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는 임기 막바지에 이르도록 집값 안정화는커녕 오히려 시세만 잔뜩 올려놨다는 불만 여론이 확산되자 얼마 전 특단의 공급 대책을 발표했다. 공공 주도로 서울 및 수도권 등의 노후주택 밀집 지역을 재개발·재건축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그런데 정부의 주택공급 계획이 발표된 이후 서울 및 수도권 주택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정부가 개발에 따른 투기 방지책의 일환으로 대책 발표 이후 매입한 주택이 공공개발 대상이 될 경우 우선 입주권 없이 현금청산 시키겠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업 후보지도 선정하지 않은 채 강력한 규제 방침부터 세우다 보니 매수자들 사이에선 자칫 잘못 매입했다가 본전도 건지지 못한 채 강제 수용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전문가들은 시장경직 현상을 부추기는 현재의 방식보단 보다 효율적인 투기 방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부동산 실패 사실상 인정한 文정부, 민간주택 대상 공공주도 개발 추진
지난 4일 문재인정부는 수요억제에 집중했던 그동안의 부동산 정책 기조와 정반대로 공급 확대에 방점을 둔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의 골자는 정부와 지자체, 공기업 등이 주도해 2025년까지 서울 32만호, 수도권에 61만6000호 지방 22만호 등 총 83만6000호의 주택을 추가 공급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83만6000호 중 약 57만3000호는 도심 내 개발사업을 통해 마련하며 26만3000호는 신규 공공택지를 지정, 개발을 통해 공급할 방침이다. 도심 내 개발사업은 공공이 직접 시행하며 주민동의를 거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이 사업 및 분양 계획을 주도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공공이 주도해 나가는 만큼 도심 내 개발사업은 사업 예정지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규제 완화 등 인센티브 확대 방안을 담았다. 1단계 종상향 또는 법적 상한 용적률의 120% 상향과 더불어 재건축 사업의 경우 조합원 2년 거주 의무와 재건축초과이익 부담금도 부과하지 않도록 했다.
사업은 조합원 과반수가 동의하면 사업 시행이 가능해지고 조합총회, 관리처분인가 등 절차들도 생략할 방침이다. 기존 평균 13년 이상 걸리던 사업이 5년 내로 단축될 것이라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전체 공급량 중 32.5% 이상이 도심 내 개발사업인 만큼 현재 서울, 수도권의 연립·다세대 주택 등의 밀집지역이 사업지로 선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공공주도 개발에 따른 투기 근절 대책도 함께 발표했다. 투기를 막기 위해 대책 발표일(4일) 이후에 매입한 주택이 공공주도 개발 사업지로 선정될 경우 무조건 강제적으로 현금청산을 한다는 방침이다.
재산 피해 낳는 현금청산 엄포에 서울 전 지역 연립·다세대 거래 급감
그런데 정부는 서울 내 공공주도 개발 예정지 222곳을 선정했다고는 했지만 정확한 지역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현재 서울 내 연립·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 내 매물들은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등 시장경직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자칫 매물을 잘못 사들였다 공공 재건축·재개발 지역으로 선정 될 경우 시세가 아닌 감정평가액 기준으로 현금청산액이 책정돼 재산 피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현재 주택시장에선 정부의 현금청산 방침으로 인해 대책 발표 후 연립·다세대주택의 거래가 급격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달 17일까지 서울시 내 연립·다세대 주택은 768건이 거래됐다. 지난해 12월 5435건, 지난달 4735건 등을 기록했던 것을 비교하면 크게 감소한 수치다.
지역 부동산 관계자들도 이달 연립·다세대 주택의 거래량이 급격히 줄어든 원인은 공공 개발에 따른 현금청산 방침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동작구 소재 A부동산 관계자는 “이달 3일 이후 연립·다세대 주택의 문의 자체가 크게 줄어든 양상이다”며 “개인 사정으로 급하게 나온 매물들이 다수 있는데 매수자가 전혀 없어 매출에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급매물들은 예전 같았으면 곧장 거래됐는데 혹시 모를 현금청산 가능성 때문에 매수자들이 구매 결정을 못하고 있다”며 “주택이라는 게 개인의 사정에 따라 급하게 팔아야 할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데 이렇게 후보지조차 밝히지 않고 현금청산만 한다고 엄포를 내놓으니 애꿎은 피해자만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택 실수요자들도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서울시민 손명진(31) 씨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아파트 매매, 전세 가격을 보고 아파트 마련은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대출도 많이 나오는 연립·다세대주택이라도 매수하려고 하고 있다”며 “그런데 정부의 도심 개발 강제 현금청산 소식에 그 조차도 망설이게 됐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자칫 잘못 매입했다가 졸지에 손해만 본 채 집을 뺏기는 만큼 도심 개발 후보지가 발표된 이후 분위기를 봐서 주거지를 매입하려고 한다”며 “전세임기도 만료 돼 가고 이번에 내 집을 마련할 방침이었는데 전세에서 더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투기를 막고자 내놓은 현금청산 방침이 서울·수도권 지역의 주택거래 자체를 막는 등 시장경식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도심 내 신규 개발 지역이 구체화 될 경우 미개발 지역에 수요가 몰려 가격 반등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내놓았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성급하게 시장에 공급 시그널을 주려다 보니까 공공개발의 절차가 크게 생략됐다”며 “이럴 경우 사업은 속도감 있게 추진될지 몰라도 기존에 없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급격한 집값 상승으로 중산층 이하 층의 연립·다세대 주택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거래위축 현상은 향후 시세폭등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과도한 재산권 침해라는 의견도 나온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거래가 막히면서 집을 팔수도, 살수도 없는 상황이 돼 재산권이 과도하게 제한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며 “성급하게 내놓은 이번 공급 대책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배태용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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