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3구의 집값을 잡기 위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집권 초기부터 계속됐다. 21대 총선을 4개월여 앞둔 지난해 12월 16일에도 정부는 고강도 시장규제 대책을 발표하며 강남권을 압박했다. 대책을 내놓은 관계부처 장관은 물론이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강남 집값 누르기를 지상과제로 삼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결과 강남 집값이 최근 조정국면에 접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극적으로 하락하지는 않고 있다. 업계 안팎에선 정권 초기부터 지금까지 오른 것과 비교하면 조정 폭이 미미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오히려 규제 대책으로 서울 외곽지역의 대출 문턱이 낮은 9억원 이하 아파트로 수요가 몰리면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가 집값 안정화를 달성해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시켜줄 것으로 기대했던 서민들은 거꾸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만든 풍선효과의 희생양이 됐다. 최근 아파트 값이 급등한 서울 외곽지역 전·월세 세입자들 사이에선 이제 서울 안에서 내 집을 사는 것은 포기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9억원 이하 아파트 즐비한 자치구 위주 가파른 오름세…“서민, 더 외곽으로 나가야”
최근 서울의 주택시장은 강남권의 약세와 비(非)강남권의 약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해 발표된 12·16 대책 이후 이런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비(非)강남권 중에서도 가격대가 9억원 이상 아파트가 다수를 차지하는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이 아닌 9억원 이하 아파트가 많은 외곽지역들이 서울 집값을 견인하고 있다.
실제 스카이데일리가 부동산114에 요청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이런 현상이 뚜렸하다. 지난해 12월 20일 대비 이달 6일 기준 서울의 구별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을 보면 서울 전체가 1.59% 오를 동안 9억원 이하 단지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원구의 경우 3.7% 상승했다. 이어 성북구 3.31%, 구로구 2.79%, 관악구 2.61%, 강북구 2.54%, 도봉구 2.2%, 금천구 1.97% 순으로 올랐다. 대다수가 서민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지난달 28일 대비 이달 6일 기준 노원구 소재 상계동 주공2단지와 하계동 한신청구, 월계동 미륭·미성·삼호3차는 불과 한 주 사이에 500만∼2500만원 상승했다. 도봉은 창동 상계주공17·19단지, 동아청솔이 500만∼1750만원 올랐다. 구로는 개봉동 현대1단지, 개봉푸르지오와 오류동 동부골든이 250만∼2000만원 상승했다.
전용면적 약 85㎡(약 26평) 기준으로 보면 같은 기간 성북구 상월곡동에 위치한 동아에코빌은 2000만원, 금천구 가산동 두산위브는 500만원 올랐다. 관악구 봉천동 소재 관악푸르지오 전용면적 84.90㎡(약 26평) 호실도 한 주 사이 750만원이 상승했다.
이처럼 대책 발표 이후 오히려 가격이 뛰면서 해당 지역 거주민들 사이에선 ‘무엇이 집값 안정화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전·월세 세입자의 경우 서울, 심지어 정주여건이 좋은 경기도 지역에서도 내 집 마련하기가 어렵다고 걱정한다.
노원역 부근에서 만난 김승수 씨(남·40대)는 “집을 매입해 갖고 있던 사람들은 이제야 오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정부 부동산 정책이 서울의 집값 안정화를 가져오지 않는 허황된 것임을 안다”며 “주변 세입자들 사이에선 내 집 마련의 꿈을 접었다는 말과 함께 전세 들어가 살기도 버겁다는 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금천구청역 근처서 만난 이지은 씨(여·30대·가명)는 “서울에서 집값이 저렴한 편에 속했던 금천구마저 풍선효과로 서민들이 한 번에 진입하기 어려운 가격대까지 올랐다”며 “아이들 키우기 좋은 경기도권 도시들의 아파트값도 풍선효과로 올라 앞으론 수도권에서 집을 사려면 더 외곽으로 나가거나 로또 분양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수시로 듣는 부동산 관계자들도 서울 외곽지역의 가격이 오르면서 서민들 사이에서 곡소리가 나온다고 말한다. 금천구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오주용 공인중개사협회 서울남부지부 금천구지회 대의원은 “아직도 금천구 아파트 값은 오름세다”며 “풍선효과에다 신축이 많고 신안산선 교통 호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아파트 값이 오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이유야 어찌 됐든 금천구에 거주하는 서민들은 매매는 고사하고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3억원이 훌쩍 넘어버린 빌라조차 들어가기 어려워져 반전세나 월세로 옮겨야할 처지가 됐다”며 “경기도도 서울 접근성이 좋은 곳은 비싸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은 요원해진 상황이다”고 언급했다.
