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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정우진칼럼] 공급망 전쟁 최전선에서 자유와 독립을 생각하다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1-12 18:46:40
 
▲ 정우진 자유와책임 대표
‘공급망(Supply Chain)’은 최근 들어 유명해진 단어다. 특히 국제정세에 대해 즐겨 논평하는 이들은 공급망이 단순한 개념어가 아니라, 실재로서 우리의 삶에 미치는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강조하고 나섰다. 공급망은 왜 중요할까? 한반도 남쪽의 한 취약 국가로 출발한 자유민주 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주요 행위자들은 공급망을 어떻게 바라보고 관리해 가야 할까?
 
공급망과 기업
 
공급망은 원자재에서 최종 상품의 소비자 도달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필요한 자원의 안정적인 확보를 가능하게 해주는 예측 가능하거나 약속된 조달 네트워크이다. 공급망이 안정화되면, 기업은 원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 및 제공함에 있어 시장에서 통용되는 가격에 기반하여 일관적이고 예측 가능한 조달 계획을 현실화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 활동의 성패는 안정적인 공급망의 확보 및 관리 역량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흔히 ‘기업’하고 생각할 때 유명한 대형 기업의 사옥을 으레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정말 본질적인 차원에서의 기업이란 자유로운 개인들이 각기 옳다고 판단하거나 필요하다고 믿는 것, 즉 특정한 정신 또는 비전을 바탕에 두고, 주어진 자본과 노동, 기술을 활용하여 그 정신을 확장해 내는 재화 또는 서비스를 생산해 냄으로써 주변에 변화를 불러일으켜, 유관 행위자들로 하여금 이전보다 더 그들의 필요를 충족하는 삶, 혹은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개체를 의미한다.
 
이 개체는 보통 특정 정신 또는 비전에 감화된 소수의 인원이 자발적으로 구성하며, 계획의 실현 여부에 따라 파산하기도, 확대되기도 한다. 만약 파산하지 않고 지속해서 가치를 창출해 가는 역량을 축적하고 실적으로 증명하는 경우, 해야 할 일이 늘고 또 더 많은 이들이 그 상품 또는 서비스를 원하게 될(수요의 상승) 것이므로, 종국에는 다수의 인원으로 확장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기업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 그 누구도 참여를 강제하지 않고 오히려 특정 정신이나 방향에 동의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결사하거나 지원하여 활동한다는 차원에서, 그 본질 자체에 자유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영어로 기업을 주로 표현하는 단어인 ‘Company’는 본질적 의미를 잘 드러낸다. 불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 영단어인 이 ‘Company’는 ‘Companionship(동료애)’이라는 단어와도 유관하고, 소규모의 군인 부대를 의미하는 ‘중대’를 지칭하는 경우에도 사용되며, 명사로써는 ‘동행’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한 비전을 위해 일하기로 마음먹은 자유인, 또는 자유인들의 모임이 바로 기업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기업, 친기업’하는 이야기들은 사실 다소간 어폐가 있다. 모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개체가 기업인 것이며, 일자리는 비전에 기반하여 가치를 창출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실제 노동을 하는 현장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엄밀히 보면 ‘반기업’ 정서라는 것 자체가 자승자박에 가깝다. 우리 모두 종국에는 기업에 소속되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 속에서 우리가 면밀히 감시해야 할 것은 근로 현장 내의 부패행위, 즉 계약 위반 행위이어야 하며, 이를 법질서로 규율하는 것에 강력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계급적 세계관은 우리의 시야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강자와 약자 등의 일차원적인 프레임 안에 가둬 놓아 눈을 흐리게 하지만, 자유인의 시민사회를 살아가는 생활인들은 이 함정에서 넉넉하게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지배계급의 논리를 옹호한다’라며 공격하는 일부의 선동에서 벗어나, 자생적 질서 속에서 창의를 바탕으로 발현되는 기업이 우리 사회의 근간임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 안에서의 불의한 행위를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법치의 정신을 체화해야 한다. 물론 불의한 행위에 대한 정의도 특정 부류가 장악하게 두어선 안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하고자 하는 일을 강력하게 추진하여 변화를 만들어보겠다고 나서는 정신을 우리는 기업가정신으로 일컫고, 이를 숭상하고 구현하는 자유인의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런데, 기업가정신만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이뤄낼 수는 없다. “정신일도 하사불성!”하고 외칠 수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무한하게 가장 좋은 재료‧땅‧인원 등을 손에 쥐고 일을 시작하면 좋겠지만, 하나님은 세상을 그렇게 창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묘막측한 하나님은 인류에게 그 필요한 자원을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이성과 체력을 허용하여, 도전하고 번영하는 삶을 살도록 장려하였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가 옳다고 믿는 일들을 행하기 위한 열정에 가득 찬 ‘기업가’들은 어떻게 하면 가진 자본‧노동‧기술 등을 적절히 활용하여 지속 가능하게 그 비전을 이뤄갈지를 고민하기 마련일 것이다. 흔히 ‘전략 기획’으로 정의되는 그 고민과 사유의 과정을 통해 기업가들은 가장 경제적으로 계획을 실천할 방법을 강구한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주어진 것들을 최대한 아끼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실현하고 판매하는 것이다. 이것을 ‘원가 절감’으로 매우 거칠게 정의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가장 품질이 좋은 것들을 위주로 조달하고 싶을 테니, 생산을 위한 어떤 자원을 어디서 조달할지는 기업가의 우선순위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공급망의 중요성이 자연스럽게 대두되는 것은 상식임을 독자들은 어느 정도 간파하실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슬과도 같은 네트워크를 형성해 가면서 기업가들은 최적의 선택을 통해 그들의 비전을 이루고 가치를 창출한다.
 
