 실험한 점도 그러했고, 시장경제체계를 첫 도입해 이후 1960년대 고도성장의 계기를 만든 것도 모두 1950년대가 무대다.

우리는 외국 원조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나라로 꼽히지만 대외 부채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1960년대를 시작했다는 점도 잊으면 안 된다. 1950년대가 그만큼 소중했다는 뜻이다. ‘건국전쟁’이 강조하듯 위대한 농지개혁의 승리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유 교수가 내내 강조하는 게 교육 기적이다. 정말 6·25전쟁 전후 항간에 나돌았던 게 우골탑(牛骨塔) 얘기이고, 대학망국론이었다.

놀라운 역설은 그런 1950년대의 교육열이 이어지는 개발 시대를 떠받친 동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 점에서 “박정희의 기관차가 이승만의 레일 위를 힘차게 달렸다”는 ‘건국전쟁’의 자막은 레토릭도 좋았고 정곡을 찔렀다. 철학자 헤겔이 말했던 역사의 간지(奸智)란 게 이런 걸까? 전쟁을 포함해 그렇게 소란하고 어수선했던 1950년대 한복판에서 기막힌 창조적 변화가 움텄던 것이다. 그게 역사의 표층과 달랐던 심층에서 벌어진 구조적 변화다.

그렇다. 한국 현대사는 10년 단위로 바뀐다. 이승만의 1950년대를 거쳐 박정희의 1960~70년대 개발 시대, 전두환의 1980년대 산업화 완성의 시대가 모두 소중하다. 그럼 지금 2000년대는 뭘까? 앞 세대의 성공 방정식을 작살낸 암적 존재인 87년 체제의 더러운 유산일 뿐이다. 착각 마시라. 국민이 환호했던 직선제 개헌이라는 외양 뒤에서 운동권 세력이 득세했다.

그들이 청와대에서 언론·교육·사법부까지 속속들이 침투하면서 대한민국을 사실상 골병들게 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2000년대는 대한민국 체제 안에 운동권과 좌익이 스며든 사실상의 좌우합작 시대다. 고도성장도 멈췄으며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나라로 변했다. 그렇게 망가지던 나라가 최상의 문화상품 ‘건국전쟁’의 힘으로 부활하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그걸 감히 부정하려는 홍석현의 중앙일보 따위가 떠들어댄 1950년대론은 몽땅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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