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여러 공화국, 특히 아테네에서는 일반적인 재판소는 무질서한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때로는 제멋대로 때로는 소란스러움과 당파심·파벌 근성이 향하는 대로 판결을 내렸다… 부당한 판결이라는 불명예도 그것이 500명·1000명 또는 1500명에게 나눠지면 한 개인에게 그다지 무겁게 다가오지 않는 법이다.”
“이에 반해 로마에서는 중요한 재판소는 단 한 사람 또는 소수의 재판관으로 구성되었고 특히 그 심리 과정이 언제나 공개되었으므로 성급한 판결이나 부당한 판결을 내리면 재판관의 평판은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법정은 의심스러운 안건의 경우에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자연히 같은 재판소나 다른 재판소 재판관들의 판례나 선례를 방패막이로 삼았다.” (애덤 스미스 ‘국부론’ 제5편 제1장)
일찍이 폴리비오스 등 고대 학자들과 근대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모두 로마인의 시민적 덕성이 그리스인보다 뛰어났다는 점을 역설했다. 근대 계몽주의 사상을 완성한 애덤 스미스는 그 원인으로 고대 그리스보다 로마의 사법제도가 더 뛰어났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스는 군중 재판식의 사법제도를 운영했다. 각 부족에서 파견한 수백 명의 시민으로 재판관을 구성하였기에 재판은 당파심과 시기심·군중 선동으로 진행되었고 바로 이런 재판을 거쳐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이에 반해 로마는 전문 재판관 제도를 채택했다. 전문 재판관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선배 재판관들의 선례를 공부해 법체계와 판례에 관한 지식을 축적했고 공정한 재판을 진행할 수 있었다.
법은 도덕의 최소 규범이다. 따라서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를 공정하게 판별해 주는 사법제도는 시민적 덕성을 키우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근대 계몽주의 정치사상가들은 로마 공화정의 바로 이런 점에 주목했다. 신분에서 해방된 평등한 시민이 만든 자유주의 공화국의 경우 누리는 자유에 대해 책임을 지는 시민적 덕성이 중요하다. 근대 공화국은 모두 전문 법관제에 의한 독립된 사법부를 두는 헌법을 채택했다.
근대 공화주의의 주요 원리로는 헌정주의·법의 지배·권력분립 원리를 들 수 있다. 헌정주의 원리란 ‘공동체 인민들이 동의한 최고 규범(헌법)에 의해 임기가 제한된 공직을 복수의 정치세력이 경쟁적으로 차지하는 원리’라고 할 수 있다.
헌정주의는 특정 정치세력이나 그 수장인 특정인이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해서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자는 원리다. 또 권력분립의 원리는 다수의 국가기관이 서로 견제하도록 해서 ‘법의 지배’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자는 것이다.
근대 공화주의의 세 가지 원리는 모두 ‘법의 지배’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원리를 말한다. ‘법의 지배’는 근대 이전 인류 역사에 계속되어 온 사람에 의한 지배, 즉 신분 권력 집단의 자의적 지배를 막아 인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원리다.
“새 특검 법안은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특검 후보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이 중 1명을 임명하도록 했다. 수사 인력 100여 명을 투입해 최장 6개월 동안 수사하도록 해 통상적인 특검보다 기간을 늘렸다. 현행 한국 사법 체계에 어긋나는 조항도 담겼다. 압수수색·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영장 전담법관을 따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하고 재판도 전담 재판부가 집중 심리하게 한 것이다.” (조선일보·2024.6.1.)
문재인 정권 때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낸 민주당 이성윤 의원이 발의한 특검법 내용의 일부다. 중립적인 변호사협회에서 특검 후보자를 추천받지 않고 자기 당과 우호 정당만이 특검 후보자를 추천하도록 하는 자의적이고 불공정한 법안이다.
특히 입법부의 다수당이 영장 전담법관과 재판부를 따로 지정하겠다는 것은 근대 공화주의의 근간인 권력분립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반(反)헌법적인 전체주의 법안이다. 의회 다수파가 헌정주의나 권력분립 원리도 무시하고 군중 재판을 기도하여 근대 공화국의 법치를 파괴하겠다는 것이다.
법치가 파괴되면 이 나라는 특정 정치세력이나 그 수장이 국민 위에 군림하여 자의적으로 통치하는 전체주의 나라가 된다. ‘법의 지배’ 원리가 부정되면 민주공화국은 없어진다.
국회가 이런 법안을 통과시키면 대통령은 헌법 수호자로서 즉각 국회에 재의요구를 해야 한다. 또 다른 헌법 수호 기관인 헌법재판소는 심판청구가 오면 이런 반(反)헌법적 특검법을 즉각 위헌 심판해야 한다. 나아가 정부는 특정 정당이 이런 반헌법적 행위를 계속하면 헌법 제8조 제4항에 의해 위헌 정당 해산을 제소하고 헌재는 즉시 해산을 심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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