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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진화하는 보이스피싱
물질(돈) 보다 귀한 영혼·정신 말살하는 악질 금융사기 판친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 7000억… 피해자 환급액 절반 이하
메신저피싱·로맨스스캠 등 수법 다양…“징벌적 배상 도입해야”
윤승준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1-05-17 13:05:11
▲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피해액은 7000억원으로 전년(6398억원)과 비교해 9.4%(602억원) 늘었다. 사진은 보이스피싱 조직이 이용한 가짜 검사 신분증과 명함. [사진=부산경찰청 제공]
 
 
# 1. 과거 한 케이블방송 프로그램에 출현했던 배우 지망생 A씨는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한 뒤 지난달 초 23세의 나이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A씨 지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따르면 피해액은 200만원 정도였다. A씨는 살아생전 어려운 환경에서도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성실한 청년이었다.
 
# 2. 지난해 1월 취업준비생 B씨는 “대규모 금융사기에 연루돼 통장에서 돈을 인출해야 한다”는 검사 사칭 사기범에게 속아 420만원을 갈취 당하고 며칠 뒤 신변을 비관하며 유명을 달리했다. 이 범죄조직은 2015년부터 5년간 중국 내 8개 지역을 돌아다니며 콜센터 등 사무실을 차려놓고 검찰과 금융기관을 사칭해 사건에 연루된 것처럼 속였다.
 
피해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피해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연달아 방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오히려 보이스피싱 수법은 진화하고 있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의 처리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최근엔 모바일과 SNS를 활용한 범죄도 끊이지 않고 있어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메신저피싱 등 사이버사기 발생 19만건… 전년 比 33%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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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7000억원으로 전년(6398억원)과 비교해 9.4%(602억원) 늘었다. 2017년(2470억원)과 비교하면 3년 사이 무려 3배 가까이 급증했다. 피해건수는 3만1681건으로 작년(3만7667건)보다 6000건 가량 줄었으나 건당 피해액은 1699만원에서 2210만원으로 30.1%나 늘어났다.
 
건당 피해액이 증가한 이유는 ‘대면편취형 보이스피싱’이 크게 증가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경찰과 금융당국이 자금 송금·이체 방식의 범죄를 봉쇄하자 나타난 일종의 ‘풍선효과’다. 실제로 송금·이체 후 30분 안에 금융감독원(금감원)이나 은행 등 금융사에 구제를 신청할 경우 이용 계좌를 즉시 지급 정지해 피해금 환급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지난해 계좌이체 활용 보이스피싱 범죄는 1만596건으로 전년(3만517건) 대비 65.2% 급감했다. 반면 대면 편취 유형 보이스피싱 범죄는 같은 기간 3244건에서 1만5111건으로 366% 늘었다. 모바일 상품권 등을 구매해 보내도록 하는 방식의 범죄도 727건에서 3582건으로 393% 증가했다.
 
문제는 최근 급증한 ‘대편편취형 보이스피싱’이 ‘통신사기피해환급법’ 대상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이스피싱에 속아 자금을 건넸더라도 피해액을 전부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 환급률은 48.5%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이호연 기자] ⓒ스카이데일리
 
보이스피싱 수법은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메신저피싱의 피해액은 전년 대비 31억원(9.1%) 증가한 373억원이었다. 사이버사기의 발생건수도 14만6616건에서 19만4576건으로 1년 사이 32.7% 늘었다. 사이버사기는 △메신저피싱 △몸캠피싱 △물품거래사기 등 모바일·인터넷 상 발생할 수 있는 금융사기다. 최근에는 주식·가상화폐 열풍을 타고 재테크와 관련한 보이스피싱도 발생하는 중이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너무 억울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는 새로운 방식의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사연이 적혀 있다. 두 아이를 둔 결혼 3년차 42세 가장이라고 소개한 C씨는 전업주부인 아내가 ‘대리배팅 투자’라는 사이트에서 사기를 당한 일들을 전했다. 그의 아내는 사이트에서 투자성공 인증샷을 확인하고 금액을 입금하고 수익을 거뒀지만 수익금은 물론 원금도 돌려받지 못했다.
 
