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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아빠 엄마 이야기…풍전등화를 지켜낸 달빛 인생②
풍전등화 속 달빛 인생…인자한 사람으로 남길
부모님 작고 후 가장으로서 각오…자녀교육 대한 견해 아쉬워
대통합 필진페이지 + 입력 2017-06-11 20:51:50
 
첫 아이가 태어나던 날은 내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다. 마냥 예쁘고 신기한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부모와 가장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무거운 책임감으로 무장하며 살았다. 자식에게 헌신하신 부모님은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을 우리 부부보다 더 크고 무한한 사랑으로 길러 주셨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결혼 전부터 내가 운영했던 가게 일에 전념하며 칠 남매를 뒷바라지할 수 있었다.
 
늦둥이 외아들로서 늘 외롭던 내게 아내와 점점 늘어나는 2남 5녀의 내 자식들은 나를 진정한 부자의 마음으로 살게 해준 보물들이었다. 남존여비의 의식이 짙게 남아있던 시절이었지만 나는 아이가 태어날수록 내리사랑 때문인지 더욱 예뻤고 소중한 나의 혈육들에게 공평하게 사랑을 나눠 주며 그렇게 교육하고 성장하도록 뒷바라지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마음속의 사랑과 다르게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도록 하려는 부모의 욕심으로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엄격하게 교육했다.
 
나의 방식에 아쉬움도 있지만, 아이들은 다행히 나의 교육방침에 잘 따라 주었다. 지금 생각하니 나는 태생적으로 혈육에 대한 애착과 성취 욕구가 큰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어릴 적부터 내가 받은 사랑대로 모든 사람을 사랑해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부모님이 세상을 하직하시던 날, 나는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가슴이 아프고 눈앞이 캄캄했다. 가난과 전쟁 속에서도 가족을 지켜내시고 노녀의 병석에서도 평생을 나만 바라보고 나만을 위해 기도하며 무한한 사랑을 주셨던 부모님이셨다. 나는 성인이 돼서도 두 분에게 마음으로 기대로 상의하며 지지받고 지내다가 갑자기 어미를 잃고 홀로 남은 아기 새가 된 기분이었다. 부모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정성을 다했지만, 이 좋은 세상을 다 보지 못하고 병석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메고 눈시울이 뜨겁다.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 일곱 아이를 보면서 이제는 정말 가장으로서 혼자서 삶의 문제를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우리 가정의 경제를 비롯한 삶에 대한 모든 운명이 내 손에 달렸다고 생각하면서 새로운 사업에 관심을 끌게 됐다. 가게는 아내에게 미루어 두고 대리점 사업이라든가 약초 재배, 건설업 투자, 간척지 개간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끌게 됐고 실패도 경험했다. 마지막 간척지 개간을 할 때는 손발톱이 빠지도록 춘하추동 불철주야로 온 힘을 기울였다. 피와 땀으로 일구어낸 농토에서 자라는 곡식으로 가득 찬 들판을 보며 감격에 취하기도 했다. 낯선 땅에서 주위의 질투와 반목을 견디며 일구어낸 농토를 농약에 중독될 정도로 혼자 감당하다 보니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다.
 
부모님은 살아생전 명절마다 꼭 이웃을 챙겼다. 어릴 적 선물을 들고 이웃에 심부름을 가면 밝은 표정으로 칭찬하고 고마워하던 이웃들을 보며 나도 뿌듯했었다. 덕분에 부모님처럼 노력으로 일구어낸 것들을 나만 가진다는 생각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나눌 때 나의 기쁨도 더욱 커지는 경험을 하며성장할 수 있었다. 살아오면서 외둥이인 나의 생활신조는 자연스럽게 주위와 더불어 잘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꾸준히 사회와 이웃에 관심을 가졌다. 상인회 업무, 의용소방대, 시청 봉사활동, 보육원 기부, 지역사회 전통문화 보존 등에 물심양면으로 관심과 지원을 지금껏 지속해 왔다.
 
그러나 세상에는 늘 내 생각과 같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어느새 중년이 지나갈 무렵 신뢰와 우애로 평생을 함께 지내고자 했던 주변인과 친인척들의 배신을 경험하게 됐다. 마음의 상처를 입고 몸과 마음의 병을 얻어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내 인생에서 손으로 꼽을 만큼 힘들고 끝 모를 어둠의 시간이었다. 다시 마음을 정돈하고 주변을 돌아보니 늘 내옆 같은 자리에 아내와 내 인생의 보물인 일곱 남매가 오롯이 그대로 있었다. 익숙하고 편안한 가족의 표정에서 내게 사기와 배신을 던진 타인들과 어두운 시간에 매달려 있는 내가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늘 가까이 있는 가족과의 삶이 진정한 행복임을 잠시 잊고 지낸 것 같았다. 내 행복의 상징 같은 일곱 개의 보석 같은 아이들을 모두 교육하고 출가시키니 그 옛날 식당에서 아내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둘만 남았다. 이제는 우리도 노년이 돼 가끔 건강 때문에 병원 신세를 질 때가 있다.
 