강북구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손웅섭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서울북부지부장은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곳들이 고강도 대출 규제가 포함된 12·16 대책 이후 부각되며 최근까지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며 “이는 풍선효과로 평균 2명 중 1명 이상이 외부에서 온 수요다”고 진단했다. 이어 “전세 살다가 집을 사려고 차곡차곡 돈을 모으던 세입자들의 박탈감은 어마어마하다”며 “이는 정부가 서울 내 공급 없이 대책을 쏟아내 발생한 부작용이다”고 지적했다.
손 지부장은 “정책방향이 바뀌지 않으면 유동자금이 계속 부동산으로 몰려 서민들이 서울에 집을 살 수 있는 환경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 있다”며 “정부가 집값 안정화를 시켜준다고 해 믿은 서민들만 피해자가 됐다”고 전했다.
공인중개사인 김청수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노원구 전 지회장은 “12·16 대책이 나오고 풍선효과로 노원구 집값이 오른 게 사실이다”며 “9억원 이하 집을 보여달라는 분들이 많고 대다수가 투자용 매입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역세권인 상계주공 1·2·3·6·7단지, 한신·장미 아파트 등이 올랐다”며 “공급면적 10~13평, 전용면적 7평의 소형 호실이 12·16 대책 이후 2000만~3000만원 뛰었고 평형이 더 큰 호실 가운데는 7000만~8000만원이나 올라 팔린 것도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지회장은 “돈을 모으며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던 무주택자들은 희망을 잃었다”며 “투자자들을 배불리고 서민을 더 힘들게 만든 것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전문가 “정책 잘못 인정하고 시장논리 따라 방향 수정해야”
부동산 전문가들은 시민들의 목소리에 적극 공감을 표시하며 정부 부동산 정책 방향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기존에 수차례 제시됐던 서울 공급 확대를 대안으로 꼽았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대출 규제로 강남 집을 못 사게 하니 풍선효과가 발생해 강북이 튀어 올랐다”며 “같은 기간 경기도 수원, 용인, 화성, 안산, 의왕, 군포, 인천 송도 등도 가격이 뛰면서 서민들은 웬만한 수도권 지역에서도 집을 사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부동산 정책 방향을 잘못 잡았다”며 “시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그 때문에 무주택 서민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고 있다”며 “이런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선 공급이 부족한 곳에 원활하게 새집을 공급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부동산 전문가인 심형석 미국 SWCU대학교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현 정부는 집값 안정화를 시켜야 한다고 판단한 특정지역의 거래를 막으면서 가격을 떨어뜨리는 정책기조를 가져가고 있다”며 “이 때문에 타깃에서 벗어난 지역으로 유동자금이 유입돼 가격이 오른다”고 지적했다. 이어 “거래가 되면서 가격이 내려갈 수 있는 방향을 택하지 않으면 매물 품귀로 하락은 어렵다”고 덧붙였다.
심 교수는 “부동산 양극화가 지속되면서 외국처럼 수도의 주거비용 상승, 서민들의 외곽 이주가 심화되고 있는 모양새다”며 “정부는 정책을 잘못 써서 외곽지역까지 가격을 올려놨다는 것을 인정하고 시장 논리에 따라 정책방향을 수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문용균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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