중국이라는 왜곡의 발생
 
원가를 절감하여 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값싼 재료의 구매만큼 구미가 당기는 선택지는 없을 것이니, 이런 경향성은 비난할 것은 아니며 오히려 장려되는 측면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의 원가 절감을 하는가’이다. 원가 절감을 추진하면서 기업의 경쟁력 향상 요소(R&D 투자비‧장비 내재화 투자비 등)를 되려 약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저가의 매력에 빠진 나머지 특정 국가에 대한 공급 의존도가 높아지는데도 경각심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등의 전략적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값싼 재료를 제공하는 이들이 공정하게 시장 내에서 그것을 구현해 내려면 보통 ‘규모의 경제’가 전제되어야 하고, 이러한 규모가 형성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를 단기간에 실현해 내면서 세계 시장의 공급자로 자처하고 나선 이들이 있으니, 다름 아닌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 자본이 관여된 기업들이다.
 
이들은 강력한 공권력의 개입 아래 어떤 산업을 맡아서 공급을 장악할지를 고도로 숙련되고 시장 경제체제에 익숙한 기술관료들을 통해 식별해 내고 혁신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적극적인 팽창에 나섰다. ‘중국 제조2025’로 정의되는 이 캠페인을 통해 정부가 특정 산업군의 공공자본이 관여된 기업에 대해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지급하는가 하면, 중국에 위치한 해외 기업에 대해서는 기술 이전을 종용하고 나섰다.
 
자유세계시장의 공개된 정보에 대한 수월한 접근성과 시장 개방, 경제 교류를 통해 중국의 자유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던 많은 이들의 착각으로 인하여, 중국은 변함없는 공산혁명의 꿈을 안고 자유시장을 마음껏 누볐다. 중국 제조2025가 선정한10개의 우선순위 산업에는 정보기술(IT)‧로봇‧항공우주‧해양‧신에너지‧바이오 등 산업들이 포함되었고, 이 영역을 중심으로 경쟁국의 기업들이 활약하고 있던 영역을 저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서서히 잠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과잉 생산은 중국 경제의 체질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고, 중국 기업들은 그 부작용으로 인해 잉여 제품을 해외에 내다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서방 국가에서 반발하자, 이제는 외국인직접투자를 통해 해당 국가에 직접 제조시설을 지음으로써 신산업 육성과 보호를 위해 제공하는 보조금 수혜를 노릴 참이다. 잘 알려진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얼마 전 유럽에서 뒤따른 탄소중립산업법(NZIA)에서 제공하는 제조 원가의 40~50%에 육박하는 막대한 보조금이 중국 기업에 돌아갈 상황이다.
 