그때마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소중함이 더욱 간절해진다. 아내는 노부모와 시누이 여섯이 있는 집에 외아들 며느리로 시집왔다. 낯설고 물선 환경 속에서도 온갖 힘든 일을 다 견디며 살았다. 칠 남매를 낳아 기르는 사이 위험한 고비도 서너 번 있었지만, 천만다행으로 무사히 회생했고, 별말 없이 별 탈 없이 지내 주었다. 크게 열정을 표현하지도, 그렇다고 크게 상심을 표현하지도 않고 무심한 듯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온 아내였다. 50여 년을 하루같이 그 일이 삶 전부인 것처럼 가게의 차가운 바닥을 떠날 줄 모르고 천직 삼아 지금까지 가게를 지키는 사람이다. 그런 아내가 크게 아파서 병원 신세를 지게 되던날 설명할 수 없는 허망함에 나도 많이 힘들었다. 이제는 내 곁에 있는 유일한 사람인데 아내를 생각하면 지난 인고의 세월에 대한 대단함에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십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곱 아이를 낳고 기르며 몸도 마음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안쓰럽다.
 
남자라는 이유로 애써 모른 척했던 시간이 부끄럽기도 하다. 그런데도 항상 곁에서 둘이 함께 이뤄온 우리의 삶이기에 시간이 갈수록 더 아름답고 소중하다. 부끄러움과 설렘으로 아내와 처음 만났던 날, 첫아이부터 막내까지 새 생명이 탄생하던 날, 넘치는 기쁨으로 손수 새끼줄을 꼬아서 금줄 쳐 주시던 아버지와 정성으로 산바라지 해주시던 어머니, 아이가 아파서 둘이 서로 아이를 안고 밤을 새우던 날, 아이를 입학시키고 졸업시키며 기념 사진 찍던 날, 일곱 아이가 모두 성인이 돼 내 손을 잡고 결혼식에 입장할 때 눈물을 훔치며 잡은 손을 배우자에게 건네주던 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고 하늘이 캄캄했던 날, 사업의 실패와 배신으로 울부짖던 날, 혼수상태로 사경을 헤매던 아내를 안고 응급실에서 쓰러졌던 날 등등. 수많은 희로애락의 날들이 우리 삶을 더욱 탄탄하게 해 모두 아름다운 영화의 장면처럼 선명하게 스쳐 지나간다.
 
나는 지금도 스스로 움직여 일하고 운동하며 친구를 만나 가끔 함께 식사도 한다. 작은 지역사회 활동도 하고 아직 소소하나마 경제적인 수입이 있고, 경제력도 부족하지 않게 자주적 자립적으로 살고 있다. 가끔 일곱 자식이 긍정적인 소식을 전해줄 때마다 그들이 사는 모습에 기쁨을 느끼며 크게 부족함 없이 잘 지낸다. 학자들은 인생의 황혼기에는 삶이 통합돼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수용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욕구가 다른 것처럼 모든 노년의 생각도 다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인생의 마무리를 떠올리면 아쉬움이 남는 몇 가지가 있다.
 
세상이 변한 것인지 내가 너무 고루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직 조금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부모님이 나를 풍전등화로 여기셨던 것과 별개로, 스스로 내 인생을 풍전등화처럼 만들고 어렵게 지키려 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내 인생이니 내가 조금 더 편안하게 꾸려볼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과 위태롭기만 했던 내 인생을 지켜냈다는 다행스러움도 마음속에 함께 있다. 아쉬움에 대한 하나는 배움에 대한 욕구이다.
 
늘 배움이 부족한 것에 대한 갈증으로 부족함을 채우고 성취하기 위해 너무 쉼 없이 사소한 일에까지 매진했던 것 같다. 나대로의 모습으로 여유를 갖고 자연스럽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움에 대한 둘은 인간관계에 대한 신념이다. 내가 최선을 다해 잘 대하기만 하면 모두 나와 안전하게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사람은 타인에 의해 조절되지 않고 결국 자기 의지대로 자신의 인격만큼 살아간다는 것을 기대나 실망 없이 그대로 인정했어야 했는데......
 
아쉬움에 대한 셋은 자녀교육에 대한 견해이다. 부모는 권위를 지키며 자녀에 대한 무한책임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들도 성인이 되고 자신의 인생에 주어진 만큼 살아낼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다. 완전히 믿고 마음을 놓았더라면 내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자식들과 지금보다 조금 더 편해졌을 텐데......
 
한없이 조금 더 잘해주려는 마음을 놓지 못해 나와 다른 마음일 때 서운함과 불편함으로 만들어진 어색함을 경험하지는 않았을 텐데...... 다행스러움에 대해서는 결국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으로부터 인정과 수용이 갈수록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이제는 더욱더 내게 가장 소중한 아내에게도 자식에게도 타인에게도 있는 그대로 여유롭게 인정하고 편안하게 바라봐 주어야겠다. 더는 가물가물 불안하게 흔들리는 풍전등화가 아니고 한결같이 어둠을 밝히는 은은한 달빛처럼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같은 모습으로 편안하게 지긋이 머물고 싶다.
 
오래전 노년의 내 아버지는 손주들을 끝없는 사랑과 긍정으로 어루만지고 지지하며 보살펴주셨다. 나의 노년도 내 자식과 손주들에게 내 아버지처럼 기억됐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할아버지처럼 불편하게 가르치지 않고 평온하게 칭찬만 하는 내 아버지의 인자함을 더 많이 담고 싶다. 지금 내가 행복한 것은 나대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시간이 늘어가기 때문인 것 같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더 많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여길 수 있도록 존중을 실천하는 삶이 되고 싶다. 이런 내 인생 참 괜찮다. 아내와 지금처럼 오래 함께 지내고 싶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매 순간 감사하다. 다가오라~!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맞이하리니, 점점 더 좋을 나의 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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