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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명소산책] 달랑베르의 열정과 아카데미프랑세즈
17세기부터 오늘까지 이어지는 프랑스 문화 예술 과학의 보고
센 강의 예술 다리와 어우러진 웅장하고 기품 있는 역사 유적지
최인숙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9-26 11:35:22
 
▲ 최인숙 문화칼럼니스트·정치학박사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1635년 리슐리외 추기경이 설립해 루이 14세·나폴레옹 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시대가 바뀌고 사상이 급진전해 갔지만 이 기관은 프랑스어와 문학 전반의 심층적이고 비교적인 문화, 그리고 수학과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도덕 및 정치 과학까지 아울러 발전시키며 드높은 명성을 쌓아갔다.
 
이 과정에는 많은 프랑스인의 헌신과 공헌이 있었다. 계몽주의 시대 퐁트넬·모페르튀이·뷔퐁·콩도르세 등이 이곳을 빛냈다. 하지만 누구보다 더 뛰어난 역할을 한 사람은 달랑베르다.
 
출생과 사회적 지위가 매우 중요했던 프랑스 아카데미 세계에서 이 철학자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그는 사생아였다. 이 처지를 달랑베르 자신은 몹시 슬퍼했다. 자신은 아버지도 없고 지원자도 없고 재산도 없는 존재로 남들과 다르다고 느꼈고 사회에서 배제됐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출세를 위해서는 자신의 재능에 의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는 한시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사 언제나 그러하듯 재능과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운이 따라줘야 한다. 달랑베르 역시 그러했다. 프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초대원장 모페르튀이는 그의 탁월한 재능에 깊은 감명을 받고 달랑베르를 사교계에 소개하는 데 앞장섰고 조프랭 부인과 데팡(Deffand) 후작 부인이 운영하는 명문 살롱에 눈뜨게 했다.
 
▲ 파리 6구에 있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본부. 위키피디아
 
특히 데팡 부인은 살롱을 자주 드나드는 달랑베르에게 큰 호감을 가졌고 그에게 모성애를 주었다. 그리고 달랑베르가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관습과 규범을 가르쳤다. 그는 살롱에서 젊고 유쾌함, 모방과 풍자적 재능을 맘껏 발휘했다. 데팡 부인의 살롱에 모인 손님들은 그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이 쾌활한 외관 뒤에는 자신이 사생아라는 불행한 영혼의 그림자가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훗날 이 그림자는 그를 그늘지고 오만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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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달랑베르는 스물 네 살 약관에 프랑스 아카데미 천문학 부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서른 일곱 살에는 데팡 부인의 도움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됐다. 이는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달랑베르는 당선되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거듭났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말 그대로 소생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연인에게 버림받아 여성과의 관계가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달랑베르에게 아카데미는 하나의 돌파구였다.
 
또한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그에게 모든 아카데미 중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곳이었다. 리슐리외가 정관에 명시한 원칙, 즉 모든 회원의 평등이 그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 원칙은 사생아인 그에게 자신의 공로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때부터 그는 아카데미에 전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헌신했다.
 
▲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있는 마자랭 도서관. 위키피디아
 
사실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달랑베르가 당선됐을 때 쇠락해가고 있었다. 명성도 생각만큼 높지 않았다. 신봉자들과 위인들은 많았지만 철학자들은 고립돼 있었다. 몽테스키외·볼테르·뷔퐁, 그리고 국왕비서관 뒤클로의 고군분투가 있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림(Grimm)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요약했다. “이 40명의 위원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읽지 않거나 너무 평범한 글을 읽어 대중이 이 집회에서 지루해 죽습니다. 마침내 올해에는 왕관을 씌우거나 읽을 연극이 없었고 아카데미는 문을 닫은 채로 남아있었지요. 이 시기는 거의 인정받지 못했어요. (...) 달랑베르는 아카데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투쟁에 앞장섰어요. 그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지요. 공개 세션에서 자신이 낭독을 하겠다고 제안해 곧 명성을 되찾았지요.”
 
그의 당선 4년째 되던 해인 1760년, 달랑베르는 아카데미에서 낭독의 거의 절반을 담당했다. 이는 청중을 매료시켰다. 독설을 퍼부은 극작가 라 아르프(La Harpe)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를 칭찬했다. 달랑베르는 이 세션을 철학자들의 사상을 전파하는 플랫폼으로 활용했다. 그의 연설의 생동감·힘찬 신념은 여론을 환기시켰고 그가 속한 철학 파트가 아카데미의 활력소라는 확신을 가지게 했다. 유배된 볼테르가 부재한 상황에서 아카데미의 이미지를 복원시킨 사람은 달랑베르였던 것이다.
 
그는 또한 장부를 직접 보관하고, 모든 회의록을 작성하고, 그가 수집한 증빙서류를 개발하고 보완해 장부를 걸작으로 만들었다. 이전에 어떤 영구 비서관도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모든 것을 책임지고 통제하기를 원했다. 게다가 사무총장을 영구직으로 임명하던 것을 매년 1분기씩 맡도록 하는 변화를 꾀했다.
 
이런 시작 덕분이었을까? 오랫동안 여성의 가입을 금기시 했던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여성회원을 멤버로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1980년 역사학자 피에르 가소트는 “여성을 선출하면 결국 흑인을 선출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로 비아냥거렸다. 이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그해 이 기관은 여류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를 맴버로 선출했다. 그로부터 3년 후 흑인 레오폴 상고르를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프랑스 최고의 상징인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현재 파리 6구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1688년 지어진 콩티 궁전으로 원래 카트르 나시옹 콜레주가 있었다. 센 강의 아름다운 풍경과 예술 다리가 어우러진 돔 양식의 이 건물은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웅장한 기품을 내뿜고 있다. 아카데미의 본거지인 이곳에는 꼭 들러봐야 할 2개의 명물이 있다. 하나는 앵스티튀 드 프랑스 도서관이고, 다른 하나는 마자랭 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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