이러한 흐름이 이어지자 선진 제조 국가의 기치 아래 달려온 대한민국의 기업들, 보다 더 구체적으로는 한국 기업을 구성하고 있던 대다수의 개인이 그 타격을 크게 맞게 되었다.
 
최전선에서의 고민
 
필자는 배터리‧전기차‧신재생에너지 등으로 종종 대표되는 ‘미래 먹거리’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 영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특히 지대하다. A사가 생산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기 위한 업스트림(Upstream‧공급망의 원천 부분) 원자재류 조달에 있어 대중국 의존도는 약 85%에서 97%에 달한다.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이들이 공급을 중단하면 우리 기업은 생산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자유인의 시장경제에서 기본적으로 불공정 경쟁 또는 시장 교란 행위는 지향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 경제적 편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행위자들의 교란 행위는 빈번하게 일어나며, 보통 그 뒤에는 주요한 동기 또는 목표가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한 차원에서 국가는 구제 수단(Remedy)을 통해 공정한 경쟁을 장려한다. 그 수단으로써 가장 효과가 좋다고 여겨져 인기가 많은 것이 바로 관세이다.
 
 
많은 이들이 ‘관세’하면 공격적인 보호무역 조치로 이해하곤 하지만 관세는 세수 확보‧수입 제한‧상호 조치‧무역 구조 재편 등의 복합적 동기로 추진된다. 근본적으로는 불공정 행위에 대한 구제 수단으로써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지,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특정 국가가 밉거나 견제를 하겠다는 단순한 목표만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경우는 없다. 관세율은 수입량을 철저히 수치로 분석하여 계산에 의거해서 정해지는 것으로, 데이터에 기반한다. 최근 이슈화 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보편 관세10% 와 같은 주장은 정치적 슬로건으로써 의미가 있는 것이지, 실무를 관장하는 이들은 숫자를 기반으로 조치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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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관세 제도가 지니는 나름의 행정적 자율성이 대전략적 동기와 적절히 결합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예컨대 A국과 B국이 유사한 방식의 시장 교란 행위로 C국을 괴롭혔는데도 불구하고, 보편 가치를 공유하는 A국에 대해서는 C국이 유연한 조치를 취해주곤 한다는 것이다(왼쪽의 세계관에 익숙하게 되어버린 나머지 우리는 인과관계를 상당히 단순화하여 현상을 해석하는 습성을 지니게 되었지만, 사실 세상일이라는 것은 그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는 데 있어 매우 복합적이다. 독립 변수는 언제나 복수로 존재하고, 그 변수 간에도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하나의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원인이 혼재한다는 이치를 마음속에 지니지 않으면 우리의 지적 태만함은 우리를 선동에 매우 취약한 개인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다시 표현하면,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 결정은 한 편으로는 실제로 중국 정부가 보이는 불공정한 덤핑(상품을 자국 내 판가보다 낮추어 수출국에 대량으로 공급하는 행위)에 대한 자위적 차원의 조치이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글로벌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입장에서의 정치적 판단도 가미된 복합적 조치이다.
 
