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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쓰는 역사 [46] 더러운 진흙에서 깨끗한 꽃 피우는 연꽃
연꽃은 인도 세포이 항쟁의 상징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1-20 17:01:58
 
▲ 연꽃은 더러운 연못, 진흙 속에서 깨끗한 꽃을 피운다. 윤상구 사진작가
 
연꽃은 그 모양도 탐스럽고 아름답지만 더러운 연못, 진흙 속에서 깨끗한 꽃을 피운다는 독특한 성질로 큰 감흥을 일으킨다. 그래서 불교·도교·힌두교·유교 등 동양의 여러 종교에서 연꽃은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중국 송나라 철학자 주돈이는 “내가 오직 연을 사랑함은 진흙 속에서 났지만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소통하고 밖이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없다.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으며 우뚝 깨끗이 서 있는 품은 멀리서 볼 것이요 다붓하여 구경하지 않을 것이니 연은 꽃 가운데 군자라 한다”고 ‘애련설’을 써서 연꽃을 예찬했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원예서 ‘양화소록’을 저술한 강희안은, 그 책에서 연꽃을 일컬어 ‘깨끗한 병 속에 담긴 가을 물’이라 했다. 강희안의 동생이며 역시 조선 세조 때 학자인 강희맹은 1463년 명나라 옛 수도 난징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올 때 ‘전당지’라는 연못에서 연꽃 씨앗을 얻어 왔다. 강희맹은 이 씨앗을 자신의 집 근처에 뿌려서 재배에 성공했는데 그곳이 지금도 연꽃 명소로 유명한 경기도 시흥시 관곡지다.
 
삼국시대 기와 장식·고분 벽화에서 발견되는 연꽃 문양
 
한반도에서 연꽃을 재배하기 시작한 시기는 그 훨씬 이전으로 보인다. 백제나 신라의 기와 장식, 고구려 고분 벽화 등에서 연꽃 문양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연꽃이 더러운 속세에서 피어나지만 그에 오염되지 않는다고 하여 부처의 자비와 지혜 혹은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꽃으로 여겨진다. 부처상 아래 부분을 연꽃으로 장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슈누·시바와 함께 힌두교 3대 신 중 하나인 브라흐마도 연꽃에 앉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삶의 근원과 깨달음을 상징하는 브라흐마가 연꽃에서 태어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부와 번영·영적 순수함을 상징하는 힌두교 여신 락슈미는 네 개의 손 중 두 개에 연꽃을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인도에서 연꽃은 영국에 저항하는 상징물로도 쓰였다. 1857년 무굴제국이던 인도에서는 마을에서 마을로 차파티빵과 붉은 연꽃을 전하는 운동이 일어났고 이는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빵과 연꽃을 전달하면서 인도인들은 영국에 맞서 싸우자는 결의도 함께 나누었다. 때로는 빵 속에 메시지를 숨겼고 연꽃을 전하면서 비밀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차파티빵과 붉은 연꽃을 전하는 저항 운동
 
▲ 연꽃은 불교·도교·힌두교·유교 등 동양의 여러 종교에서 특별한 존재로 여겨진다. 윤상구 사진작가
 
무굴제국은 1858년 멸망할 때까지 330여 년 동안 인도 반도를 다스린 이슬람 왕조이다. ‘무굴’은 ‘몽골’의 인도‧페르시아식 발음이다. 실제로 무굴제국은 티무르의 손자이자 모계로 칭기즈 칸의 혈통을 잇는 바부르가 건국했다. 무굴제국은 2000여 년 만에 인도 대륙 대부분을 통일하였고 인도 반도에 존재했던 역대 왕조 가운데 가장 넓은 영토를 자랑한 대제국이었다.
 
무굴제국은 1700년대 초 이후 쇠퇴기를 맞이했다. 곳곳에서 일어난 반란들로 제국의 힘이 크게 약해졌고 페르시아 아프샤르 왕조의 공격에 무굴제국은 휘청이게 되었다. 제국이라는 칭호는 간신히 유지했지만 1803년에는 영국 동인도회사에 종속되었고 거의 식민지 신세로 50여 년 동안 명맥을 이었을 뿐이다.
 
당시 인도에 주둔한 영국군에는 ‘세포이’라 불리는 인도인 용병이 여럿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이슬람·힌두교·시크교 등 다양한 종교의 신자들이었다. 영국군과 세포이 간에는 크고 작은 갈등과 충돌이 계속되었고 이는 1857년 5월에 발생한 화약 탄포 문제를 계기로 ‘항쟁’으로 번졌다.
 
세포이 항쟁은 인도가 영국 식민지 된 계기 제공
 
세포이들은 총을 장전하기 위해 총탄의 종이 부분을 입으로 물고 뜯어야 했는데 영국인이 이 종이에 소나 돼지의 기름을 칠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는 소를 신성시하는 힌두교도와 돼지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무슬림 모두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세포이 병사들은 사격 훈련을 거부했고 영국군은 주동자를 처형했다. 나머지 병사들도 불명예 제대시키자 분노한 세포이 2000여 명이 봉기하였고 농부와 상공업자 등 민간인도 이에 합세했다.
 
그러나 세포이 항쟁은 영국에 의해 진압되었고 영국은 무굴제국 황제를 폐위시켜 추방하였다. 이로써 무굴제국이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1858년 동인도회사는 인도 통치에 대한 모든 권한을 영국 정부에 넘긴 후 해체되었고 인도는 영국 총독이 다스리게 되었다. 그 후 1877년에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의 황제’가 되어 영국령 인도제국이 세워졌다. 인도가 본격적으로 영국 식민지가 된 것이다.
 
세포이 항쟁 당시 한 영국군 장교는 “빵과 연꽃이 손에서 손으로 전해진다. 거리에서 호신용 부적이 불티나게 팔린다. 인도 사람들은 ‘모든 것이 붉어졌다’는 불길한 말을 속삭이고 있다”며 인도인들의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에 두려움을 나타냈다. 꽃은 연약하지만 그 꽃에 특정한 의미가 담길 때 상대를 두려움에 떨게 할 만큼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더러운 연못에서 깨끗한 꽃을 피울 정도의 결기가 있는 연꽃은 더욱 그럴 것이다.
 
[글 황인희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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