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중엔 많은 스파이가 활약했다. 이들 중 생전엔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위대한 스파이로 평가되는 인물이 있다. 나치 독재 시절 ‘그리핀(Griffin)’이라는 코드명으로 나치 독일의 핵 연구 현황 및 군사과학 정보를 영국에 전달해 이를 저지시킴으로써 인류의 생명을 구하고 히틀러 정권을 무력화시킨 이가 바로 폴 로스바우트(Paul Rosbaud)란 역사 속의 스파이다.
폴 로스바우트는 1896년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오스트리아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는 바람에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청소년 시절 주로 과학서적에 심취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로스바우트는 1915년 오스트리아 군대에 징집되었고 전투 중 1917년 영국군 포로가 됐다. 이때 포로들을 적대시 하지 않고 전쟁의 불행한 희생자로 대해 준 영국에 대해 긍정적 인식을 갖게 되었다. 1918년 전쟁이 끝나자 석방되어 돌아와 독일로 이주했다. 1920년부터 독일 다름슈타트와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대학원 과정)에서 화학을 공부했고 베를린 기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이 무렵 유대인 목재 상인의 딸인 힐데 가르트 프랭크와 결혼해 1927년 딸(아젤리카 안나 로스바우트)을 낳았다.
로스바우트는 1932년에 독일의 저명한 과학 출판사인 스프링어 페를라그(Springer Verlag)에서 과학 저널리스트로 일했다. 1935년에는 과학저널 자연과학(Naturwissenschaften)에서 근무했다. 이때 그의 뛰어난 과학 지식과 인간적인 매력 덕분에 세계 최고의 독일 과학자들, 특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오토 한·로버트 오펜하이머·리제 마이트너 같은 저명한 물리학자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1933년부터 나치의 광풍이 과학계까지 몰아쳤고 많은 과학자가 독일에서 탈출했다. 이 무렵 그는 독일 베를린 주재 영국대사관에 파견 나와 있던 해외정보기관인 비밀정보부(현 MI6) 요원 프랭크 폴리를 만나게 된다. 폴리는 여권심사 담당 직원으로 대외 활동을 하며 독일 내부에서 스파이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서 로스바우트는 폴리에게 중요한 정보들을 넘겨 주기 시작했다. 그의 코드명은 ‘그리핀’이었다. 그는 영국에 정기적으로 출장을 다니면서 케임브리지 대학의 야금학 교수인 로버트 샐먼 허튼 등 영국 과학자 및 망명 과학자들과 교류하며 독일 과학의 군사화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토론했다.
1938년 4월 어느 날 아침, 로스바우트는 MI6의 폴리를 만나 유대인 아내와 딸이 런던에서 살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부탁했다. 폴리는 즉시 필요한 서류를 제공했고 며칠 후 그들은 템펠호프 비행장에서 도이체 루프트한자 항공기에 탑승하여 영국에 도착했다. 로스바우트도 영국에 머물 수 있도록 주선돼 있었지만 그는 나치 정권을 약화시키기 위해 독일에 남아 폴리의 스파이 활동을 도왔다. 그는 자신의 가족 외에도 유명한 유대인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어의 가족을 포함하여 다른 여러 가족이 나치로부터 탈출하는 것을 도왔다.
1938년 12월 오토 한이 핵분열 실험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한 로스바우트는 전 세계에 이 연구의 엄청난 파괴적 잠재력을 알리고자 했다. 그리고 1939년 1월 자연과학지에 이 연구물을 신속하게 게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논문이 발표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나치 독일은 핵과학 정보에 대한 비밀엄수 등 강력한 보안조치를 시행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로스바우트는 노르웨이의 오슬로 주재 영국대사관으로 피신했다. 로스바우트는 독일에 유학 중인 노르웨이 학생들을 포섭해 연락책으로 활용했다. 그는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를 경유해 MI6에 군사과학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로스바우트는 1939년 8월26일부터 9월16일까지 오슬로에 머물렀는데, MI6 요원 프랭크 폴리가 베를린에서 오슬로로 전근하기 며칠 전이었다.
1939년 11월9일 밤 로스바우트의 연락책인 한 젊은 남자가 오슬로에 있는 영국대사관 정문으로 달려가 폴리를 불러 달라고 했다. 그가 부재중이라는 말을 듣고는 밀봉된 갈색 서류 봉투를 꼭 전해 달라고 부탁하고는 사라졌다. 이 서류에는 새로운 레이더 시스템·정보잠수함 U보트에 장착된 음향추적장치·로켓 생산 관련 정보·독일의 핵폭탄 프로젝트 진행 상황 등이 담겨 있었다. 이른바 ‘오슬로 보고서’(Oslo Report)였다.
로스바우트는 전쟁 기간 내내 MI6에 거의 매달 보고서를 제출하며 독일의 원자탄 개발 프로그램의 진행 상황을 알렸다. 그는 그것들을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는 교과서의 페이지·줄·단어에 대한 숫자 참조를 사용해 암호화된 메시지로 전달했다. 1943년에는 독일 북동부 페네뮌데의 무기 제조 시설에서 개발 중인 새로운 무기, 즉 음속을 돌파하는 최초의 유도 미사일인 로켓(V2) 생산 정보도 제공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지 3주 후 로스바우트는 영국으로 돌아왔고 1948년 로버트 맥스웰과 페르가몬 과학출판사를 설립했으며 유럽 과학 출판사에 다양한 컨설팅을 했다. 1961년 미국 물리학 연구소는 과학 출판에 대한 그의 공로를 인정해 ‘존 토런스 테이트 메달’을 수여했다. 로스바우트는 백혈병을 앓다가 1963년 1월28일 6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영국 정부는 그가 사망할 때까지 그의 활동을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어떠한 포상이나 영예도 주지 않았다. 그가 남긴 재산은 1000달러도 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에서 독일로 귀화한 그는 제2의 조국 독일을 나치로부터 구하기 위해 조국을 배반해야만 했던 과학자로 무관심 속에 쓸쓸히 죽어 갔다.
로스바우트가 죽은 지 23년 만인 1986년에 그의 생애를 담은 ‘그리핀: 2차 대전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스파이 이야기’가 핵물리학자이며 작가인 아놀드 크라미시에 의해 발간되어 그의 업적이 일부나마 알려졌다. 2002년 전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의 아내인 체리 부스 QC는 2차 대전 중 영국을 위해 가장 오랫동안 복무하고 가장 뛰어난 스파이로 알려진 폴 로스바우트의 명예를 망각으로부터 구하고자 법정소송까지 제기했으나 MI6의 비협조로 묻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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