관세가 부과되면 물가가 오르게 된다. 물건을 생산하여 수출하려는 데에 더 많은 비용이 강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세는 기본적으로 소비자들에게는 썩 매력적인 조치가 아닐 수 있으며, 맞춤형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가 해를 입는 경우도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이를 이유로 관세 부과 자체의 실효성은 낮음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금의 국제정세는 지난30년과 비교했을 때 경제와 정치 변수가 다각도로 더욱 영향을 미치는 대혼란의 시대다. 다수의 선거 결과에서 나타나듯 경제에 정치가 개입하는 것에 대해 국민이 이전보다 더 너그럽다. 개입을 통해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법과 절차에 따라 이를 행하라는 것이다. 트럼프에 대한 확고부동한 유권자들의 지지는 과도한 PC(정치적 올바름)주의로 무너져가는 미국의 보편가치에 대한 수호에의 갈망과 더불어 관세를 동원해서라도 불공평한 경쟁으로부터 그들을 지켜달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이에 호응하는 트럼프가 추진하려는 대중 관세는 일종의 ‘피구세’(Pigouvian Tax)로, 소비자가 비용을 분담하나 중장기적 차원에서는 공급망 다변화에 기여함으로써 경제적 부를 찾아오려는 목적이 강하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자유무역질서는 자유시장경제를 향유하는 이들이 누리는 혜택이라는 점이다. 계약 이행의 정신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이 국제질서는 룰에 따라 플레이하지 않을 이들에게는 문을 닫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무임승차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원자재 공급망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중국 기업의 불공정 행위는 중국 공산당 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깜깜이 공급망’ 내의 불투명한 지원으로 가능했다. ‘그간 한국 기업들은 무엇을 했길래 경쟁이 안 되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자체적인 노력은 언제나 기해왔음에도 강제 노동을 활용한 저가 원자재의 지속적인 공급이 가능한 이들, 중국 내 다른 기업들이 피해를 보더라도 기술개발에 천문학적 자본을 재조정하여 투자할 수 있는 이들, 공산주의 이념에 투철한 정치권력에서 기인하는 수직적 의사결정이 중심이 되는 전통적, 비전통적 의사결정 및 조달 제도가 뒷받침하는 이들과의 경쟁은 결코 쉽지 않다.
 
비교적 신산업으로 분류되는 이쪽 영역에 대한 학습과 고민이 사업 대상국의 정치권에서 부재한 것도 장애 요소다. 최근 들어 필자도 관여한 바 있듯, 그나마 다각적인 기업들의 민간 외교와 대외적 노력으로 인해A사가 투자하는 미국이나EU 등의 정치권에서 대전략적 차원의 고민을 통해 업계 기업들이 입는 피해를 어떻게 완화할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긴 하였지만, 갈 길이 멀다. 미국이나EU에 비하여 우리 정치권 주류의 위협 인식을 묻는다면? 거의 부재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통탄할 일이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 중국전략경쟁특위가 법무부에 ‘무역 범죄’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할 것을 초당적으로 요청하여 중국 기업의 동남아 우회 수출을 방지하도록 하는가 하면, 소비자들이 중국의 강제노동과 유관한 원자재를 활용한 제품을 거부하는 일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공급망이 추적 가능한(Traceable) 수준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다 보니, 기업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공급망 실사 요구에 응하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규제는 생산성을 약화시킬 수 있지만 (공장에서 일을 하는 직원이 라인 가동이나, 판매 계획에 시간을 쏟지 못하고 원자재의 수급처나 판매 정보 종합 등 지나간 데이터를 가공하는 데에 더 시간을 쏟아야 한다) 많은 기업은 그러한 컴플라이언스 업무에 동참하고 있다.
 
일찌감치 중국 공산당의 위험성을 포착한 미국 의회는 선두에 나서서 문제의식 확장에 나서고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중국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을 지낸 마이크 갤러거 전 하원의원을 입국금지 시키기도 했다. 이에 중국 견제에 미온적이었던 민주당 정부도 못 이기는 척 움직이고는 있다.
 
민주당 정부는 애매하게 친환경이나 신산업에서는 중국과 보조를 맞춰도 좋다는 안일한 태도를 계속 유지해 왔던 경로에서 완전하게 이탈하지 못했다. 2023년에만23조 원을 투자해 최대 투자국이 된 한국의 기업들은 원자재 조달의 탈중국화를 추진하면서 공화당 정부의 정책 리스크에 대응할 준비에 한창이다.
 
중국은 공산당의 지배 아래, 정부와 은행의 지원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신산업 영역에서의 성취는 후방산업에 대한 선행 투자와 인프라 투자의 결과이기도 하다. 국영은행은 대출을 저금리로, 지방정부는 산업용 부지를 헐값에 임대해주었다. 상술하였듯 지적재산권 탈취나 강제노동은 긴 시간 동안 이어져 오던 관습과도 같았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다 보니 서방 국가도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미국 정부의 산업 육성 정책이나 관세 도입 등이 마치 중국은 세계 시장에서 실력으로 공정하게 그들이 할 걸 잘 해온 상황인데 미국이 파괴적인 보호무역을 먼저 추진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사실의 호도에 가깝다.
 
