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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사기, 반역의 메달
김대중의 노벨상 프로젝트 [7] 국정원 들어온 김한정에… 이종찬 특별 배려
‘기획력이 뛰어나다’는 김한정의 DJ 띄우기 전략
‘햇볕정책’ 누구를 위한 것인가… 회의와 번민이 분노로
김기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0-11 00:03:05
 
 
[편집자 주]
2000년 12월10일,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 게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탄두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김대중이 전 세계를 상대로 어떻게 가짜 평화를 만들어 노벨상 사기극을 벌였는지, 어떻게 노벨평화상과 핵무기를 뒷거래했는지… 양심 증언으로 미국에서 정치적 망명을 허락받은 유일한 한국인 김기삼 변호사와 한반도 전문 국제 저널리스트 도널드 커크가 밝히는 아찔하고도 끔찍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 김기삼 전 국정원 내부고발자
▲ 도널드 커크(Donald Kirk) 국제 저널리스트
 
 
 
 
기획력 뛰어나다는 평을 받은 김한정
 
김한정은 1992년 대선 패배 후 뉴저지 주립대 럿거스(Rutgers)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7년 12월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는 다시 DJ와 함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서둘러 귀국했다. 하지만 1998년 초 그가 다시 동교동을 찾았을 때는 그사이 새로 영입된 두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가 파고들 공간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선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는 1998년 5월 국가정보원에 자리를 잡았다. 학창 시절 좌파 활동을 했던 사람의 선택이라기엔 다소 의외의 행보였다. 그는 국정원에 입사하자마자 이종찬 원장으로부터 특별한 배려를 받았다. 아파트 전세금조차 없는 그에게 이종찬은 특별히 국정원 안가 아파트에서 살 수 있도록 특혜를 베푼 것이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매우 똑똑하고 기획력이 뛰어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할 때는 성질이 아주 급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한다.
 
국정원에서의 DJ 띄우기 전략
 
김한정은 국정원에 1년여 근무하면서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한 여러 특수 비밀 임무를 수행했다. 국정원 시절 그의 관심사 중 하나는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을 분단시킨 비무장지대에서 세계적인 가수들이 공연하는 ‘평화 콘서트’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또한 1997∼98년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를 휩쓴 금융위기 속에서 DJ의 햇볕정책을 홍보하는 책자와 팸플릿을 발간하는 등 DJ를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가이자 위대한 정치가로 세우는 데 집중했다.
 
그는 DJ를 띄울 목적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가적 영웅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의 서울 방문을 위해 한동안 줄기차게 노력했지만 만델라가 너무 많은 초청비를 요구하는 바람에 불발로 그치기도 했다.
 
아태민주지도자회의에서의 기초 작업들
 
1999년 5월 말, 국정원에서 물러난 김한정은 아태민주지도자회의(FDL-AP)의 사무부총장이 되어 김대중의 노벨상 공작에 더욱 매진했다.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때가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기간”이었다고 말했다. 이 무렵 김한정은 DJ의 노벨상 수상을 위한 기초 작업으로 DJ의 목에 필라델피아 자유의 메달을 걸어 주는 데 성공했고, 동티모르와의 관계도 교묘하게 활용했다. 그는 동티모르를 여러 차례 방문하여 그 작은 신생국가의 지도자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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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6월14일 ‘6.15 남북공동선언의 의미와 과제’를 주제로 열린 김대중 포럼 토론회에 김한정(앞줄 왼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1999년 12월13일, 김한정은 청와대 제1부속실장으로 발탁되면서 문고리 권력이 된다. 그의 나이 36세 때의 일이다. 그가 일반 대중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터라 그의 부속실장 임명은 많은 사람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이희호 여사는 김한정을 가리켜 ‘배앓이 없이 낳은 아들’이라고 했다. 김한정의 부인 박정희를 며느리로 여긴다고도 했다. 김대중은 김한정을 무슨 일이든 맡길 수 있는 ‘유능한 젊은이’로 여겼다.
 