C씨는 해당 글을 통해 “불법 사이트라는 걸 직감해 아내는 사이트 담당자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사이트 담당자는 원금을 분할로 나눠서 입금해야 하니 여러 계좌번호를 요구했다”며 “아내는 원금이라도 돌려받고 싶은 마음에 3개의 계좌번호를 보냈고 그 쪽에서 요구한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확인했지만 입금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후에 발생했다. C씨의 아내의 휴대폰으로 00은행, 00카드사, 00카드사 등에서 대출 관련 문자가 왔다. C씨의 아내는 경찰서를 찾아 신고를 접수하고 은행을 방문해 통장 지급 정지를 했다. 하지만 이미 거액의 대출금이 타인의 통장으로 이체된 후였다.
 
C씨는 “00카드 카드론·현금서비스 2000만원, 00은행 2380만원 신용대출 등 6900만원이란 거금이 다른 사람 명의 통장으로 출금됐다”며 “은행에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대출이 실행됐으니 명의자가 대출을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호소했다.
 
‘로맨스 스캠(Romance Scam)’ 피해도 늘고 있다. 사랑이라는 의미의 ‘로맨스’와 신용사기를 뜻하는 ‘스캠’의 합성어로 피해자에게 SNS나 이메일 등 온라인으로 호감을 표시하며 접근한 뒤 재력과 외모 과시 등으로 신뢰를 쌓고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요구해 가로채는 신종 범죄를 의미한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달 20일 외국인 남성 2명을 사기 혐의로 검거하고 이틀 뒤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해외 로맨스스캠 수법으로 피해자 4명으로부터 가로챈 1억2000만원을 인출했다.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이호연 기자] ⓒ스카이데일리
 
경찰에 따르면 범죄자들은 주로 해외파병 군인, 의사, 변호사 등 상황에 맞는 신분으로 위장하고 인스타그램 등을 이용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신뢰를 쌓고 결혼이나 국내 이주를 약속하면서 ‘한국에 거액의 생활비 또는 금괴 등을 보내니 탁송비를 선납해 달라’고 속여 지정한 계좌로 입금 받아 가로채는 수법을 사용했다.
 
21대 국회서 관련 법안 9개 발의…사회적 무관심에 모두 계류 중
 
정부는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관련 대책을 연일 쏟아지고 있지만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불과하다. 현행법은 징역 10년 이하 또는 벌금 1억원 이하로 정하고 있지만 1~3년의 비교적 낮은 징역형을 받거나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사이버사기로 검거된 3만9852명 중 구속된 이들은 2.6%(1025명)에 불과했다.
 
보이스피싱 처벌 수위를 높이려는 시도는 많지만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9개 발의됐지만 모두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며 계류 중이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2일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기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서 ‘5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그 행위로 인한 총 피해금액의 3배 이상 5배’ 이내의 벌금으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다. 송 의원은 “법행 수법이 나날이 교묘해지는 보이스피싱에 전 재산을 잃고 극심한 자책감 속에서 자살로까지 이어지는 안타까운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국민 가정을 파탄 내는 보이스피싱을 근절해 사기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가해자들에 대한 강력한 형벌의 처단도 필요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시행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유사한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김덕용 충북보건과학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보이스피싱에 대한 경찰의 대응방안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 보이스피싱과 같은 사이버금융사기범에게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유사한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해 가해자들에게 경각심을 고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위와 같은 제도를 도입한다면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에게 범죄행위를 자제하게 하는 일반적 범죄예방효과가 클 뿐만 아니라 보이스피싱 피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소기의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며 “피해자보호 차원에서 지급 정지된 대포통장계좌에서 피해자의 계좌로 신속하고 간소화된 방법을 통해 환수조치가 이뤄져야 하므로 이를 위한 전담센터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윤승준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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