동남아 현지 공장 실사 시 공장장은 필자에게 “중국 기업은 압도적 자본과 저비용 인력의 힘으로 불과 2주 안에 Q국에서 W국으로 시설 이전이 가능하고, 2주 뒤에는 생산도 할 수 있다”면서 무너져가는 현장의 현실을 알려주기도 했다. 중국 기업은 다른 방식으로 플레이 중인지 오래다.
 
중국과의 우호적인 관계에 희망을 지니는 이들은 ‘중국 기업도 국제시장에서 행위하는 개체들인데, 막무가내로 공급을 통제하고 나아가서는 다른 나라들과의 경제협력 자체가 위태로울 지경까지는 끌고 가지 않을 것이 아닌가?’ 하며 중국 자본의 유용성을 옹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DNA는 우리와 다르다.
 
우선 원자재 공급에 대해, 이들은 투명한 정보 공개를 꺼린다. 공급망 실사 협조 요청에도 적시에 응하지 않음으로써 우리의 통관 절차를 교묘히 방해한다. 간헐적으로 우리의 요구가 충족되었을 때 ‘어, 이 친구들이 이번에는 협조적이네?’하는 반응이 이제는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또한 암암리에 행해지는 기술 탈취는 이미 미국 FBI가 다량의 미디어 콘텐츠로 제작하였듯 결코 소설이 아니다. 물질적 번영을 담보해 준다는 대가로 이들은 아직 꺼지지 않은 공산 혁명의 불씨를 매우 세련되고 근사하게 설파하는 소프트 파워 전략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대전략을 갖고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경협의 이익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려 할까? 저가 공세로 확보한 국부는 중국의 ‘백년국치(Century of Humiliation)’를 극복하고 글로벌 패권의 적임자로 뿌리내리기 위한 국제정치에서의 권력 투사로 활용되면서 자유인의 국제질서를 위협할 것이다. 2010년 중국은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희토류 수출을 제한했다.
 
12년 후인 2022년 중국은 리투아니아에 대만대표부가 들어서면서 ‘타이페이’ 대표부가 아니라 ‘대만’ 대표부라고 표시했다는 이유로 리투아니아와의 모든 통상을 중단한 바 있다. 중국의 위협은 대만해협에서 가장 폭발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주지하듯 중국은 무력 통일도 불사하겠다는 메시지를 여과 없이 내놓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억압이 극도에 달하는 순간 우리는 대만 침공이라는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자유 진영은 우크라이나에 그러했듯, 그리고 74년 전 대한민국에 그러했듯, 결속하여 부당한 침략으로부터의 자유민 수호에 나서게 될 것이다.
 
이들에 대해 중국이 공급망의 원천 봉쇄를 감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전시에 우리의 공급망이 훼손되면 우리는 대만에 대한 무기 지원조차도 고민하기 어려울 정도의 실물적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원자재의 대중 의존도가 높아서 탈중국 작업에 착수 중이던 기업은 눈물을 머금고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할지도 모르고, 이것은 우리 옆집 친구, 친구 아내의 이야기일 수 있다.
 
이 위협이 너무 극단적으로 들리는가? 유감스럽게도 시진핑과 그의 참모부는 생각보다 공산혁명에 진심인 이들이다. 그들은 붉은 혁명의 DNA를 체화해 온 이들이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들 한다. 그렇다. 74년 전 이 땅을 유린한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국민 다수는 중공과의 물질 기반 경협이 불러오는 후과를 관념적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중공 대전략의 나비효과가 우리와 같은 생활인들의 경계로 일찌감치 넘어온 것이라는 현실로써 감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슬프게도 야당 대표가 ‘중국에 셰셰, 대만에 셰셰’하고 지내면서 돈이나 잘 벌면 무방하지 않느냐는 안일한 목소리를 내고 폐쇄적 민족주의 접근인 ‘친일’ 프레임으로 선거를 치러도 대승을 거둘 수 있는 환경에 우린 살고 있다. 공급망을 둘러싼 갈등은 표면상으로는 가장 큰 갈등의 꼭지이지만, 우리는 근본을 기억하여야 한다. 그들은 왜 공급망의 독점을 추구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동원하였을까? 그들은 왜 세계의 공급자가 되기를 자처하였을까? 질문해 보아야 한다.
 