김한정과 DJ의 오랜 인연… ‘나의 멘토 김대중’
 
하지만 국정원에서 반년가량 칸막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이 일했던 김기삼 씨의 눈에 김한정은 아주 위험한 인물로 비쳤다. 김기삼 씨는 김한정이 국정원을 떠난 후에도 그의 활동을 지켜보았다. “김한정은 김대중의 그림자, 혹은 분신이 되기를 열망했다”고 김기삼 씨는 회고했다. “그는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았고, 일한 흔적을 남기지 않는 완벽주의자였다.”
 
김한정의 청와대 근무는 김대중과의 오랜 인연의 정점을 찍은 것이었다. 그는 1992년 대선 전 공보비서관으로 4년, 1998~99년 국정원에서 1년여, 2000~2002년 청와대에서 2년여, 그리고 퇴임 후 DJ의 비서관으로 2년여 등 도합 10년여간을 김대중의 그림자가 되어 따라다녔다. 분신이나 다름없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김한정은 자신의 저서 제목을 ‘나의 멘토 김대중’이라고 지었다. “그가 부속실장으로 일할 때 청와대에 출입하는 기자들조차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랐을 정도로 철저히 숨어서 일했다. 그저 몇 사람만 짐작 정도 했을 뿐이다”고 김기삼 씨는 회고했다.
 
비밀공작의 핵심 조직인 대외협력보좌관실
 
국정원의 대외협력보좌관실은 DJ의 햇볕정책을 외신에 홍보하는 또 다른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다. NP프로젝트 팀원들은 ‘홍보 전사’로서 외신 특파원들의 호의적인 여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움직였다. 외신 기자들을 초청해 오찬 모임을 갖고 만찬을 대접하는 일도 그중의 하나였다. 외신 기자들이 우호적인 기사를 쓰도록 브리핑해 주고 정서적으로 DJ를 지지하도록 유도했다.
 
“외신 조율은 우리의 기본 업무였다. 가능한 한 극적인 사건을 많이 만들어서 외신이 계속 DJ 관련 뉴스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고 김기삼 씨는 회상했다.
 
대외협력보좌관실 외신 담당관이었던 김기삼 씨의 업무는 외국 언론을 상대로 DJ의 노벨상 수상을 위한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국정원 외신 대변인을 도와 외신 보도를 모니터링하고 외신 브리핑을 주선하는 등의 업무를 맡았다.
 
당시 외신 담당 대변인은 김영준이었다. 그는 런던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막 귀국한 인재였는데, 1998년 8월 같이 학회 활동을 하던 라종일 차장의 간곡한 요청을 받고 비밀팀에 합류했다. 그는 주한 외신 기자들에 대한 국정원의 모든 정책을 관장하고 조율하는 업무를 맡았다. 나종일에게 매일 외신의 주요 기사를 브리핑하는 것도 그의 일상 업무였다. 또한 외신 기자들에게 북한 관련 정보와 영상을 제공하거나 황장엽 같은 고위 탈북자와의 인터뷰를 주선해 주는 것도 그의 업무의 하나였다.
 
햇볕정책은 노벨상 사냥의 도구
 
김기삼 씨는 국정원에서 김한정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한 동료였지만 김한정이 노벨상 사냥을 위해 무엇을 하는지 어깨 너머로 지켜보았을 뿐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는 김한정이 비밀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DJ의 노벨평화상 수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햇볕정책이 노벨상을 위한 수단이며, DJ가 그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국익을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젊은 국정원 요원의 마음속에는 불안한 의문이 싹트기 시작했다. 노벨상이 국제적 명성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과연 그렇게 막대한 자원과 시간·인력을 투입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문제는 ‘햇볕정책’이 우리의 혈육인 북한 주민의 절망적인 삶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북한의 독재자가 지배력과 통제력을 강화해 주민의 고통을 연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하는 게 문제였다.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지역과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된 것이었다. 김기삼 씨의 회의와 번민은 차츰 분노로 바뀌어 갔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 )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 서울대 법대 졸업
△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 국가정보원 8년 근무
△ 2003년 미국 망명
△ 2011년 망명 확정
△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도널드 커크 Donald Kirk
 
△ 미 프린스턴 대학 졸업
△ 197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시카고 트리뷴지(Chicago Tribune)·프랑스 파리의 IHT(International Herald Tribune)지를 비롯해 50년간 한반도 문제 전문 최고령 현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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