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의 서민 주거복지 개선 의지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노후주택 주민들의 생활 개선을 위한 주택 정비사업 자체에 전혀 의지가 없다는 지적이다. 노후 아파트의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대해 전방위적 규제를 가하고 있고 대안책으로 제시한 ‘서울형 리모델링’ 사업도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이유에서다.
서울형 리모델링 사업이 몇 년째 제자리걸음을 되풀이하고 있는 가운데 그 원인으로 규제로 인한 사업설 결여가 꼽힌다. 사업대상지 주민들은 규제에 일반분양을 늘릴 수 없어 공사비도 나오지 않는 상황인데 리모델링을 장려한 것 자체가 애초에 사업 의지가 없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토로한다. 특히 새롭게 등장한 규제에도 ‘나몰라라’ 식의 태도를 보여 불만의 목소리는 고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관련 규제조차 해결하지 않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사업을 장려한 데 대해 재개발·재건축 제동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한 일종의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도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최소한의 수익도 창출하지 못하게 하는 지금의 구조는 서울시가 주택 정비사업에 의지가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입을 모은다.
재건축·재개발 규제 대안으로 내놓은 서울형리모델링…사업설 결여에 실적 전무
박원순 서울시장은 취임 이후 재건축·재개발 사업 등의 대규모 정비사업이 서울의 집값을 끌어올리는 주범이라며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식의 개발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박 시장은 2012년 ‘뉴타운 출구전략’를 발표하고 상당수의 재개발 사업지를 정비사업 직권해지시켰다. 안전진단 강화 등 재건축 사업에 대한 규제도 대폭 강화했다.
박 시장의 정비사업 규제에 대해 시민들은 크게 반발했다. 반발 여론은 대부분 70년대 중반~90년대 사이 택지개발지구로 공급됐던 서울 소재 중·고층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 특히 거셌다. 이들은 아파트들은 연한이 오래 돼 하자가 속출하고 생활에 불편한 점이 많아 주거 환경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반발 여론이 확산되자 박 시장은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다. 2025년까지 대지면적 8500만㎡의 노후공동주택을 리모델링한다는 내용이 주골자인 ‘2025년 서울시 공동주택 리모델링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주택수요 감소시대가 도래하는 만큼 철거중심의 정비사업으로는 도시재생을 도모하기 어렵고 리모델링 사업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후 세부실행 계획으로 지난 2018년 ‘서울형 리모델링 시범사업’을 발표했다. 서울형 리모델링 사업은 시가 단지별 리모델링 기본 설계 지원, 사업 타당성 분석 및 안전진단 비용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사업 대상지로는 △남산타운(3118가구) △신도림 우성1·2·3차(각각 169·239·234가구) △문정 시영(1316가구) △문정 건영(545가구) △길동 우성 2차(811가구) 등 총 7곳이 선정됐다.
해당 사업은 시법사업 대상지 모집 당시만 해도 22개의 아파트가 시범단지 신청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사업 시행 2년이 지난 현재 기대는커녕 오히려 실망과 원망의 목소리만 높게 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까지 시범 사업지로 선정된 단지 중 안전진다른 거친 곳이 단 한 곳도 없을 정도로 사업이 제자리걸음만 되풀이하고 있어서다.
그나마 사업 추진이 가장 빠른 곳은 문정동 시영아파트로 시범단지 중 유일하게 조합설립을 완료했다. 나머지 6개 단지는 각종 규제와 분담금 문제로 조합설립을 위한 주민동의율 확보조차 못 한 상황이다.
사업 추진이 더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수익성 결여가 꼽힌다. 리모델링은 재건축과 달리 일반분양을 할 수 있는 비중이 낮아 수익성 낮은 편인데 그 마저도 각종 규제와 조례에 막혀 수익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현재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되는 것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부동산 시장 점검 결과 및 보완 방향’을 발표하며 리모델링 등 소규모 사업지에도 일반분양분이 30가구 이상이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앞서 서울형 리모델링 시범사업에 선정된 아파트 단지도 꼼짝없이 상한제 적용을 받게 됐다.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가 결론 나지 않은 것도 걸림돌로 꼽힌다. 내력벽은 건물 하중을 견디기 위해 만든 벽으로 수직증축 리모델링 사업에서 평면 구성을 변경할 때 중요한 고려요소다. 정부는 철거 허용 여부를 지난해 초 결론짓겠다고 밝혔지만 올해로 미루었다. 분양가상한제,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 등은 공사 방향과 주민 동의률, 분담금 문제까지 직접적으로 연결 돼 있어 사업은 혼선만 겪고 있다.
하라할 땐 언제고 규제 해소는 나몰라라…박원순 외면에 속타는 서민들
▲ 리모델링 사업이 더딘 가장 큰 원인은 사업성 결여다. 리모델링 시범단지 선정 이후 정부가 리모델링 사업에도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시키기로 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시범단지가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억대의 분담금을 부담해야하는 만큼 사업 추진에 난항이 예상된다. 사진은 강동구 길동 우성아파트 2차. ⓒ스카이데일리
서울형 리모델링 사업지 주민들은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서울시가 리모델링을 장려한다는 명목 하에 추진된 사업인 만큼 사업에 속도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도 모자랄 판에 추가 규제까지 더해져 사실상 사업진행 자체가 어렵게 됐다는 반응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는 규제 해소에 나몰라라 하는 태도를 보여 비판 여론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일부 사업지에선 공사비도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서울형 리모델링 시범사업’ 자체가 무의미해 져버렸다는 토로의 목소리도 나온다.
중구 신당동 남산타운 조합관계자는 “일단 큰 틀로 보면 3개층 수직증축리모델링을 통해 450개 이상의 일반분양분을 확보하는 쪽으로 가설계안이 짜졌다”며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시뮬레이션 결과 공사비 등을 충족하려면 가구당 약 1억원 이상의 분담금을 내야할 판이다”고 말했다.
신당동 인근의 S부동산 관계자는 “신당 남산타운의 경우 면적이 늘릴 수 없는 평형대도 있고 일조권 침해도 거론되는 등 주민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는 상황이다”며 “개별 리모델링을 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데 서울형 리모델링 사업이라고 해서 특별한 혜택이나 개선점이 보이지 않자 리모델링 자체를 포기하고 떠난 세대들도 더러 있다”고 귀띔했다.
길동 우성아파트 조합관계자는 “정부에서 분양가 상한제까지 적용한 마당에 서울시의 추가적인 협조와 지원이 있어야 사업 진행에 속도가 붙는다”며 “시를 믿고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했는데 각종 규제 등이 등장하자 서울시는 그냥 모른 척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사럽을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이렇게 조합이 설립되지 않고 장기간 오래가면 운영비 손실만 늘어난다”고 성토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현재 서울형 리모델링 시범사업은 여러 모순점 등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시가 서울형 리모델링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는 사업 추진을 통한 리모델링 결과물을 내놓고 다른 정비사업지도 리모델링로 이끌어 내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며 “리모델링의 가장 큰 장점은 빠른 사업속도인데 추가적인 규제 등에 직면하면서 시범사업지에서 조차 장점이 작용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한 조례 개정 없이 무작정 조합의 힘으로만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며 “지금이라도 시가 의도한 좋은 사례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수익성 등을 위한 각종 지원에 나서야 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배태용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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