혹자는 또한 질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과 영원히 관계를 끊어야 하는가? 필자는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아마도?” 하고 선언적이고 또 수사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가 중국의 위협에 더욱 민감해져야 함을 설파할 것이다.
 
“중국이 우리와 어떤 경제적 호혜 관계인데, 그들을 너무 적대하는 것 아닌가?” 하고 재차 묻는다면, 중국 정부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롭게 계약 이행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거래하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업들과는 150% 연대하자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그들은 중국공산당의 관여 없이 경제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유인들의 자발적 결사인가? 그렇지 않은데도 그들과의 경협을 심화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일자리와 우리의 상품이 그들에게 대체되는 것을 눈 뜨고 지켜본 것은 지난 10년으로 족하다.
 
 
요컨대 우리는 중국 기업들이 우리의 공급망을 노예 삼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들의 자본은 유착의 씨앗이 되는데, 그 유착은 자유인들 간의 번영을 담보하는 평화로운 유착이기를 희망하는 우리의 의도와 어긋날 때가 많다. 그들이 우리에게 물질적 번영을 담보해 주면서 우리 사회와 질서의 내면에 의도를 갖고 개입할 때 그 개입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영역에서 우리가 숭고하다고 여겨온 여러 가치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에 결연히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공급망 전쟁의 최전선에서 국경과 정신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의도적 자본의 힘을 목격한다. 우리가 공급을 의존할 때 그 의존의 대상이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플레이하는 신뢰할 만한 이들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그 의존이 우리의 물질적 번영에 더 기여했을 것이다. 호혜롭고 조화를 이루는 자유무역체제 속에서 우리가 부족한 것은 그들이, 그들이 부족한 것은 우리가 메워주고, 함께 질 좋은 물건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정치적인 연대도 가능하게 하는, 진정한 평화를 이뤄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라. 그들은 우리에게 자본을 매개로 관여하였다. 그들이 생각하는 가치를 자본의 힘으로 전파하고 이를 통해 우리에게 시장에서의 왜곡 뿐만 아니라, 정체성에 있어서의 왜곡까지도 불러오는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공급망 쟁투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알게 되는가? 건실한 공급망 확보를 통해 원활한 기업활동을 영위하는 것이 국부 창출과 강병에도 매우 유관하며, 이를 민감하게 보지 않는다면 세계와 연결된 자유인들이 세운 국가인 대한민국의 생활인들은 이 혼돈의 시대 속에서 점점 취약해질 수 있다는 현실이다. 우리는 공급망 형성을 대전략의 범주 안에서 바라볼 줄 아는 시야를 갖춰야 한다.
 
자유인의 국제사회 공고화가 우리의 나아갈 길
 
꿈이 없는 백성은 죽는다는 말이 있다. 개인이든 사회이든,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생산성 향상에 도움을 준다. 사실 목표가 없는 이는 없을 것이다. 작든 크든 우리는 어떠한 목표를 갖고, 작고 큰 성취를 하나하나 쌓아가면서 자유인의 삶을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과오도 있고, 실수도 있다. 그럼에도 타인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하지 않는 이상 두 번‧세 번 기회를 부여받는 자유인의 사회 속에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교류하고 가치를 창출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삶을 온전히 구현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개인은 불행할 가능성이 크다. 꿈은 우리로 하여금 침대를 정돈하고 하루를 시작하게끔 한다.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이 있는데, 국가란 바로 그 꿈을 공동으로 꾸는 가장 큰 수준의 집단이라는 것이다. 국가의 목표는 단순히 외침을 막고 범죄를 처벌하여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에 있지 않다. 국가는 공동의 보편가치를 중심으로 하여 행복을 추구할 자유를 확대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치를 실현하여 번영을 도모하고, 번영을 이어지게 함으로써 평화를 구가하려는 개인들의 비전 공동체이다. 그 어떤 나라도 이 궁극의 목표 앞에서 스스로를 그렇지 않다고 차별화할 수 없다. 이러한 목표가 없다고 주창하는 나라가 있다면 필자에게 한번 알려주길 바란다.
 
