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대표적인 친미국가 콜롬비아가 팔레스타인에 외교공관 개설을 추진한다. 이는 구스타보 페트로(64) 대통령이 1일 노동자의 날 기념행사에서 가자지구 사태를 들어 ‘이스라엘과의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한 이래 한층 구체화된 ‘반(反)이스라엘’ 행보다. 충격적인 소식에 미 국무부나 백악관에선 아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22일(현지시간) 루이스 힐베르토 무리요(57) 외교장관이 페트로 대통령으로부터 팔레스타인 라말라에 대사관 설치를 지시 받았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전날 임명된 무리요 외교장관은 “대통령의 직접적인 언급이 있었다”며 관련 절차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라말라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임시 행정수도로서 우리나라 대표사무소도 있다.
미국이 친이스라엘을 견지하는 한, 반이스라엘이란 반미의 다른 표현이기 십상이다. 하마스 기습에 이스라엘이 응전하며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자 볼리비아는 이스라엘과 이미 외교관계를 끊었고 칠레는 ‘대사 소환’으로 비판적 입장을 표명했으며 베네수엘라·니카라과 역시 팔레스타인을 두둔하고 나섰다.
심지어 콜롬비아는 작년 12월 ‘집단학살’ 혐의로 이스라엘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한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에 가담해 국제사회의 동참을 외치기까지 했다. 콜롬비아와 남아공이 각각 중남미와 아프리카 내 굳건한 친미국가인 것도 옛말이 돼 가고 있다. 이들 지역에 중국은 각별히 공을 들여 왔다.
한때 전 세계 지식‧종교계에 큰 영향을 준 해방신학의 태동지인 만큼 중남미의 전반적인 반미 성향이 새로울 것 없으나 콜롬비아의 외교 기조 변화를 예사롭게 보아 넘길 수 없다. 콜롬비아는 6‧25전쟁 당시 중남미 유일의 파병국이자 현재 대한민국 안보의 한 축인 유엔사의 일원이다. 서방 자유세계에 가까운 존재였다는 뜻이다.
작년 9월13일(현지시간) 미국의 세계적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즈’가 콜롬비아의 전략적 중요성을 무겁게 일깨운 바 있다. 중남미 전문가이자 싱크탱크 ‘인터-아메리칸 다이얼로그’(IAD) 회장 마이클 시프터는 ‘미국에게 왜 여전히 콜롬비아가 필요한가’ 제목의 글에서 이 지역 내 미국 영향력 감소와 중국의 세력 확장을 지적하며 조 바이든 정부를 향해 중남미 파트너십 강화를 촉구했다.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브라질의 최대 교역국 자리를 꿰찬 지 10년도 넘었다. 미국‧유럽연합(EU) 주도의 경제질서에 대항한 브릭스(BRICS) 회원이자 중남미 최대 인구국 브라질은 이젠 미국이 금기시해 온 중국 화웨이 통신장비의 적극적인 사용자가 되기 시작했다. 콜롬비아에선 가전제품 등 중국산 일상 소비재의 의존도를 압도적인 수준으로 키웠다.
일대일로에 호의적인 아르헨티나는 물론 베네수엘라‧쿠바 모두 대중(對中)관계가 돈독하다. 작년 5월 에콰도르-중국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됐고 우루과이-중국 FTA는 추진 중이다. 또한 대만의 전 세계 12개 수교국 중 하나인 파라과이가 언제까지 중국과 거리를 둘 지 알 수 없다.
2018년경부터 미‧중 갈등이 표면화하자 중국은 주요 투자처를 중남미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 지역에 풍부한 리튬 등 핵심 광물 자원을 위한 중국의 노력은 거의 필사적이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시진핑 국가 주석이 작년 1월 ‘제7차 라틴아메리카·카리브국가공동체’(CELAC)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이들을 “중국의 핵심 파트너”로 칭한 것은 결코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2016년 이후 중국의 미국 및 유럽 투자액은 종전 연 평균 500억 달러(약 67조 원)에서 150억 달러(약 20조 1200억 원)로 급감한 반면 중남미‧카리브해 지역 투자액은 최소 45억 달러(약 6조350억 원) 이상을 유지하며 증가 추세다. 2022년 들어 중남미 투자액이 약 70억~100억 달러(약 9조3863억~13조4090억 원)에 달했다. 84억 달러(약 11조 2619억 원)인 유럽과 47억 달러(6조3027억 원)에 그친 미국을 추월했다.
한편 작년 8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선 시 주석과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이 ‘중국-아프리카 국가지도자 대화’를 공동 주재했다. 이날 아프리카연합(AU)과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FOCAC) 아프리카 측 회원국들 대표가 대거 참석한 자리였다. 자유·인권·기후위기·성소수자 보호 등 정치적올바름(PC)에 충실한 ‘훈수’를 둘 뿐인 미국·서유럽과 달리, 중국은 아프리카에 과감히 투자하며 다양한 분야의 지원을 제공했다.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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