그러한 국가적 목표는 전체주의적이며 명분에 불과하다고 시니컬하게 주장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인류의 보편가치를 법과 규칙에 의거한 의사결정과 자유로운 계약에 기반한 경제 행위를 중심에 놓고 확장하고자 하는 나라에서 그런 목표가 세워졌다면 그것은 전체주의 이데올로기가 아닌 다수의 의지가 반영된 합의라고 불러야 한다.
 
또한 그렇게 시니컬하게 주장하는 이들이 세상을 바꾸지는 않는다. 세상에 유의미한 변화를 불러옴으로써 번영과 평화의 주춧돌이 되는 이들의 경우 보통 불가능의 향기가 만연한 꿈을 마음속에 품고 이를 이루고자 발버둥치곤 한다. 작금의 대한민국에 이런 부류가 많을지, 아니면 시니컬한 부류가 많을지는 각자 질문해 보면 좋겠다. 가슴 아프게도 후자가 아닐지 생각된다.
 
대한민국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대다수의 인종이 모여 결성한 정치 체제 가운데 사상 최초로, 자유민주적 기본 가치에 기반하여 국가공동체를 수립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불행하게도 원래부터 살아오던 터전인 한반도 전역에서 그러한 정치적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는 못하였지만 그 꿈은 여전히 살아있다. 그 가치를 확산함으로써 더욱 견고한 통합을 이뤄내야 하는 과제는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에 동의하는 이들이라면 가슴에 품어야 할 숭고한 과제이다.
 
그러나 그것의 목적이란 과연 무엇인가? 통일 또는 부국강병 그 자체에 있는가? 그렇지 아니하다. 그것을 이룸으로써 우리와 교류하는 더 많은 이들이 인류의 보편 권리인 삶‧자유‧행복에의 추구를 보장받으며 살 수 있도록 자유인의 국제사회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함인 것이다. 우리가 잊고 살아서 잘 모르지만, 그리고 때로는 그러한 가치를 표방하지 않는 이들도 잘 먹고 잘사는 것처럼 보이는 단기간의 눈속임으로 인해 오해하기도 하지만, 그 건설을 위한 인류의 노력은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공급망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공급망의 독립을 통해 보편 가치를 대한민국이 더욱 확장하고, 억압에는 맞서 싸우고, 우리가 구현하고자 하는 자유인의 국제사회를 시장경제 속에서 공고히 함으로써 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번영을 꾀하고자 함이다.
 
한국의 청년이 일본에 투자하고, 미국에서 창업하고, 호주에서 여가를 즐기며, 대만의 상품을 소비하는 삶이 더욱 보편화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외국어 공교육도 중요하겠고,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호주와의 동맹, 나라 간 비자 면제나 고속 교통수단 개발과도 같은 자유진영의 협력을 촉진할 정책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은 지속해서 아시아와 세계에서 삶‧자유‧행복추구 권리의 확장을 위해 노력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공급망으로 이 글을 시작했지만, 글 말미에 이르러 이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바로 그러한 근본적인 부분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렌즈를 우리 모두가 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 정치는 이전과는 다른 수준의 혁신을 요구받고 있다. 지난 30년간 우리가 맡아온 글로벌 경제적 상호의존의 공기가 점점 탁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반도의 한 취약 국가가 아니다.
 
우리는 개인의 근본적 자유 확장을 중심에 놓고 과감한 도전 정신으로 세계사의 주류에 훌륭하게 올라타서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며 세계 속의 번영과 평화에 기여하였다. 지금 우리가 누려온 그 번영과 평화가 근본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앞으로 더 완전한 공화국을 만들어갈 대한민국에도 역할이 요구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럴 때일수록, 발 벗고 나설 이들이 필요하다. 필자는 그 과정에 일익을 맡기로 결심하였다. 그 결심은 단순히 수출 기업에서의 도전적인 경험만으로 우러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더욱 민감해져야 하고, 지혜로워져야 한다. 대전략을 바탕으로 비전의 성취를 향해 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다행은 없다고 생각한다. 혼란 속에서도 새로움을 추구하고, 힘을 모아가면서, 더 완전한 공화국을 만들어가는 긴 여정을 완주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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